장르문화전문 잡지라고 예전에 창간한다는 소식을 듣긴 했었는데 완전히 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알라딘에서 신간 라노베 뚝뚝뚝 지르다가 문득 생각나서 검색해 봤죠.
3월에 창간한 격월간 잡지인데, 5월호(vol.2)가 나와서 3월호(창간호)는 품절이더군요. 아쉬워라... 곳곳에서 꽤나 평가가 좋았는데.
하여간 어제 주문하고 오늘 아침에 vol.2를 받아서 대강 읽어봤습니다. 연재물이야 창간호를 못 봤으니 일단 넘기고 기획 기사 위주로 살펴봤는데...
아, 이거 "장르문화 전문잡지"라고 해서 예전에 나오던 '판타스틱(창간호~폐간호까지, '여름괴담 특집호'를 빼고 전부 샀었습니다)'이랑 비슷한 잡지인가~ 했는데
"전문 오덕 잡지"였습니다.
'시드노벨'이랑 '미래경(SF&판타지 도서관에서 발간하는 SF 잡지)' 광고가 실린것은 둘째치고, 이번 호 표제 기사가 "한국 비주얼노벨의 잠재력"이란 기사더군요. 그리고 맨 첫 부분에 실린 'Read off'라는 간단한 트랜드 소개 기사에서는 '슈타인즈 게이트'와 '마오유우 마왕용사'의 소개가...
뭐 판타스틱이 망한 이유가 명확한 독자층의 설정에 실패한 탓이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시장의 크기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이렇게 아예 '오덕층' 노리고 있다는게 명확한 게 더 낫지 않나 생각도 들긴 하는데...
표방하는 노선 자체가 "트랜드 잡지"인 터라, 이것저것 흥미로운 이야기는 많이 다루지만 전문적으로 깊이 파고들지는 않더군요. 예를들어 이번 호의 '장르 가이던스'라는 기사에서 다룬 '중세 기사 음유시'에 대한 것은, 예전 판타스틱에서 "중세 기사도 문학"을 주제로 한 몇페이지 기사와 비교하자면 정말 내용없는 흥미성 기사 수준이었고... 뭐, 그래도 만화 캐릭터들을 사용하고 '에메랄드 소드'를 살짝 언급하는 등 흥미 유발 자체는 좋았습니다만.
하지만 '장르문학가' 이 씨의 논문 작성 분투기라는 칼럼은 눈물이 나올 정도의 명문이었습니다.
석사논문으로 장르문학을 다루겠다고 했다가 교수한테 "어디서 석사 첫 논문으로 통시론을 다루려 해! 좀 자료 쌓여있는 작가 하나 찍어!"라고 까이고, 그래서 찾아본 사람이 복거일이랑 김성종 정도였으나 사회주의자인 자신이 복거일에 대한 논문을 쓴다는건 "소금 친 초콜릿을 밥이라고 매일 고양이에게 밥이라고 먹이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낳을 것"이란 생각에 김성종을 선택하고...
그리고 야심차게 김성종 론을 작성하려고 인터넷의 바다를 해맨 끝에 손에 넣은 것은
"학술기사 다섯건. 논문 없음"이라는 결과. 심지어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에 대한 학술논문조차 단 한건!
이런 것 외에도
이 좁은 시장에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르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좁은 시장만큼 높은 충성도를 보여주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들은... 문희준 팬들 같은 존재였다.
'장르 문학'을 읽는 사람이 '엄마를 부탁해'를 읽는 사람보다 많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 씨가 보기에 장르 문학은 정말로 돈이 안 됐다. 기이한 건 장르 문학이 돈이 된다는 출판사(를 비롯한 수많은 문학판)의 일반적 오해였다.
남한 SF라고 전제했을 때는 복거일 다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듀나였다. 듀나라니. '비명을 찾아서'가 출간된 게 1987년이고 '태평양 횡단특급'이 출간된 게 2002년이었다. (...) 1987년에 '비명을 찾아서'를 키운 것은 김현이었다. 듀나의 소설 뒤에 비평을 실은 것은 김태환이었다. (...) 그리고 그 사이는 텅 비어 있었다.
'장르 문학'은 결코 새로운 문학이 아니다. (...) 하지만 이건 출판사와 평단의 말대로 '새로운 문학'이기도 했다. 15년 동안 그들에게 입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도 지금 이 씨는 자신이 여전히 남한에서 오덕 돋는 문학인 장르 문학에 사랑을 퍼붓는 이유 역시 '입'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씨는 파우스트와 판타스틱, 드림아웃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 앤윈, 「'장르문학가' 이 씨의 논문 작성 분투기」, 2012, 녹스 앤 룩스 vol.2, 144~153p에서 일부 발췌
이야, 이 잡지는 좀 더 팔려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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