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북스에서 나온 진부동님의 <협객혼>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4권까지 나왔죠.
스키퍼부터 머큐리, 풍운강호 등 맛깔난 재미를 보장하는 작가님이라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작품마다 소재는 다르지만 큰 줄기라든가 캐릭터가 비슷해 보이는건 진부동 작가님의 단점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요(특히 항해 이야기는 빠지지않고 등장하는 편이죠), 이번 신작 협객혼의 경우 주인공의 성격이나 기타 부문에서 전작 <킬더킹>과 흡사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뭐 하고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니구요...
이 작품은 <협객혼>이라는 제목대로 진부동 작가님 나름의 협객 이야기를 특유의 빠른 전개와 재미있는 캐릭터군상으로 풀어나가고 있는데요, 4권까지 보는 내내 제 머리 한구석에 껌딱지처럼 남아 해소되지 않는 의문 하나가 있습니다.
“이 주인공은 과연 제목대로 협객인가?”
의문의 이유는 단 하나의 사건 때문입니다. 1권에서 나오는 이가장 둘째공자의 살인사건 말이죠...
작중에서 이가장 둘째공자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철없는 권세가 자제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어떤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섰지만 잘 풀리지 않아 끙끙대는 모습을 보고 “당나귀같은 놈”이라 욕한 주인공의 동료(이후엔 공청석유를 나눠마시고 의형제가 되지만 사건이 일어날 당시엔 아직 의형제가 아닌 단순한 동료일 뿐이었던)를 보고 화를 참지못해 뺨을 때리게 됩니다.
주인공은 그 모습을 보고 주먹으로 피떡이 될때까지 패다가 목을 베어 죽여버립니다. 그리고서 생각하죠. ‘어차피 이 강호는 말도안되는 이유로 죽기도 하는 곳이기에 내가 널 죽인것도 그런 것이다’. 정말 죽여야했냐고 물어보는 무림맹주(숙부)에게는 동료를 모욕했기에 죽이는데 한 점 후회없다고 말합니다. 이 일을 따지러온 첫째공자와 무림맹에서 만난 이가장주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더 강했기에 죽인것 뿐이다. 억울하면 날 죽이면 될것 아닌가.”
전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정말 협객인가?
이가장 둘째공자가 비록 철없이 나대고 심성이 가볍긴 했으나 그는 약한자를 괴롭히는 악한도 아니고 동료를 이유없이 해친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곤란한 모습을 틈타 당나귀라고 비웃는자의 말을 듣고 격분하여 뺨을 한대 친 것 뿐이죠.
더군다나 그가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된 것은 힘없는 약자를 괴롭히다 그런것이 아니라 누가봐도 음모를 꾸미던 청성파의 위선자들을 꾸짖다가 그리된 것 뿐입니다. 자신의 능력에 과한 자리에 나서서 일을 해결해보려 한게 죄라면 죄일까요.
그가 오로지 정의를 위해 나선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름모를 자에게 당나귀라고 욕을 얻어먹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걸 듣고도 참는다면 오히려 강호에 나설 자격이 없는자겠죠.
그런데 자신에게 욕한자의 뺨을 한대 쳤는데 그걸 빌미로 당사자도 아닌 동료가 죽여버린다라... 일반적인 무림인이라면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지만, 과연 그 사람을 협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천애협로에 나오는 진소량이 그 광경을 봤다면 “아 당신은 참으로 협객입니다” 하고 말했을까요? 진소량 역시 단순한 지인일 뿐이었던 무림맹 문지기를 모욕하는 세도가 공자를 크게 꾸짖고 그의 문파사람들을 패퇴시킨적이 있습니다만, 큰 줄기는 비슷해보이나 내용은 많이 다르죠.
협객혼의 주인공이 이가장 공자를 죽인것은 그 당시의 시시비비보다는 무림맹 시절부터 겪어왔던 권세가 자제들에 대한 혐오감이 그 순간 폭발한 결과라고 전 읽혀졌습니다.
사실 이후 협객혼의 내용은 매우 재미있는 편입니다. 4권까지 쭉쭉 읽히면서 재미도 빼놓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직 그 하나의 사건과 <협객혼>이라는 제목과의 괴리가 저로하여금 찝찝함을 떨쳐내지 못하게 만듭니다. 차라리 제목이 주인공의 별호처럼 <풍뢰도>나 뭐 그런거였으면 시원시원하고 거침없는 주인공의 행보에 박수를 보냈을테지만, 이 글의 제목은 <협객혼>이고 저는 왜인지 협(俠) 이라는 글자 하나가 자꾸 걸리고만 맙니다.
“정의”라는 화두에 대해 평소에도 많은 생각을 하는 편이라 저에게만 특별한 걸림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점을 제외하면 <협객혼>은 최근 나오는 무협소설중 상위권으로, 일독을 충분히 권할만한 책입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 주인공의 협(俠) 에는 더이상 공감을 못할것 같아 비평란에 글을 남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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