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마감치다가 게시판들을 한번 쭉 훑는데... 그런 말이 보이네요.
‘문피아가 장르문학을 망치고 있다.’
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홧김에 하시는 말씀들인 것 같긴 합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문피아에 고마운 마음이 상당히 커서 글 한번 적어볼까 합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대여점 시장은 망했습니다.
요즘 대여점 시장에서 소위 대박이라고 하는 글의 판매부수가 고작 1500, 1600부 정도밖엔 안 됩니다. 예전 한참 시장이 좋았던 때엔 2만부까지도 팔렸었는데 이젠 그 10%도 안 됩니다. 이 정도 부수로는 가정이 있는 작가들은 가장 노릇도 제대로 못 합니다. 혼자서 사시는 분들이시라면 어느 정도 근근이 생계는 이어나가겠지만 글쎄요. 아마 그럭저럭 파는 정도의 작가분이 아니라면 그것도 힘들 겁니다.
그런데 문피아에서 유료연재 시장이 생겼습니다. 문피아에서 유료연재가 열리기 전에도 대여점 이외에 e-book 시장이 열려서 어느 정도 부가적인 수입을 얻기는 했습니다만 상위 1% 작가분들 이외엔 1년 평균을 냈을 때 월 50만원 소득도 힘듭니다.
그런 상태에서 대여점 시장이 망했으니 대부분 작가분들이 막막하셨을 겁니다. 저도 2000부 시장이 무너졌다는 말 듣고는 약간 멍했습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몇 달 사이에 평균부수가 확 줄어들어서 정말 당황스러웠거든요. 난 홀몸도 아니고 가정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유료연재 시장이 오픈됐습니다. 지금 1위 하시는 분이 조회수 6천 7천이 나오시죠. 어느 정도 실력만 있으면 작가들 생계는 거뜬히 해결하게 됐습니다. 이 시장을 떠나야 하나? 고민하던 작가 분들이 희망을 갖고 이 시장에 남게 된 게 제가 생각하는 문피아의 첫 번째 공입니다.
지금은 조금 주춤하고 있지만 한참 잘 팔리던 필드, 레전드 오브 레전드.
대여점 시장에서 과연 저런 글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필드 작가님도 그렇고 레전드 오브 레전드 작가님도 그렇고 시장에서 꽤 파시던 기성 작가님들입니다. 만약 유료연재가 아니라 대여점용으로 글을 써야 한다면 그분들 저거 안 쓰셨을 겁니다. 대여점에선 저게 통할 가능성보다 망할 가능성이 더 높거든요. 대여점에 깔리는 글들은 취향이 천편일률적입니다. 온라인 유료연재 시장하곤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보수적이어서 지금까지 대여점 시장에서 팔리던 글들과 다르면 안 팔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여점 시장의 글들이 괜히 비슷했던 게 아닙니다.
그런데 유료연재가 오픈되면서 독특하던 어떻던 간에 재미만 있으면 잘 팔리게 됐습니다. 필드도 그렇게 해서 나왔고 레전드 오브 레전드, 플레이 더 월드, 생기흡혈자, 록앤롤이여 영원하라, 호루스의 반지, 월드메이커 등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이 나오게 됐습니다. 몇몇은 대여점에서도 잘 팔릴 수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반수 이상은 대여점에 나가면 5권 내지 6권에서 끝내야 합니다.
장르문학의 다양성을 살린 게 문피아의 두 번째 공입니다.
가끔 연재한담에 문피아HD였나요? 관리자 아이디로 유료연재 작가 정산금액이 올라오는 거 보셨을 겁니다. 1위가 2천만 원이 넘었죠? 대여점 시장에서 한 달에 2천을 벌려면 글을 얼마나 써야 할까요? 제가 알기로 종이책 인세만 가지고는 1권으로 천만 원 받는 분이 안 계십니다. 한 달에 두 권은 쓰셔야 가능한 금액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한 권으로 2천 이상 버는 분들 꽤 됩니다. 밖에서 이걸 보면 ‘아. 작가라는 직업이 실력만 있으면 돈 좀 벌 수 있구나. 옛날하곤 다르구나.’ 하고 능력 좋은 사람들이 이 바닥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좀 더 좋은 글, 좀 더 재미있는 글, 좀 더 독특하면서도 대중적인 재미를 한데 섞은 글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겁니다. 이게 문피아의 세 번째 공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문피아의 유료연재가 활성화되지 못했더라면 장르문학은 기나긴 침체기에 접어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불과 1년,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선배 작가분들께서 앞으로 겨울이 온다. winter is coming이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얘기들 많이 했었습니다. 대여점이 망하고 새로운 수익모델이 생성되기까지 상위 1% 작가분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업계를 떠나거나 밥 굶으면서 살아야 할 거라고 생각들 했었고요. 그런데 보란 듯이 문피아 유료연재가 활성화 됐고, 지금처럼 됐습니다. 장르판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저도 밥벌이는 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장르판의 유지라는 공이 문피아의 네 번째이자 가장 큰 공이 되겠네요. 전 개인적으론 이렇게 생각합니다. 무단연중에 대한 일 때문에 문피아에 대한 인식이 마냥 이상한 쪽으로만 흘러가는 게 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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