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공 꽉찬 ‘신무협’ 경지 열다
[경향신문 2004-05-20 20:43]
무협지를 보는 사람은 많다. 적어도 10만명의 마니아가 있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무협지는 아직 ‘골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협지가 천박하다는 혹평을 듣는 원인은 무협지가 스스로 제공했다. 내용이 허무맹랑한 데다, ‘으악’이라는 의성어 하나로 한 문단을 채우는 등 적은 분량으로 책 권수만 늘리려는 지나친 상업성 때문이다.
그러나 무협지의 파급효과는 줄지 않는다. 만화, 컴퓨터게임, 영화 등 다른 대중문화 장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공’이라는 무협지 용어가 한국어의 일상 언어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머물러왔던 무협지가 본격문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성공 여부는 두고 볼 일지만, 그 시도가 무협지 작가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를 ‘대도오(大刀傲)’(시공사)에서 찾을 수 있다. 문학평론가 성민엽 교수(서울대)는 “대도오는 단단한 문장과 절제된 언어라는 글쓰기의 기본적 덕성이 무협소설에서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줬다”며 “옛날과 다른 새로운 무협지, 즉 신무협을 연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대도오는 또 책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하급 무사이다. 거느리는 수하가 7~8명인 조장(組長)에 불과하다. 대도오 그에게는 거대한 출생의 비밀도 없다. 꼭 갚아야만 할 철천지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며 대의를 숭상한다는 호걸과는 거리가 먼 사내다. 그는 “살아 남은 쓰레기가 죽은 영웅보다 낫지”라고 공공연히 이야기 한다.
이 점이 ‘대도오’와 다른 무협 소설과의 가장 큰 차이다. 절세 영웅과 큰 문파의 사연 많은 후계자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무사가 된 보통 사내들의 이야기가 소설을 꾸려 나간다.
호구위해 칼든 사내들 얘기이 때문에 이 소설은 사실감이 크게 떨어진다는 국내 무협 소설의 가장 큰 단점을 자연스럽게 피해갈 수 있다. 주인공이 하늘을 나는 절정의 고수가 아닌 보통의 무사인데 굳이 엄청난 과장이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대도오와 그의 조원들(흑풍조)은 살기 위해 칼을 쓴다. 죽지 않고 밥 굶지 않기 위해 창을 내찌른다. 대도오는 “난 일개 조장이고 앞으로도 그럴 걸세. 배(자신이 속한 조직을 의미)가 가라 앉게 되면 내리면 그만이야. 내 배가 아니니까”라고 태연히 말한다.
흑풍조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 ‘하급 무사에게도 저마다의 인생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어느 전장에서든 밑바닥 군인들은 무수히 죽어 나간다. 영화나 TV 드라마에서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대장군의 용력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은 칼끝이 스치기만 해도 그냥 고꾸라진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이름난 장군들과 똑같이 보듬고 헤쳐 나갔던 소중한 삶과 그리운 어머니가 있었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그들의 눈에는 어릴 때 보았던 고향의 그 맑은 하늘이 떠올랐을 것이다.
흑풍조는 알았다. 내 목숨이 중요한 만큼 남의 목숨도 가치 있다는 것을. 책은 이렇게 적고 있다. “대도오는 사람을 죽이며 웃은 적이 없었다. 사람의 목숨은 아무리 하찮은 자의 것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비웃음 받지 않을 만큼의 가치는 있는 것이다. …중략… 지금도 그랬다. 그는 더없이 진지하게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기 위해 적을 죽였다. 단칼에 되도록 고통없이. 그리고 될 수만 있다면 피를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는 적을 베어 넘겼다.”
지휘관들은 하급 무인들의 인생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밑바닥 군인들은 단지 숫자일 뿐이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당시(唐詩)에 ‘일장공성만골고(一將功成萬骨枯)’라는 구절이 있다. 한 장수가 공을 이루려면 만 명의 뼈가 말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는 좌백(본명 장재훈·39)이라는 전문 무협 작가이다. ‘대도오’는 95년에 나왔던 작품을 다시 펴낸 개정판이다. 초판이 글쓰는 기법, 문단 나누는 형식 등 무협지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면 개정판은 본격적인 소설을 많이 닮으려고 노력했다.
〈김용석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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