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작품명 : 대법왕
출판사 :
대법왕은 재미있다. 어떤 재미냐 하면 말초적인 재미가 있다. 난무하는 폭력과 잔인한 복수행, 문란한 여인들이 양념이 되어준다.
그 재미 때문에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스님이라는 것을 못 본 척했고, 잔인한 복수를 하는 자가 대법왕 즉 달라이 라마라는 것도 넘어갔다. 문란한 여인 중 한 명이 달라이 라마의 제자라는 것도 장르의 넓이 안에서 수용할 수 있는 소설 상의 설정이라 여겨 넘어갔다. 왜?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드디어 재미 때문에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만나고야 말았다.
6권 중반을 조금 지나면 주인공이 자신의 집에 들러보는 장면이 있다. 사람이 없는 집에 훔쳐갈 것이 있나 동네 양아치들이 왔다가 주인공을 보고는 돈을 뺐으려고 협박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양아치들이 예전 주인공의 부하들이었다.
굉장히 짧은 장면이고 전체적으로도 중요성이 거의 없는 장면인데 여기서 주인공이 한가지 깨달음을 얻게 된다. 무엇 인고하니 예전 부하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금세 형님거리는 것을 보고는 무림인과 비교해서
'아, 이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들이다. 누구보다 순수하기에 양아치 짓을 하는 거야.' (p22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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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순간적으로 "이런 미X.."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멍해져 버렸다.
이 장면을 보고 대법왕을 다시 생각해보니 직접적으로 작가의 생각이 표현된 것이 이 부분일 뿐 대법왕을 관통하는 큰 흐름은 조폭물이었다. 중의 탈을 쓴 조폭들과 한순간도 벗어나지 않는 뒷골목 사건들... 갈취, 모욕, 협박, 폭력, 배신, 복수, 기타 등등 더 할 말도 없다. 생각해 보면 요즘의 장르는 무협지에 협이 없고 판타지에 환상이 없다. 꿈도 없고 협도 없이 힘만 남은 요즘의 장르 소설이기에 조폭물이기 때문에 나쁘다고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순수하고 착한 양아치라는 작가의 표현과 표현의 기반이 된 생각은 정말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반면교사 반면교사 하지만 이것은 반면교사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경악한 것은 나도 모르게 이런 내용을 재미있어 하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내 무의식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예를 따진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느새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는 XX와 XX에 중독되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무서워져 버렸다.
단순한 나의 과장일 수도 있다. 단지 소설 속 인물의 생각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의 머릿속에 없는 것이 글로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양아치가 세상에서 제일 착하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책을 재미있다고 히히덕 거리며 읽고 있던 내가 두려워진 것이다.
때문에 한가지 바라는 것은 다만 내가 다음에 책을 고를 때에는 지금보다 조금만 더 신중해 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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