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물으시는 분이 있어서 좀 자세한 이야기를 하겠는데 말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성곽들은 대개 이런 형태입니다.
높고 길다란 벽을 두른 구조로 되어 있죠. 산성이 아니라 평지의 읍성도 그 형태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내부에 관아나 민가가 있어도 일단 성벽이 무너지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에 반해 일본의 성곽, 우리 조상님들이 왜성이라고 부른 것들을 보자면...
천수각을 쌓은 다층형 구조입니다. 건축 양식이 틀리다는 점을 빼면 서양의 중세식 성곽과 다를 바가 없지요. 이런 구조의 성곽은 일단 성벽 자체도 높을 뿐만 아니라 내부 구조도 복잡하고 층층 마다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어 함락하기 무척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임진왜란 말기에 남해안쪽 왜성들을 정리하는 데 조상님들이 꽤 고생하셨다고 하지요.
조선의 경우 임진왜란을 겪고 나서 일본 무기나 전술을 항왜들을 통해 도입했습니다. 환도의 길이는 왜검만큼이나 길어졌고, 왜검술을 도입하기도 했으며, 조총이나 장창같은 것도 받아들였죠.
하지만 성곽의 경우 변함이 없습니다. 전란 중에 왜성의 견고함을 잘 겪어 봤으면서도 그랬지요.
천수각 자체가 포격에 쳐맞기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조선이 중앙집중적인 통치체제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성벽의 나라라고 해도 될 정도로 팔도에 성이 많았습니다. 천개 이상의 성이 있었는데, 이미 삼국시대부터 한국 산성들은 꽤 악명이 높았습니다.
산성의 경우는 산세를 따라 만들었고 고지대에 있었기에 지리를 잘 알지 못하면 함락하기도 힘들었고, 읍성의 경우에도 산성과 연계되어 있었기에 침공군이 섣불리 한쪽을 공격하다간 측면이나 배후의 성채에서 나온 요격군에게 습격을 당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성채는 천수각같은 구조가 필요 없었습니다. 근방에 있는 성에서 지원군이 올때까지 버티면 되니까요.
하지만 중앙의 권력이 약한 일본 전국시대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죠.
다이묘들끼리 동맹을 맺기도 했지만, 결국 난세에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건 자신과 자신의 번이 가진 힘 뿐이었습니다.
당연히 성에 천수각을 쌓아 겹겹이 방어선을 구축할 수 밖에 없었고, 이게 다 털리면 번주는 그냥 배째야 했습니다.
성채가 튼튼하면 외적의 침입에 안심하고 대처할 수 있다고 하지만, 반란같은 상황이 일어나면 골룸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홍경래 난을 보듯이 조선시대때도 반란이 일어나고 일단 불리하다 싶으면 농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일본의 경우도 중앙권력이 강화되는 에도시대부터는 쇼군 허가 없이 성을 신축하거나 증축하지 못하도록 했지요.(그것도 안심이 안 되는지 참근교대라고 해서 몇 해 마다 한 번씩 수도로 번주들을 불러들였죠.)
유럽의 경우도 근세까지 성채가 귀족의 권위이자 국왕에게 게길 수 있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절대왕권을 수립한 프랑스에선 국왕에게 게기는 귀족은 국왕이 싸랑하는 친위 포병대가 훈련을 겸해서 성채부터 아작 내고, 게기는 귀족은 잡아서 아메리카로 귀양을 보내곤 했습니다.
아무튼 일본의 성곽들은 19세기의 내전때까지 쏠쏠하게 사용되었고, 한국의 성곽들도 구한말 의병전쟁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이야 뭐... 좋은 관광지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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