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썼던 단편에서 나는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자를 등장시킨 적이 있다.
사실 그건 내 얘기다. 김소월과 박목월만 빼면 나는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리 시를 읽어 본들 도무지 내 속에서 어떠한 감정도 환기되지가 않는다.
그런 내가 딱 하나 암송하는 시가 있다.
내가 군대를 제대한 바로 그 해에 창간된 '마산문학'이란 문화 무크지에 실린 '술'이란 제목의 시다.
술에 젖어서 산다
피에 젖어서
똥에 젖어서
사는 거보다
나은 일이다
한 말의 술을 마시고
한 말의 오줌을 싸면
나는 텅 빈다
이 짤막하고 유니크한 시를 쓴 마산 지방의 젊은 시인을 나는 직접 본 적이 있다.
마산 창동 어느 다방에서 열린 문학의 밤에서였다.
아무개 시인이라는 이름이 호명되자, 체구가 왜소한 청년 한 명이 단상에 올라가 '손을 씻는다'라는 제목의 시를 암송하였다.
행여 부패한 세상을 닮아 갈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그린 시였다.
나중에 작가들에게 질문을 할 시간이 청중에게 주어졌을 때 나는 몇 번이고 손을 들까 말까 하고 망설였었다.
손이 더러워지면 나중에 씻으면 그만이다, 깨끗한 손을 간직하려 드는 사람은 어질러진 방을 치울 수 없지 않겠느냐.... 하는 얘기를 그 젊은 시인에게 던져 보고 싶었으나 워낙에 숫기 없는 성격이라 결국 그만두고 말았더랬다.
그로부터 칠팔 년 뒤, 창원 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일하던 시절에 그 최씨 성 가진 시인을 나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 내가 배달해야 할 소포들 중 하나의 수취인 이름이 바로 그 최시인과 같았던 것이다.
소포 내용물은 책자인 듯하고 발송인은 무슨 문인협회이고.... 그 시인이 분명하였다.
내 배달 구역인 반송동 아파트의 한 현관문 벨을 누르자 희멀겋고 뱃살이 오른 30대 사내가 나와서 소포를 수령하였다.
내 기억에 남아 있던 비쩍 마른 청년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돌아서려는 그에게 혹시 아무개 시인 아니냐고 말을 걸어 보았다.
맞다고 하였다.
그날 내가 그 시인과 무슨 얘기를 나누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시인을 앞에 놓고 그의 시를 좋아한다는 말 말고 다른 무슨 말을 하였겠는가.
나라는 인간이 시를 좋아한다는 일이 얼마나 희귀한 일인지 알 리 없는 본인에게는 내 말이 별다른 감동을 주지도 않았을 텐데도 어느날 최시인으로부터 내게 전화가 걸려 왔다.
새 시집을 내는 출판기념회가 열리니 생각이 있으면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우리집 전화번호를 알으켜 주었던 기억이 없으니 아마 그 전화는 집배원 실로 걸려 왔었을 것이다.
그날치 배달을 마치고 나는 행사가 열리는 다방으로 찾아갔다.
시인은 하객들에게 둘러싸여 있어 다가가기조차 쉽지 않았다.
"축하합니다. 기쁘시죠?"
겨우 인사 한 마디를 던져 놓고 나는 멀찍이 떨어져 벽에 걸린 시를 읽어 보았다.
ㅡ사람이 사람과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는 사람은 안다
이런 시구가 아직도 기억난다.
출판기념회란 자리가 처음이라 이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이 안 되어 우두커니 서 있는데, 등뒤에서 얘기 소리가 들려왔다.
수더분한 인상의 여자가 자기 친구를 시인에게 소개하는 중이었다.
"얘가 최선생님 팬이에요."
그러자 소개를 받은 여자는 엉뚱하게도 친구의 무해한 소갯말이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들추어내기라도 한 양 얼굴을 붉히는 것이었다.
"이상한 발언을.... "
나는 갑자기 커다란 혐오를 느꼈다.
80년대 한국 영화에 흔히 등장하던 섬세하고도 정열적인 여주인공과 사회 부적응자인 남자, 그 둘을 연결해 주는 오지랖 넓은 친구의 구도가 생각났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의 한국 영화는 한결같이 그런 부르조아 적인 음탕함의 변주였었다.
물론 그 도시의 평범한 주부들일 것이 분명한 그 여인들이 의식적으로 시인에게 성적인 접근을 시도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은 나도 안다.
아마 시인 앞에서 말끝을 흐렸던 여자는 그녀에게는 세련된 모습으로 비쳤던 영화 속 여자들의 몸짓을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흉내낸 것일 뿐일 것이다.
시인에 대한 주부 팬들의 이런 접근을 그 본원지로부터 떨어진 변방 중의 변방인 지방 문화계에까지 이식된 서구 살롱 문화의 변종으로 보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제 실질적으로 예술을 후원하는 기능과는 멀어진 이런 사적인 접촉은 탈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에로틱한 감정 유희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조금 기다리노라면 십중팔구 술판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고, 어쩌면 나 같은 사람한테도 그 자리에 슬쩍 끼어들 기회가 주어질 듯싶기도 하였으나 나는 말없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라는 인간이 가진 여러 가지 얼굴 중에는 꼬장꼬장한 선비의 얼굴도 있다.
그 선비 기질이 그런 분위기ㅡ마치 꽃향기 속에 방귀 냄새가 섞인 듯한 흐물흐물한 분위기 속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아마 두어 달쯤 지난 때였을 것이다.
어느 날 반송동 아파트 단지에 배달을 하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최시인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는 척을 하려고 몇 걸음 다가가는데, 나를 본 시인은 갑자기 모욕이라도 당한 양 굳은 얼굴로 나를 외면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저번의 일로 인해 내가 그에게 품고 있던 경멸감을 그가 시인다운 민감함으로 알아챈 모양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부분은 아무래도 내가 부당했던 성싶다.
실상 그때의 일에 시인 자신은 책임이 없었고, 또 그 주부 팬들의 그런 접근이 반드시 비난받을 성질의 것이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일이니 말이다.
아무튼 내가 최시인을 본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날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20년의 세월이 지난 몇 달 전, 어쩌다 그가 생각이 나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그는 이미 지병으로 세상을 뜬 터였다.
착잡한 일이다.
어차피 우체부와 시인 간에 우편물을 전달하고 전달 받는 일 말고 다른 접점이 있었을 가능성은 없지만....
최시인만이 나와 불화로운 관계를 맺었던 유일한 시인은 아니다.
지금은 사라진 진보누리란 사이트에 자주 드나들던 이들 중에 박 아무개란 시인이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댓글을 달며 그럭저럭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그와 내가 사이가 틀어진 것은 개고기 문제 때문이었다.
개고기 얘기만 나오면 나는 세상 그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몇 차례 점잖은 댓글을 주고받다가 폭언과 욕설이 등장하였다.
그와는 그렇게 격한 싸움을 벌이고 끝장을 보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의 시 몇 편을 읽어 보게 되었다.
어린 아들에게 무네(문어)를 먹으라고 권하던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회상.... 당시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내게는 무척이나 공감이 가는 시였다.
싱싱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고래의 항진'이란 시 역시 인상적이었다.
늘상 게시판에서 아무나 붙잡고 원색적인 싸움이나 벌이고, 자기 딴에는 감명을 받았는지 너절한 음악 링크나 한심한 미의식을 드러내는 그림이나 올리곤 하는 평소의 행태 때문에 그를 얕잡아보고 있었지만 시인으로는 그래도 쓸만한 인간인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온 세상이 모두 탄복하는 절창을 봐도 도통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던 내게까지 그 정도 감동을 느끼게 했으니까.
이 또한 씁쓸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호전적인 평화주의자다.
자기가 사랑하는 존재들이 도살당하는 세상에서 그들을 지키고자 하는 평화주의자는 호전적이 될 수밖에 없다.
개고기를 옹호하는 박시인과 개고기를 증오하는 나 사이에 평화는 발 디딜 여지가 없는 것이다.
시인과 불화로운 관계를 맺은 한 가지 사례가 더 있다.
문단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몰라도 시인으로 활동 중인 어떤 인간과 노무현 문제를 놓고 싸운 적이 있다.
뭐, 나로서는 그저 그런 시다 싶었지만 그의 시 한 편이 양희은의 노래에 노랫말로 쓰인 적도 있는 사람이었다.
철저하게 논점만 가지고 따지는 나에게 그는 불쑥 욕설로, 그것도 이쪽 부모를 향한 더러운 성적 욕설로 반응하였더랬다.
논리보다는 감성이 발달된 시인다운 반응이었다고나 할까.
이렇듯, 온에서건 오프에서건 내가 접한 시인들과 연거푸 화목치 못한 관계를 맺게 된 것도 일종의 팔자라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흔히들 섬세하고 고상한 사람들로 알려진 시인들은 실제로는 속악스러운 존재들인 듯하다.
아무튼 내가 실제로 접해 본 시인들은 그러하였다.
이 점을 비웃을 생각은 없다.
이상과 실제의 괴리를 안고 살아가는 것은 모든 인간의 숙명이니까.
나 또한 세상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으나 글을 붙들고 사는 사람으로서 사람과 그의 글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쯤은 경험으로 알고 있는 터이다.
언어는 사람에게서 그의 가장 고귀한 부분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사람은 언어를 무기 삼아 자신 속의 비천함과 싸울 수 있다.
아무리 뿌리치려 해도 뿌리칠 수 없는 비천함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끝까지 고귀한 가치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인간이 아름다운 존재라는 반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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