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바보같은 행동(여자에게 추파를 보인다던지!)을 하면 소설 내용에 관계없이 안 보나요?
아니면 최소한 1, 2장까지는 읽어보고 판단하는지요?
그것도 아니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요?
전 이런 거 보고 접는 독자분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일상적으로 같이 동료와 같이 일하거나 학창시절에 당연한 거 아닌가요?
모델같은 여인이 지나가면 워워하면서 따라가고......
아닌가요?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주인공이 바보같은 행동(여자에게 추파를 보인다던지!)을 하면 소설 내용에 관계없이 안 보나요?
아니면 최소한 1, 2장까지는 읽어보고 판단하는지요?
그것도 아니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요?
전 이런 거 보고 접는 독자분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일상적으로 같이 동료와 같이 일하거나 학창시절에 당연한 거 아닌가요?
모델같은 여인이 지나가면 워워하면서 따라가고......
아닌가요?
작가 입장에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반영되었느냐가 더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되겠지요.
답답하고 바보같은 행동도 그럴 수 있는 개연성과 주변여건이 갖춰져 있다면 얼마든지 봐 넘길 수 있는 문제지만 생뚱맞으면 보기에 힘들어지겠지요.
비슷한 예는 아닙니다만 대종사님이 예전에 쓰던 프로그래머라는 소설을 보다가 지독한 주화입마와 함께 덮은 적이 있었습니다.
지독한 천재, C 언어를 전혀 배우지않았는데도 알고리즘을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타이핑 쳐대는 천재성등의 설정이야 참고 이해해 줄 수 있지만(사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현실성은 떨어집니다. 프로그램 언어라는 것은 현실의 언어와 같은 일종의 약속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 약속사항을 모르면서 프로그램을 짠다는 것은 창조의 영역에 들어가는 문제이니 이는 마치 미국인이라는 존재와 영어를 처음 본 사람이 천재라서 바로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과 같은 설정입니다. 최소한의 언어체계에 대한 표본조사도 없이 말이지요....아무리 설정이라지만 개연성이 떨어지는게 이런거지요. 차라리 천재가 아니라 초현실적인 능력이 있다는 설정이라면 달라지겠지만 말이지요)
어찌되었던 그장면에서 제가 주화입마에 걸린 사유는 말도안되는 천재성(?)이 아니라 그날 강의실에서 처음 본 겁나게 퀸카인 여자애가 노땅 예비역 옆자리(주인공이지요)에 수업시간 정도의 시간동안 앉아있다가 키스를 때려버리는....ㅡㅡ;
캐릭터를 구현하는 방식이야 작가의 권한이니 어떤식으로 캐릭터를 그리던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니지만 독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캐릭터 관계구성, 행동등등은 충분히 책을 덮게 만들지요.
그런걸 그냥 "바보같은 행동을 하기 때문에, 또는 황당한 짓을 하기때문에" 같은 사유로 덮는 걸로 인식해서는 안되겠지요.
비근한 예로 천재라고 설정은 잡아놓았다면 독자들이 예상하거나 쉽게 보기 힘든 언어, 논리의 구사 같은게 조금은 보여져야만합니다. 그게 아니면 다른 말로 "주변인물이 바보일뿐" 같은 막장이 되는게지요.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인기요인은 무수히 많겠지만 저 개인적으로 김은숙작가를 좋게보는 이유는 바로 그 의외성입니다. 현빈의 입을 빌려 나오는 그 상류사회의 계층이 가졌을 법한 논리와 인격을 구현해서 보여준다는게지요. 단순히 설정만 그런게 아니라....
그런게 캐릭터(인물)에 대한 성찰이 아닐까 합니다.
바보 같아서가 아니라 상황이 납득이 안 갈때 덮겠죠.
일본 만화 중에 고스트 스위퍼의 남주 같은 경우는 목숨 걸고 껄떡+바보짓을 해대지만 애초에 캐릭터 자체가 그렇고 내용도 그러니까 책이 제법 팔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ㅋ
그런데 전혀 그럴 분위기도 아니고 딱히 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밑도 끝도없이 그런 바보짓을 하고 있으면 글렀다고 보고 그냥 덮는 거죠.
예를들자면, 미인계로 부모형제 다 죽고 집안이 망했는데 그 대상이 여자라서 '여자를 어떻게..남자라면 여자를..' 등의 예전 소설에 자주 등장하던 그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손을 못 쓰고 있으면 무림이고 판타지고 간에 현실의 작가까지 바보취급 당하겠죠.ㅋ
본문 1화지요...가장 처음에 보는 글......
일단 독자가 첫회차를 보고나서 선작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글에 대한 몰입도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몰입도가 높을수록 선작수가 올라갈 확률이 높고, 이러면 연독률이 높아집니다. 선작수를 중간에 선삭한다는 애기는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애기지요.^^
이게 선작수'Law입니다.
이론적인 계산법은....
1회차 조회수/10 * 2 => 예상 선작수 Value!!
여기서 나온 예상 선작수 Value와 선작수를 비교하는 것이지요.
선작수/예상 선작수 Value*100=100% 기준으로.....
100%가 넘을수록 글의 몰입도는 높고, 글의 완성도가 높다는 의미이고, 100%이하로 떨어질수록 글의 몰입도가 낮다는 의미입니다.^^
주인공이 찌질하면 책 던지고 싶죠. 다만 불리한 성격 능력 환경 등을 극복해 나가는 성장형 소설이라면 나름 매력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인 그랜트는 어릴때 무척이나 소심했고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군에 잠시 있다가 농장에서 일하는 농부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장교로서 용맹한 병사를 훈련시키고 능력을 인정받고 승승장구해서 장군이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뒤 그 후광으로 대통령까지 연임 해먹었지요. 그러나 근본적인 찌질함은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법. 그의 정권은 유유부단함 속에 부패의 온상이 되었던 거지요. 여하튼 이런 스토리라면 작문으로 쓸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가 한 말중에 이런게 있죠. 이 세상은 사람의 계획으로 이뤄지는 것은 드믈며 알게모르게 섭리에 따라 돌아간다는 거죠. 운명을 믿은 것 같지는 않지만 극적인 삶을 산 그에게는 경험에서 나오는 평이었을 겁니다.
여하튼 사람에게는 알 수 없는 그릇과 같은 잠재력 같은게 있어서 현재의 모습을 갖고 평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나름의 흥망성쇠가 있지요. 때문에 찌질한 주인공이라도 그 벽을 깨면 영웅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우상이 되는거죠. 그런 인물이라면 누구나 점차 매력을 느끼겠죠.
소설에 따라 평범한 '나'를 투영시키는 것과 우상에 투영시키는 것 그외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는데 이쪽 장르에서는 평범함을 거부하고 자신이 투영된 주인공의 일탈을 원하죠. 하다못해 악당이라도 입체적인 인물이어야 재미있지 찌질한 근성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책을 던지겠죠. 평범하지만 인정하기 싫은 추한 모습도 예술적이라야 끌어안을 수 있는 겁니다.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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