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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스(RS)와 장르소설의 현주소

작성자
Lv.22 디페랑스
작성
08.06.25 01:02
조회
3,361

작가명 : 주로 캔커피

작품명 : 주로 알에스(RS)

출판사 :

RS를 읽었다.

읽게 된 경위를 보면 문피아의 독자 소개글을 보고 캔커피의 연재글을 읽은 후 그의 전작인 <RS(Resolution)>을 찾아서 본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 장르소설의 문제가 노정되어 있다.

내가 문피아에서 책에 대한 정보를 곧잘 얻긴 하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여러 뉴스나 블로그 등의 인터넷 사이트뿐만 아니라 신문, 잡지, 그리고 여러 매체의 광고를 통해서도 정보를 얻는다. 자랑이라고 할 것까지야 없어도 책에 대해선, 특히 소설에 대해서는 대충 소개글이나 감상, 광고문구만 보고도 그 책이 내가 읽을 만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고 그 판단은 정확한 편이다.

그런 내게 <알에스>는 문피아에서 처음 알려졌고 그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자 하나하나 떠올랐다. 문피아가 국내 최대의 장르소설 사이트인 만큼 무협이나 환타지(이 두 종류가 주력 '상품'이니까.)의 좋은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야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추리나 SF는 좀 다르다. 다른 사이트나 매체에서 얼마든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의 이해를 위해 그리 많은 작품을 생산하지는 않았지만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상당한 명성을 갖고 있는 듀나(이영수)와 비교해 보자.

오래 전부터 SF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뛰어난 작품들을 내 놓은 듀나는 본디 온라인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그 이름이 넘쳐 몇 권이 책으로 나왔다. (위키백과에 자세히 실려 있듯이 '듀나'에 대해서는 몇 가지 다른 설들이 있다. 한 사람, 두 사람, 여러 사람 등) 그의 작품은 대부분 단편들이고 책 한 권이 조금 못 되는 장편이 출간된 상태다. 그런 만큼 단편들은 상당히 뛰어난 편인데 장편은 조금 못 미친다.

그의 글쓰기는 대부분 SF 소설과 영화평이 주를 이루고 신문 등에 문화비평을 싣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의 작품이 거의 SF인 것으로 보아 듀나는 '장르소설 작가'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의 이름은 장르문학 안보다는 그 바깥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그의 작품이 출간된 출판사들도 문학과지성사, 이가서, 북스피아 등 순문학과 대중문학 전문 출판사 및 일반 단행본 출판사를 망라한다. (다만 문피아 출판사소식란의 장르소설 출판사들은 그의 출판 목록에 없다.)

이 부분에서 결론삼아 말한다면 듀나는 장르소설의 넓은 바깥에서 '논다'는 얘기다. 알에스의 캔커피(김지훈)와는 정 반대에 위치해 있다는 말이다.

물론 같은 SF 작가라 해서 듀나와 캔커피를 단순비교할 수는 없다. 서로 그리는 초점이 다르고 SF라는 장르를 해석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듀나는 기발한 상상력과 반전으로 재미를 주고 캔커피는 인물과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의 흐름으로 재미를 준다. 물론 그에게서도 현실을 넘어선 상상력은 빛이 난다. (SF란 본래 상상력이 가장 중심을 이루니까) 듀나가 20여 페이지 안팎의 단편을 주로 쓰고 어쩌다 쓴 장편도 책 한 권을 넘지 못하는 반면 김지훈은 대개 한 편당 5~6권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펴냈다. 5~6권이면 장르소설에서는 짧은 편이지만 일반 문학으로 보면 엄청 긴 편에 속한다. 이것이 무슨 차이냐 하면 '문학으로서의 소설'이 장르소설에 비해 엄청 압축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을 손쉽게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각각의 작품들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을 확인해 보면 된다. 장르소설 한 권 읽는데 한두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일반소설은 서너 시간 이상 걸린다.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말이다.)

여기서 장르소설과 일반소설에 대한 오해가 생길 수 있는데 첫째, 장르소설은 결국 압축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한 권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을 다섯 권, 열 권으로 늘린 게 아니냐 하는 것, 둘째, 그럼으로써 장르소설은 일반소설에 비해 문학적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둘 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것이다. 소위 양산물이라고 일컬어지는 수많은 장르소설들은 그러하고 여기서 다루는 캔커피의 작품은 별로 그렇지 않다.('별로'라고 한 것은 캔커피의 작품이 뛰어나긴 하지만 '순' 문학의 비평적 관점에서 보면 건드려야 할 부분이 꽤 있다는 뜻이다.)

일단 잘라 말하면 장르소설은 일반소설에 비해 질과 완성도가 현격히 떨어진다.

다시 듀나와 캔커피에 대해 조금만 더 언급해 보자.

듀나는 미국 SF 작가들, 그 중에서 특히 필립 K. 딕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둘의 작품들이 상당히 닮았고 필립 K. 딕의 작품들도 대부분 단편이다. 물질문명의 미래가 보여줄 디스토피아를 주로 그리는 것은 조지 오웰과 올더스 헉슬리에서 비롯한 영미 SF의 주요 전통이다. 듀나의 작품들에는 그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그런 반면 캔커피의 작품은, 내용은 세계를 무대로 하더라도 서사구조는 동양의 무협소설에 기대고 있는 편이다. 주인공과 그 대척점에 놓인 거대 세력의 대립과 갈등! 대립하는 세력은 하나가 무너지면 그 뒤에 숨어있던 더 크고 강한 세력이 나타나  대립구도가 지속된다. 물론 그가 무협의 골격을 그대로 가져다 작품의 척추로 삼는 건 아니다. 대립하는 양상에 변화를 주어 새로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적대 세력 우두머리와 친구처럼 지낸다든지 적의 주요 수하들을 제 수하처럼 데려다 쓴다든지 하는. 이건 무협이나 환타지에서 쉽게 보기 어려울 만큼 기발한 것이다. 그래서 캔커피의 소설은 무협이나 환타지의 특성이 강하다.

결국 두 사람은 SF라는 같은 장르를 쓰고 있지만 출발점은 달랐다. 하지만 노는 물까지 달라야 할까. 여기에 모호한 편견이 있다. 듀나와 캔커피는 함께 거론되어 SF의 질적 다양성을 담보하든데 보탬이 되어야 함에도 멀리 떨어져 있다. 캔커피의 알에스를 보자. 분명 비평적 관점에서 보면 좀 늘어져 있고 구성이 산만한 편이다. 동기와 동기의 연결이 자연스럽게 맞물려 돌아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다른 부분이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는데 그건 독특하면서도 자연스런 유머를 만들어내는 그의 문체이다. 주제의식도 장르소설치고는 상당히 짙다. 인물의 형상화와 현실 속에서 환상을 구현하는 능력 또한 뛰어나다.

한 마디로 말해 그는 장르소설계에서 이영도와 함께 자신만의 문체를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의 하나이다. 이 정도면 본격적인 문학비평의 관점에서 그의 작품을 충분히 논의할 만한 셈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 그가 장르소설의 울타리 안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장르소설이란 말은 없었다. 그냥 소설을 분류할 때 순수소설과 대중소설, 그리고 내용에 따라 애정소설, 추리소설, 역사소설, 공포소설, 무협소설 등등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중, 후반에 무협과 환타지에서 일련의 작가군과 독자들이 형성되면서 동일한 장르를 묶는 하나의 용어가 생겨난 것이다.

장르소설이란 울타리는 주로 시장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장르소설이 없었을 때는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곧 크게 성공하는 작품이 나타났을 때 그 작품 하나의 성공으로 그치거나 그와 유사한 아류작들이 등장해 한두 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가 사라지곤 했다. <자유부인>, <사람의 아들>, <인간시장>, <소설 손자병법>, <소설 동의보감>, <모순> 등등이 그렇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특정 장르 및 대중소설이 크게 히트했을 경우엔 그와 유사한 아류작들이 줄줄이 등장하고 순수소설이 히트했을 때는 해당 작가에 대한 관심이 커져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주목받는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소설 목민심서>의 빅히트에 이어 나온 <소설 토정비결>, <소설 목민심서> 등이 줄줄이 성공한 적이 있고 후자의 경우는 정비석, 최인호, 이문열, 양귀자, 신경숙, 그리고 최근의 김훈까지 인기작가의 맥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구분이 생기는 까닭은 간단하다. 대중소설은 스토리 구도가 쉽고 도식화할 수 있어서 웬만한 글쓰기 및 기획 능력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흉내낼 수 있다. 하지만 순수소설은 그렇지 못하다. 어느 누가 <홍어>를 흉내내 그와 비슷한 수준의 작품을 쓸 수 있겠는가. 게다가 순문학 쪽에서는 그러한 행위 자체를 죄악시한다. 자칫하다가는 표절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표현 기법으로서의 모방, 차용, 패러디, 페스티시(혼성모방: 기존의 여러 작품에서 부분부분 인용하는 짜깁기라고 보면 된다.) 따위가 허용되지만 그것들은 원작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내야 한다.

결국 장르소설 등장 이전의 (또는 장르소설계 바깥의) 소설 작품의 큰 성공은 그 작품 자체에 그치거나 파급효과가 상당히 제한적이다. 반면 장르소설에서는 그 영향이 해당 장르 전반에 미친다. <퇴마록>이나 <바람의 마도사>의 성공은 대개 그 자체의 성공에 그쳤으나 장르소설계가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 등장한 <드래곤 라자>나 <묵향>의 경우는 양상이 달랐다. 이들의 성공은 수많은 환타지와 신무협 소설의 양적 확산과 독자의 급증을 불러왔다. 작가들과 독자층의 확대는 곧바로 장르소설계의 외연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 물론 몇 년 지나지 않아 대거 유입된 장르소설 독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일부의 성인과 학생들만 남게 되었는데 (특히 환타지의 경우) 최근 몇 년의 작품들이 초기의 작품들을 질적으로 뒷받침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품의 질이 떨어지고 재미의 수준도 퇴보한 것이다.

수준 높은 작품이 많을수록 독자가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여기서 이야기할 바는 아니지만 대여점이란 존재는 그 다음 문제다. 독자가 줄어드니 대여점이 줄어드는 것이다.)

* 그 이후 두 작품은 아주 다른 길을 걷게 되는데 <드래곤 라자>가 자신이 거둔 성공의 과실을 후속작(가)들에게 나누어 주었음에 비해 <묵향>은 여전히 말라 시들어가는 나무에 달리는 과실 하나까지 다 따먹으려 한다는 점이다.

장르소설은 대중적 입장에서 장점이 하나 있는데 일단 조금만 익숙해지면 읽기도 쉽고 쓰기도 쉽다는 점이다. 무협이든 환타지든 로맨스든 게임소설이든 조금만 글쓰기 능력이 되면 어렵지 않게 쓸 수 있다. 매뉴얼화가 상당히 되어 있다는 뜻이다. 몇 가지 공식이 있고 그 공식에 대입하듯 써 내려가면 작품 하나가 만들어진다. (물론 이런 와중에서도 자신만의 독창성과 주제의식을 부여하여 생산한 작품들이 없는 건 아니나 여기선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나 소나 소설을 쓴다는 말이 나온다.

한편 독자의 입장에서도 몇 번 특정 장르의 소설을 읽어 그 개요가 익숙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너무나 손쉽게 작품 속에 몰입할 수가 있다. 등장인물이나 사건들이 기존에 독자의 머릿속에 축적돼 있는 체계에 의해 비교 검토되어 곧바로 자리를 잡아간다. 한데 쉽게 읽히면 역시 쉽게 지워지는 법이다. 즐거움이라는 기억만 남는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이야기에 맛을 들였다. 같은 장르의 소설을 계속 찾아서 읽는 수밖에 없다.

앞의 대량 생산과 함께 대량 소비가 주요 논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이것으로 우리는 현재 우리의 장르소설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바로 헐리우드의 장르영화 시스템이다.

장르영화의 탄생은 영화가 산업화되는 시점과 궤를 같이한다. 영화가 발명된 직후의 초창기에 이미 사람들은 영화가 갈 두 개의 길을 닦고 있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로서의 영화(열차의 도착), 그리고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며 즐겁게 할 20세기의 마술(월세계 여행). 기록과 환타지다. 정작 예술로서의 영화는 그보다 훨씬 늦었다.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면 넓은 공간에 많은 사람을 불러 앉혀 놓고 보여준다. 게다가 더 많은 극장을 지어서 한꺼번에 수만,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관람료를 받는다면 떼돈을 버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런 영화의 매력은 자본가들들 영화판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한 작품의 성공은 그와 유사한 다른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비슷한 배경, 유형, 주제의 영화들이 투자한 자본을 회수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리하여 모험이나 웨스턴, 공포, 추리, 전쟁, 멜로, SF, 환타지 등 여러 장르가 속속 탄생했다. 그러면서 각 장르별 제작 노하우나 매뉴얼이 만들어지고 동원할 수 있는 관객의 수까지 예측이 가능해졌다. 이제 얼마를 투자해서 얼마를 벌어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게 예측 가능해졌다. (물론 모든 예측이 다 들어맞는 건 아니다.) 바로 이 사실이 중요한데 장르적 특성에 대한 지식과 수요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지면 새로운 투자가 이루어진다. 영화가 필연적으로 산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 하나가 만들어질 때마다 제작 기법과 기술은 축적되고 그 다음에는 누구나 쉽게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해결해야 할 유일한 문제는 돈이었다. 돈이야 얼마가 들든 상관없다. 그 이상을 뽑아내면 되니까. 이게 장르영화의 길이었다.

관객에게 있어 장르영화가 얼마나 쉬운지는 예술영화라 불리는 작가영화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작가영화는 처음 보기 시작하고 한참이나 영화의 내용을 파악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작품의 배경이나 등장인물, 인물들의 관계, 사건의 흐름 따위를 겨우 파악하고 나면 영화는 반 이상이나 흘러가 버리는 일이 왕왕 있다. 비교적 쉬운 내용이라 해도 초반 십여 분 이상은 그러한 노력을 해야 한다. 영화를 ‘즐길’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이다. 이런 영화들은 대개 영화를 다 본 뒤 그것을 음미하면서 즐기게 된다. (물론 그럴 의도와 능력이 있는 사람에 한하지만) 그러나 장르영화는 이미 같은 장르로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공과 적, 배경, 사건 등이 파악된다. 거의 자동이다. 처음부터 편하게, 머리 굴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게 바로 장르영화다.

다시 국내의 장르소설에 대해 얘기해 보자. 헐리웃 장르영화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첫째, 너무 영세하다. 구멍가게도 이런 구멍가게가 없다. 작가도 가난하고 출판사도 가난하다. 많은 자본을 투자해서 그 이상을 회수한다? 말이 되지 않는다.

둘째, 독자의 수가 적고 그마저 닫혀 있다. 미국이나 국내의 장르영화는 전 세계,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만들어진다. 영화가 개봉하면 취향에 따라 누구는 모험/액션물을 보고 누구는 멜로를 보고 누구는 형사물을 보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처음 기획하고 만들 때에는 해당 연령층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장르소설은 거의 대부분, 보는 사람만 본다. 그냥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아는 사람만 알고, 보는 사람만 본다는 얘기다. 곧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있는데 어떤 장르소설 및 독자들은 그 안에만 머물러 있다.

장르소설(만)을 내는 출판사가 있고 일부의 장르소설 독자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들끼리 이야기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물론이고 출판사에조차 '전문가'가 없다. 물론 전문가란 비평가를 뜻한다. 일반 문학시장에서 비평가는 대개 출판사에서는 문학 편집자를, 그리고 강단에서는 교수를 겸하고 있는데 이들에 의해 수많은 문학 작품들이 평가되고 작품이 출판될 때 거르는 역할을 한다. (물론 전문 비평가의 폐해도 존재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비평의 권위를 이용해 특정 작가를 높이 평가해 결과적으로 시장에서 많이 팔리도록 만드는 이른바 '주례사 비평'은 많은 문학 독자들을 오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주제와 멀어지므로 더 이상 하지 않겠다.)

그런데 장르소설에서는 어떤가. 교직에 있는 문학 전공자 가운데 장르소설을 비평 대상으로 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장르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들의 감상과 비평을 써서 개인 블로그나 게시판에 올릴 뿐이다. 물론 독자 가운데 나름대로 식견이 있어 괘 깊이 있는 천착을 해 보여주는 이들도 있으나 개인적인 활동에 머문다. 따라서 독자들에 의해 좋은 평가를 받는 장르소설이 나타나도 그것이 출판되는 짧은 기간만 언급되다 곧 잊혀진다.

우리나라에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나 <오즈의 마법사>와 같은 '고전'이 태동할 여건이 충분한데도 여전히 척박한 처지에 머물러 있다. (최근에 나는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알에스>와 <눈물을 마시는 새>, <양말 줍는 소년> 등에서 그런 희망을 보았다.) 좋은 작품을 찾아내 '명예'를 부여할 전문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함께 대학 강단의 장르소설에 대한 편견, 전반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소설의 질, 장르소설이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혀있는 작가와 작품, 독자들, '문학'에 대한 최소한의 교양조차 없는 출판사와 편집자들. 서로 관련된 여러 가지 요인이 공존하고 있다.

다시 영화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과거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인 지성인 집단은 문학평론가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을 대체하여 1990년대부터 급부상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영화평론가들이다. 80년대 이선에 영화평론가들은 소수였고 잘 알려져 있지도 않았다. (영원한 로맨티스트라고 불리는 정영일 정도가 이름 있는 정도였지 않나 싶다.) 그러다 한국 영화가 경쟁력을 갖고 PC통신과 인터넷이 널리 퍼지면서 수많은 관객 가운데 많은 이들이 영화에 대한 평을 쓰기 시작했다. (놀 장소가 생기면 아이들이 모이는 것과 같다.) 그들 가운데 영화에 대한 분석 능력과 글쓰기가 되는 사람들은 신문이나 전문 매체에 진출하여 '공식적인' 영화평론가가 되었다. 비공식 영화평론가는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달리 말해 개나 소나 영화평을 쓴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인데 그 가운데서도 영화의 질을 구분해 내는 '전문 관객'들이 많고 이들이 형성한 여론이 영화의 흥행을 좌우할 수도 있게 되었다. 당연한 노릇이지만 흥행을 주도할 수 있으면 제작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평론가들의 평이 좋으면 좋을수록 흥행에서 참패한다는 속설이 있고 그것이 일부 사실이라 해도 이 글의 방향과는 다르지 않다. 이 글에서 말하는 '전문 관객'이란 어려서부터 많은 영화를 봐온 관객 가운데 영화를 보는 식견이 높아진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영화의 작품성과 흥행성을 균형감 있게 평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80년대 이전만 해도 '한국 영화를 왜 보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렸다. 그런데 이제는 거의 들을 수 없다. 이는 영화를 '재미'와 '완성도'에서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다수의 관객층이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장르소설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장르소설에는 이런 '전문독자'들이 없다는 말일까. 물론 없는 게 아니다. 다만 그 수가 적고 (적을 수밖에 없다. 장르소설을 보는 사람 자체가 적은데.) 앞서 말했듯이 개별적으로 활동할 뿐이다. 그리고 '순수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작가나 평론가뿐 아니라 문학과 학생, 지망생을 포함해서)은 장르소설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문피아나 기타 장르소설 사이트에서 꽤 많은 독자들이 질적으로 좋은 작품을 칭찬하고 '개나 소나 쓴 듯한' 작품(이런 경우는 작품이라고 하기도 어렵다.)을 수없이 비판해도 시장에서 요지부동이고 오히려 더욱 악화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쪽수가 적기 때문이다. 대중사회에서 쪽수가 적으면 파워도 작다. 포털 사이트들의 댓글전쟁에서도 그러하거는 물품을 구매하는 시장에서야 말할 나위가 없다.

결국 즐기기 위한 장르소설이라지만 여기서도 '전문 독자'는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것도 많이. 그래야만 재미만 있으면 작품의 질이 어떻든 상관없다는 독자들도 재미에도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독자로 바뀔 것이다. 재미든 감동이든, 또는 더 이상의 무엇이든, 모든 문화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딱 자신의 수준만큼 가져가게 되어 있다. 무엇이든 더 잘 즐기기 위해서는 더 공부해야 한다. 물론 즐기는데 무슨 노력이 필요하냐, 그냥 생긴 대로 살래! 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는 이런 질문을 해 보고 싶다. 야구나 축구 규칙을 달달 외우고 선수들 신상 하나하나까지 외우는 야구와 축구 매니아는 한심한 사람들인가. 스타나 리니지 등 온라인 게임을 하기 위해 공략집을 너덜너덜해지도록 보고 또 보는 사람들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인가.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알에스>에 대한 이야기로 긴 글을 마무리하자.

이거 상당히 뛰어난데다가 재미도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도 장르소설 팬들과 기타 일부 외에는 소위 '듣보잡'이 되어 버렸다. 왜? 앞서 말했듯이 장르소설의 울타리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조금 더 정리되어서 이름 있는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나왔다면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지금보다 더 팔릴 수도 있고 덜 팔릴 수도 있다. 일간지나 여러 매체에 광고가 가능하므로 더 팔릴 수 있다는 것에 만원이라도 걸 용의가 있으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장르소설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바꾸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것이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 작품의 가치를 알아볼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고 전도사(매니아)도 생길 것이다.

결론은? <알에스>는 장르소설계 밖으로 내보냈어야 했다. <양말 줍는 소년>은 한결 나았다. 과거 장르소설만을 펴냈지만 이제 꽤 다양한 종류의 책을 펴내는 황금가지에서 꽤 깔끔하고 근사하게 나왔다. 도서관에 자랑스럽게 서 있다.

우리의 장르소설이니까 우리는 한 식구다? 좁은 곳에만 머물러 있으면 퇴보한다.

<끝>

주 : 본문에 쓰인 '일반소설'과 '순수소설'은 같은 것이다. 곧 장르소설이 아닌 모든 소설을 가리키는 말인데 '장르소설'과 구분하다 보니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억지로 사용했고, 그때그때의 문맥에 따라, 또는 비꼬는 뜻으로 달리 사용했음.


Comment ' 8

  • 작성자
    Lv.17 태산™
    작성일
    08.06.25 02:07
    No. 1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군요.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퇴근빌런
    작성일
    08.06.25 02:36
    No. 2

    공감하는 바가 큽니다.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단우운
    작성일
    08.06.25 11:51
    No. 3

    잙 읽었습니다. 정말 공감 1000% 입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5 케이포룬
    작성일
    08.06.25 15:05
    No. 4

    아주 잘 읽었습니다. 하나같이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다만 '현상'이 본문에서 언급하신바와 같이, 너무 비좁아 터져서, 밥벌이도 근근이 할 터인데, 출판사에서 '장르계 이상의 영역'으로 모험을 하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도 높겠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새로운 시도를 한 출판사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동아에서 나온 '인페르노'나 청어람의 '황금열쇠', '잔디벌레', 로크미디어의 '노블레스 클럽'등이 그것들일진데,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격언을 떠올려 현재의 부진에 연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줘서, 본문에서 말하신바, 장르소설의 고급화(표현이 좀 이상한가요), 대중화에 기여하길 기대해봅니다.

    뱀발 -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현재의 판타지와 무협은 형식이 너무 굳어져서 아무리 대작이 나오고 '장르계 이상의 영역'에서 선을 보인다 할지라도 사람들의 편견 또한 너무 강하기때문에 그 편견을 넘기위해선 너무도 많은 시체들이 필요할꺼같아, 한숨이 나옵니다.
    뱀발2 - 황가가 장르소설로부터 출발한 회사인가요? 음, 처음안 사실이군요.
    뱀발3 - 이렇게 한 작품에서 외연적으로 접근해 시장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 비평양식, 잘배웠습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디페랑스
    작성일
    08.06.25 15:47
    No. 5

    케이포룬님,
    황금가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오해가 있었군요.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글을 쓴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오해를 하게 된 까닭은 1998년 <드래곤 라자>부터 <귀환병 이야기> <흑기사>등 환타지가 대거 출판되었고 '황금가지'란 명칭 자체가 저 유명한 프레이저의 고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는 서양 환타지의 백과사전이죠.)
    어쨌든 출판사 황금가지의 출발 자체가 '젊은' '변방의' 문학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으므로 본문의 제 언급이 크게 틀린 건 아닐 겁니다.

    사이트에 들어가 살펴보니 황금가지는 출판그룹 민음사의 자회사로 1996년에 설립되었군요. (아시다시피 민음사는 우리나라 문학과 사상 전문 출판사로 열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입니다.) 황금가지와 어린이 도서 전문 '비룡소'도 그 안에 있군요. 새로 안 사실입니다.

    노블레스 클럽 등의 시도는 저도 의미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독자가 얼마나 반응해 주느냐인데... 작품들이 고르게 좋거나 무난한 만큼 꾸준히 해 나간다면 어렵지 않게 안착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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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금원
    작성일
    08.06.25 21:59
    No. 6

    도대체 뭐하시는 분이시죠? 대단한 글입니다. 정말 좋은 비평 감명깊게 봤습니다.
    하지만 캔커피님의 글은 SF나 판타지라기보다는 신화의 느낌이 강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면이 장르라는 한계에 걸리듯이 보일수 있지만, 저는 이런 신화적 성격때문에 장르외에서는 표현하기 어렵지않나 싶습니다. 신화적이라는게 올바를지 모르겠지만, 캔커피님의 글을 비유해 보자면, 할머니가 손주를 안고 다정하게 동화를 들려주는 느낌이랄까요? 이런면이 일반 문학적인 기준으로 편집되거나 평가된다면, 글이 삭막해 보이지 않을까 싶군요. 출판에 있어서 포용성이 넓은 장르시장이라서 이런 느낌을 잃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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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꿈돼지
    작성일
    08.06.28 14:55
    No. 7

    좋은 글이군요. 근데 알에스 좋은 소설인가요. 한분의 추천만 가지고 사보기는 좀 그렇고.. 추천이 여러개라면 사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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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22 디페랑스
    작성일
    08.06.28 15:32
    No. 8

    문피아 감상란에서 RS로 검색하면 10여 개의 감상글이 나옵니다.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비평란에는 없네요. 문피아의 관례에 따르면 모두 좋게 보았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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