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이란 굉장히 지성적인 행위지만, 실제로는 토론 만큼 지적 추함을 보이는 행위도 없습니다. 분명 토론은 서로의 의견을 부딪혀 가면서 각자의 의견 완성도를 높여나가는 것인데, 그저 상대방 의견에 흠집내는 것으로 바뀌었더군요. 요즘의 토론은 더 완벽한 주장이 아닌, 더 흠집에서 오래 버티는 주장을 만드는 행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토론에 대해 조금 안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토론이라는 말이 나올 때면 항상 제 마음이 요동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때 일입니다. 학교에서 토론수업이 있어서 주제에 관하여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당시 찬반의견을 나누면서 저는 찬성의견을 가지고 토론 준비 과정에서 발표하였지만, 인원수를 맞추기 위하여 반대 진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토론 수업이 시작되고, 열띤 토론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충분한 조사를 통해 차근차근 논리를 전개하고, 상대방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찬성 측은 준비가 조금 부족한 모양인지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더군요. 그러던 와중 찬성 측 한 여학생이 저에게 소리쳤습니다.
“아까는 찬성이 맞다면서, 이제 와서 반대하는 이유는 뭡니까?”
순간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찬성의견을 주장했던 것이야 본래 생각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지금은 토론 수업에서 반대 측 역할을 가지고 있으니 반대 의견을 전개하는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동급생들의 반응은 다르더군요. 순식간에 분위기는 바뀌었고, 찬성진영에서는 그 점을 가지고 계속 몰아붙였습니다. 저는 계속 토론의 역할을 이야기 했지만 제 발언은 토론과 관련이 없다고 중간에 차단되었습니다. 그리고 토론 수업은 마무리가 되었죠.
이 일은 저에게 큰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그날 이후 토론이라는 말 자체가 썩 내키지 않더군요. 토론은 각자의 주장으로 승부하는 것일진데, 선동 때문에 공격받고 무시당하니 정말 씁쓸하더군요. 이후 토론을 피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열의는 확실하게 식었습니다. 언제까지 제 마음이 쓰라릴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이 쓰라림이 오래도록 남아서, 스스로를 채찍질 해줬으면 좋겠네요. 비록 열정은 사라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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