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게 정상적인 대화 상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폭언 아니냐.
내 이 말에 달린 답이 이렇다. 당신은 정상적인 대화 상대가 아니다. 사실을 말했으니 그건 폭언이 아니다....
이런 논법을 따르면 못할 말이 없어진다.
당신은 정신병자다. 정신병자를 정신병자라 부르는 것은 폭언이 아니다.
당신은 역겹다. 역겨운 사람을 역겹다고 말하는 것은 폭언이 아니다.
실제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 실제로 역겨운 사람을 상대하는 경우에도 말은 가려서 해야 한다.
정신병자에게는 그를 자극하는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상책이고, 역겨운 사람과는 아예 상종을 않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다.
당신은 역겹다느니 미치광이라느니 하고 굳이 그에게 말을 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말을 걸었으면 대화 내용과는 상관없이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하는 법이고.
일부러 말을 걸어 실컷 얘기를 나눈 뒤에 당신은 정상적인 대화 상대가 아니라고 규정하는 건 또 뭔가.
정상적인 대화법이란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상대의 주장에 순순히 수긍해 주는 것인가?
어쩌다 내가 저 사람에게 나를 향해 저런 무례한 소리를 함부로 던져도 된다고 여기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래, 그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빌미를 내가 제공하였었다.
애당초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주고받음으로써 나에 대한 그의 생각과 느낌들을 밝힐 기회를 주었었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피드백을 기대하는 사람은 우호적이지 못한 피드백 역시 감수해야 하는 법이니까.
이쯤 되면 도대체 이런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여러 사람과 말을 섞는 일 자체가 과연 온당한 일이냐 하는 점이 문제로 떠오른다.
난 도대체 여기 왜 들어온 것일까? 무엇을 기대하고 이곳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고 하였을까?
답은 씁쓸하다.
나약함 때문이었다.
소설을 쓰면서 느끼는 심적 중압감을 감당하기 버거워 같은 중압감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글쓰는 이들과 어울린다고 해서 글쓰기가 조금이라도 수월해지지는 않는다.
하얗게 비어 있는 모니터를 마주하고 있을 때 나를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건너가기 위해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을 때 나를 붙잡아 주는 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텅 빈 모니터가 주는 질식할 듯한 중압감을 견뎌 낼 수 있는 힘은 내 속에서만 뽑아낼 수 있는 것이다.
잘 나가는 인기 작가들은 왜 이곳에 들어오지 않는지 나는 가끔 궁금해 했었다.
우리 같은 무명 소졸과 어울리기는 건 격이 맞지 않는다는 자부심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짐작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글장이의 본분은 글을 쓰는 데 있을진대, 그 글쓰는 일에 이런 게시판에서의 교류는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기에 그랬던 모양이다.
나도 글장이다.
비록 책 한 권 내지 못했지만 몇십 년 동안 글을 붙잡고 살아왔으니 나라는 인간을 규정지을 수 있는 가장 선명한 단어는 글장이라 해야 할 것이다.
모니터 앞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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