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K - #0. 지루한 서장)
띠링-
문자가 왔습니다. 저는 핸드폰이라는 기계를 꺼내 문자를 확인합니다. 아, 희선이라는 여자애한테서 온 문자네요. 내용은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오빠요즘너무이상해왜그렇게찌질해진거야?예전에는재밌게잘놀았는뎅요즘에는공부밖에안해히키코모리나되고아몰라계속그렇게지루하게할꼬면이제나랑헤어져’
“…….”
저는 잠시 멍하니 핸드폰을 쳐다보았습니다. 에잇, 맞춤법하고 띄어쓰기 정도는 제대로 맞춰서 보내란 말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군요.
ㅤㄸㅣㄱㅤㄸㅣㄱㅤㄸㅣㄱ-
‘그래, 헤어져.’
라고 답신을 발송했습니다. 젠장, 누가 골목대장 놀이나 하려고 차원 이동한 줄 압니까? 제가 이래뵈도 마왕이었습니다. 지루해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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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K - #1. 지루하도다 [1])
“지루하도다.”
라고 말한 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마왕이 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죠. 그리고 마왕의 자리를 확고하게 하고 세력을 확장하는 데 또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는 세계 최강의 마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저에게 맞설 자는 없습니다. 인간 용사가 몇 명 깔짝대고 있긴 하지만, 제 콧김 하나면 전부 처리 완료죠. 무기를 휘두를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루해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말을 내뱉자마자, 천족 한 마리가 제 앞에 나타나더군요.
“지루하십니까?”
“웬 놈이냐?”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켜드릴 수도 있는데 말이죠.”
“다른 차원 가봤자 뭐해. 어차피 내가 최강이다.”
천족 녀석이 제 말을 듣자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이마에 애벌레 세 마리를 그려? 하지만 참았습니다. 어차피 소리 질러봤자 나아질 게 없었거든요.
“마유시데스 마왕님, 다른 차원에 가면 더 강한 상대를 만날 수 있습니다.”
허어. 마유시데스 마왕님이라니, 천족 나부랭이가 저를 높여 부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녀석들에게 저는 한 번 씹고 두 번 씹고 또 씹어도 성이 안 찰 존재일 텐데 말입니다.
“상관 없다. 내가 최강이다. 그런데 네놈은 여기 어떻게 나타난 게냐?”
“그건 알 바 없고요, 다른 차원에 가실 수 있다니까요?”
허어. 말버릇이 어느 천국 강아지가 멍멍거리는 것 같네요. 세계 최강의 마왕 앞에서 이 정도 배짱을 가질 수 있다니, 배짱 하나는 인정해줄만 하네요.
“다른 차원에 가봐야, 내가 최강인데, 뭐하나?”
“제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다시 강해지는 거죠. 그 희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느낄 필요 없다. 그냥 내가 최강이다.”
“이런 씨부랭이? 너 계속 똑같은 말 반복할래?”
갑자기 천족의 말투가 바뀌었습니다. 저도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저를 이런 식으로 매몰차게 대한 녀석은 이놈이 처음입니다. 갑자기 희열이 느껴지는군요.
“아, 실수했습니다. 그래도 어느 안전인데 욕을 할 수야 없죠.”
“너 방금 내 욕 했지?”
“아닙니다. 실수했을 뿐입니다.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쓰지 마세요. 그나저나 차원 이동하실 거죠?”
“안 한다고!”
쾅!
순간 빡쳐서 제 왕좌를 힘껏 내리치고 말았습니다. 아아, 스트레스는 심신에 좋지 않은데 말이죠. 그나저나 이 천족 녀석은 도대체 웬놈이길래 이런 배짱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이 마왕성에는 어떻게 나타난 거죠?
“아 모르겠다, 너 같은 놈 그냥 차원 이동이나 해버려!”
“뭐야? 설득은 벌써 포기 단계더냐!”
“따, 딱히 설득이 힘들어서 포기하는 건 아니니까 착각하지 말아줘.”
갑자기 마왕성이 얼어붙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녀석 뭡니까!
“처, 천천히 나를 설득해보거라. 누가 아느냐? 안 그래도 나도 지루해져 있던 참, 여기보다 더 강한 적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면 차원 이동을 고려해볼지도 모른다.”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분위기에 휩쓸려 녀석을 타이르는 쪽으로 가고 있군요. 젠장, 전 사람이 너무 좋아서 탈이라니까요.
“그러니까 더 강한 적이 있다니까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여기보다 강해봐야 내가 간단히 이길 수 있는 존재라면 필요 없다. 아니, 어차피 전제가 ‘내가 최강이다’인데 나보다 강할 놈이 있을 성 싶으냐! 그런 어설픈 설득으로는 오크의 머리는 어깨가 허전해서 달아놓은 장식이라고 해도 아무도 안 믿을 게다!”
나중에 안 것이었습니다만, 지구에서 이 말을 번역하자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정도가 되겠네요.
“마유시데스 마왕님, 마왕님이 강한 것은 오직 무력뿐입니다. 물론 지략도 뛰어나긴 합니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다른 차원에는 공부라는 종목이 있습니다. 그 종목에서 마왕님은 지금 갓난 아기나 다름 없습니다. 최약이라는 말입니다.”
“뭐, 뭣이! 내가 최약?”
“그렇습니다.”
저는 잠시 턱을 괴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차피 여기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왕좌에 앉아서 심심하면 엘프나 데리고 놀면서 영농 후계자처럼 마계나 다스릴 생각이었습니다만…
제가 또 도전할 수 있는 종목이 있다니, 이건 진짜 최고의 제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라니. 이곳에 없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공부라. 하지만 공부는 여기에도 있다. 내 학식은 그 어느 현자도 따라올 수 없다. 그런데 무슨 공부에서 내가 밀린다는 것이냐?”
천족 녀석은 저를 딱하게 쳐다보더니 훗하고 썩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는 다시 쾅! 하고 왕좌를 내리쳤습니다.
“이 나부랭이가 날 비웃었겠다?”
“너무 딱하니 어쩔 수가 없잖습니까. 마왕님의 학식이라는 게 얼마나 되는지요? 하루에도 수십만, 수백만 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세계에서 살아보셨습니까? 수학은 물론이요 그 어떤 학문도 빠지지 않고 극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공부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마왕님의 학식은 그들에게 견주면 달의 밝기에 비한 반딧불이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갑자기 흥미가 돋았습니다. 저는 입을 반쯤 열며 왕좌에서 엉거주춤 일어났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도전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냐? 만약 거짓이라면 내가 죽음을 불사하고 너를 따라가 존재를 소멸시키리라.”
“제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SYSTEM: ‘마유시데스’ 님께 ‘김갓’님의 차원 이동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ES/NO]
갑자기 제 눈 앞에 떠오른 문자를 보고 저는 희열을 느꼈습니다. 이런 멋진 계약 방식이라니! 양피지에 휘갈기는 계약 방식을 넘어선, 매우 참신한 시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는 강렬한 눈빛을 짓고 YES를 선택했습니다. 어차피 이 생에서 더 이상 이룰 것은 없습니다. 앞으로 저를 기다리는 것은 절대자의 고독밖에 없겠죠.
아니, 안 그래도 그 절대자의 고독이라는 놈 때문에 권태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루함이 극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크하하하하! 이런 좋은 기회를 만나다니, 저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봅니다!
SDK
Studying Demon King
공부하는 마왕
“…만! 그만해주세요! 오빠! 그만하라고!”
어느 여성의 울부짖음이 들려옵니다. 저는 서서히 눈을 떴습니다. 제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바닥에 누워있는 한 남자애… 얼굴에는 피범벅을 해선 질질 울고 있습니다.
저는 발길질을 하려던 제 발을 멈추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아까 제게 소리를 지른 여자애가 겁을 먹은 듯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세차게 저어버립니다. 그리고 주변에는 남자 애들이 여럿 둘러싸고 있습니다.
“명근이 형, 남은 건 제가 먹어도 되요?”
“흑…흑흑! 제발, 제발 그만하라고! 준표, 너 정말로 걔 때리면 죽여버릴 거야!”
잠깐 동안 멍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준표라고 불린 소년이 오른발을 들어올렸습니다. 그러더니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여자애에게 고했습니다.
“네가 뭔데? 죽여 봐! 킬킬킬!”
그리고 그는 그대로 발꿈치를 누워있는 남자애에게 내려 찍으려했습니다. 그때 저는 상황을 눈치챘습니다.
‘여자를 울릴 짓을 하다니!’
퍽!
그대로 저는 몸을 회전시켜 왼발을 준표라는 녀석의 안면에 꽂았습니다. 그러자 준표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혼절해버렸습니다.
‘뭐야, 이렇게 약한 녀석이 저렇게 아름다운 여성을 울리다니. 보통 저렇게 아름다운 여성은 활을 잘 쏘게 되어 있는데? 아니, 그러고 보니 귀가 길지 않군. 인간인가.’
제가 그 여자애를 쓱 훑어보자, 그 여자애는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제 주위에 있는 남자 녀석들은 하나같이 나를 두려운 눈초리로 흘겨보며 물었습니다.
“며, 명근이 형, 갑자기 왜, 왜 이러세요?”
“모두 해산. 지금 당장.”
“히익!”
제가 살기를 듬뿍 담아 녀석들을 노려보자, 녀석들은 하나같이 꼬리를 말고 어디론가 도망을 쳐버렸습니다. 제가 걷어차버린 준표를 그대로 내버려두고요. 제기랄, 배알도 없는 놈 같으니라고.
“이름이 뭐냐?”
“흑흑, 네… 네?”
제가 다가서며 말하자 그 여자애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멈춰섰습니다. 그러더니 눈물을 쓱쓱 훔치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최, 최혜선라고 저번에 말씀드렸….”
“그러냐? 그런데 저 녀석들은 왜 너를 울렸지?”
순간 제 말을 들은 혜선이 멍하니 눈을 동그랗게 떻습니다. 그러더니 저를 주욱 쳐다보더니 힘겹게 한 마디를 꺼냈습니다.
“오, 오빠가 절 울린 건데요?”
“아니, 그럴 리 없다. 나는 여자를 울리지 않아.”
“네, 네?”
음, 제가 설마 이 나라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는 없습니다. 그래도 의사 소통은 되는 것 같으니까요.
“오, 오빠가 먼저 쟤 밟기 시작하셨는데요….”
“그러냐? 하지만 난 여자를 울리지 않아.”
“네, 네에….”
가면 갈수록 혜선의 표정이 괴악하게 변해갔습니다. 제가 뭔가 말을 잘못한 걸까요? 그런 건 아닐 텐데 말이죠.
“저, 저 가도 되나요?”
“그래. 저 남자애도 데려가라.”
“가, 감사해요, 오빠!”
혜선은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오오, 제게 충성하는 종자가 벌써 늘었군요. 역시 어느 차원을 가나 저는 최강입니다.
그렇게 남자애를 부축해 가는 사이, 남자애는 제게 인사를 꾸벅했습니다. 감사하다고.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하가 두 명으로 늘어난 것을 자축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세계 정복을…
‘이, 이게 아니잖아!’
저는 문득 든 생각에 자리에 멈춰섰습니다. 눈이 동그랗게 떠졌고,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려고 차원 이동을 한 게 아닐 텐데!
고개를 팍 들어 보니 아직 혜선과 그 남자애는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목청을 열어 젖히고 크게 외쳤습니다.
“멈춰!”
“히, 히익!”
남자애의 비명이 들린 것 같습니다만, 제 착각이겠죠.
“이리 와.”
손가락을 까딱까딱거리며 말하자, 두 녀석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갔습니다. 왜 이러는 거죠? 제가 뭐 잘못한 거 있나요?
“오, 오빠, 더 이상 안 때리기로 했잖….”
“혜, 혜선아… 괜찮으니까 너 먼저 가….”
뭔 놈의 희극을 하고 앉아있습니까? 빨리 와서 제 궁금증을 해소시켜주란 말입니다. 에잇, 계속 꾸물거릴 거면 제가 말하러 갑니다?
저벅저벅-
제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그들에게 다가가자 혜선과 남자애는 먼저 두 팔로 머리를 가렸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오른팔을 들어올렸습니다. 그러자 그 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갑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제 뒤통수를 긁적이고, 저는 입을 열었습니다.
“공부라는 건 어떻게 하냐?”
“아…?”
“흐에…?”
순간, 두 녀석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도, 도대체 이 녀석들 왜 이러는 거야…? 공부란 녀석이 그렇게 두려운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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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불평만 하는 건 좋지 않은 버릇 같아서,
제가 그냥 좀 다른 소설을 써봤습니다.
어떨 것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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