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수어재
작품명 : 브라반트의 흑기사
출판사 : 로크미디어
금요일에 올리려고 작성하였다가,
가입후 72시간이 지나야 글작성 가능하다하여,
72시간이 지난후 즉시 올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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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제 감상글이며
제 개인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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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소설과 보통소설
장르소설과 일반소설,
막장에 대한 기준은
얕게는 오탈자 수두룩한 글, 한 문장 쓰면서도 신중하게 쓰인글,
깊게는 겉으로 드러난 글, 깊게 생각해야 하는 글,
보통으로는 1초에 열몇장씩 넘기게 되는글, 한페이지 읽는데
10분넘게 걸리는 글, 1시간이면 한권 읽는책, 한권읽는데
3~5시간이 걸리는 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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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브라반트의 흑기사를 읽는데 한권당 3~5시간정도 소요
되었습니다. 집중해서 딴짓안하고 읽어서 그렇게 걸렸습니다.
신중하게 쓰여진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깊게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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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교보문고에가서 일반소설이나 인문서적을 사왔을땐
몇일간 거기에 집중하느라 도서대여점을 안가고,
시내에 있는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지 못했을때,
도서대여점 을 한달에 6~7회, 한번에 3~10권씩 빌려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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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지 한참 지났기에 사실관계가 틀린부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글 의 지향과는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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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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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반트의 기사,
기사란 제목때문에 빌려보지 않던 책입니다.
그런 류의 책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중세 유럽에 기사, 그리고 용병이라니... 책설명을 보고 그대로 다시 끼워넣고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 대해 엄청 까는 내용의 감상글,비평글이 올라오더군요.
그러려니 했는데, 그 까는 정도가 너무 심하여, 1권을 빌려봤습니다.
괜찮더군요.
비판받었던 부분도 읽어봤지만, 제가 읽기에는 큰 거부감이 안들더군요.
2권 빌려 보았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1,2권을 보고 이곳에 이 책이 왜 이렇게 까이는 것인지 궁금하였습니다.
옹호글을 올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문피아는 눈팅만 하단 사람이라 회원가입하기 귀찮아서 그만 두었습니다.. 그렇게 며칠(혹은 몇주)지나고 잊고있었는데 다시 밑에 그에 대한 글이 올라왔고 그 글에 대하여 그 댓글이 여전히 비판적이더군요. 그래서
회원가입하고 이 글을 씁니다.
전에 소설을 읽고 옹호글을 올릴까 말까 2,3일동안 고민했더랬습니다. 까이는 정도가 너무 심하고, 그 까이는 이유가 너무 터무니 없었기 때문입니다.
3권이 나왔길래 읽어 보았습니다. 1,2권과 다르게 전개되었지만, 볼만
했습니다. 너무 심하게 망가지는게 불편했지만,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차피 인간이란 나약하고, 이기적이며, 주인공이 과거 중세유럽으로 와서 줄곧 패닉상태를 유지했었던것으로 봤고, 그 패닉이 현실감을 찾으면서 현실을 인정하는 듯 보여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노력이 무산되면서 다시금 패닉상태에 접어들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문명사회에서 살다가 왕과,귀족과,평민과 노예가 있는 중세유럽에 떨어진 사람이 멀쩡하면 그게 이상한거죠.
그렇다고 행동에 개연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패닉상태에 빠진 상태의 사람이 자기가 멀쩡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력하고 좌절하고, 신을 부정하고, 신을 찾고, 그리고 다시 노력하는 과정이 1권,2권,3권에 걸쳐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현대에 살다가 중세에 떨어져서 히히덕거리면서 멀쩡하게 살아가는게
막장이지, 중세에 떨어져서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까이는게
막장이지.
현대에서 중세에 떨어져 비논리적이고,비이성적이고, 패닉상태(패닉이란 보는사람이 알뿐 본인은 자신이 패닉상태인지 인식못합니다. 본인은
자신을 멀쩡하다고 생각하죠, 주인공의 변화막측하고 어떤땐 생명을 도외시 하고 어떤땐 생명에 연연하고, 자비심을 가지다가 비정해지는것.
좌절하고 ,극복하고, 남을 배려하다가 남을 죽여대는 것 그런것이 패닉상태인 것입니다. 심리 자체가 불안정한것입니다.그래서 쉽게 분노하고,
쉽게 용서하고, 깊게 생각하고 낮게 생각하고 그런것이 계속 반복됩니다만 그것이 수시로 반복되는게 아니라, 일정기간에 걸쳐서 차춤 변합니다. 한동안은 화내다가 한동안은 죽고싶어 날뛰고, 한동안은 친구도 사귀고, 한동안은 야망에 불타고 한동안은 좌절하고 한동안은 악마가 되어 날뛰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야망과 자비심을 회복해 가죠)
그런것이 1,2,3권에 걸쳐서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이런것을 막장소설이다. 이런것을 개연성없다.
종교에 매몰되어있다...(유럽이 종교에 매몰된 나라임에도)
주인공이 개연성없다. 비논리적이다. 비이성적이다.
작가가 문장력이 없다. 재미없게 쓴다..
라고 성토하면서 막장소설 인증해대는 것을 보면서,
장르소설의 막장스토리에 매몰되어, 장르소설의 법칙에 매몰되어,
막장소설과, 보통소설을 거꾸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주인공은 현실을 인정안하고, 마구 덤벼듭니다.
영주와 귀족들은 그런 주인공을 삐에로 취급하죠.
차츰 현실을 인정해 가면서 좌절합니다.
영주부인은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끼죠.
하지만, 영주와 그 아들들이 주인공을 배척하자,
영주부인은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주인공을 내 치는데 동참합니다.
아들을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을 내치는 과정의 비열함에 환멸을
느낀 아들이 괴로워하자 아들과 같이 친정으로 떠나갑니다.
영주부인이 평소에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사랑이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현대에서온 주인공 특유의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연민을 느끼게 된것이겠죠
노예들중 친구가 생깁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어느 강력한 영주의 서자이죠.
포로로 잡히지만, 가문에 대한 환멸과, 자기처지에 대한 환멸로 그냥 노예로 살다가
죽으려 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주인공과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합니다. (이 것도 많이 까더군요. 세상이 한쪽으로만 흘러갑니까?
이런사람 저런사람 다 있습니다. 그런 다름을 인정못하니 이런 것도 인정못해서 막장이라고 욕하더군요)
현대에서 살았던 사람과 중세를 살아왔던 사람은 생각.이념,행동이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와 틀린,다른 사람을 보고, 삐에로 일뿐이라 생각했고,
어떤 사람은 웃기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틀림에,다름에 호기심,혹은 동정을 느낍니다.
아마 그들은 현대와 중세를 살아왔지만, 그 본성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바로 측은지심이 있는 것 이기에 남이 못보는 무엇인가를 볼 수 있는 것일테죠. 주인공과 친구가 되는 이들과,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껴 보살펴주려는 영주부인이 그런 사람들일테죠. 측은지심으로 사물을 보는 사람들, 야만의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은 항상 있어왔으니까요.
둘은 용병대에 합류합니다. 주인공은 현대적인 지식을 살려보려 하지만 역사에 대해선 무지합니다. 특히 유럽의 역사에대해선 아무것도 모르죠... 그러니 할수 있는게 없습니다.
그저 단편적인 지식으로 용병대를 한곳에 모아놓고 서로 의지하면서 현대적 개념의 연금생활을 할수 있게 하여 용병이 죽어서도 가족이 살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여러 난관에 부딪치지만 어쨌든 성공의 길로 가는 듯 보입니다만,
용병단 자체가 배신으로 인해 와해되어 버립니다.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죠.
절망은 이런 저런 생각할 여유도 안줍니다. 살아남기 위해 강도가 되고 도적이 됩니다.
주인공은 아내와 어린 자식들 앞에서 아비의 이빨을 뭉개버리죠. 살인 강도를 일삼습니다.
다른 용병들보다 더 잔인해지고 비열해 집니다.
모두가 그들 용병대를 악마라 부릅니다. 그런 용병대의 용병들도 주인공을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합니다. 용병대에 수배령이 내리고 진압군에 포위되지만 진압군 대장이 그들 두 친구의 또 하나의 친구입니다. 노예선에서 사귄 세명의 친구중 한명인거죠........... 친구는 그들 두 친구를 놔주고 모든 작위를 박탈당하고 악마의 섬이라 불리는 감옥에 갇힙니다.
이제 주인공은 다시 살아가야할 이유가 생깁니다. 감옥에 갇힌 친구를 구해내야 합니다.
진정한 기독교도였던 친구는 주인공이 너무 악마가 되어 죽어서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못죽이는 것입니다. 죽어서 구원받을 여지가 있으면 죽이겠는데 구원을 받지 못할 악마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못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을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거듭나라는 편지를 남기고 주인공과 그 친구, 용병들을 놔줍니다. 구원을 찾으라면서요.
구원을 받을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구원도 받지 못하고 죽는 일이 없으라고 하면서 놔주죠.
이제 주인공은 친구가 감옥에서 버티지 못하고 죽기전에 구해내야 합니다. 이제 그것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수 있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에게 구원을 받을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게 그것이 친구와의 신의이기에 두 번 친구를 배신 할수 없기 때문에 악마처럼 강도짓을 할때처럼 부끄러운짓은 더 이상 못하지만, 최대한 빨리 자리잡고 세력을 넓혀 친구를 구해야 합니다.
드디어 주인공은 현실에 내려옵니다. 그동안의 주인공은 세상에서 붕 뜬채, 국외자처럼 살아왔습니다. 패닉상태로 살아온것이고, 관조자로 살아왔던것입니다.
하지만, 죽으면 구원받지 못할, 그래서 천국에도 지옥에도 가지못할 친구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모든 영예를 버리고 감옥에 갇힌 친구를 구하기 위해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수 있습니다. 관조자가 아닌, 국외자가 아닌, 현실속으로 들어오게 된것입니다. 친구를 구하기 위해, 그런 빠른 방법을 찾기위해 은인인 용병대장이 거치장스러워져서 무리수를 두어 용병대장과 대립하고 자신이 대장이 됩니다. 자신이 할수 있는 최선을 하기 위해서이죠. 대장을 쫓아낼 생각은 아니고 같은 권한을 가지기 위한 것이지만 어쨋든 대장이 둘일수는 없으니 한명만이 대장이 되어야 했고 주인공이 대장이 됩니다. 주인공의 그런 괴로움을 이해하는 용병대장은 억울한 마음에서도 분쟁이 안생기게 스스로 대장자리에서 내려옵니다. 그리고 서운한 마음을 완전히 털어내게 되었을 때 물심양면으로 주인공을 돕죠. 강도짓을 하던때의 마음을 주인공이 가졌다면 그래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용병대장이 되었다면 전임 용병대장은 주인공을 이해할 생각도 안하고 둘중하나가 죽을때까지 이전투구했겠죠... 하지만 감옥에 갖힌 친구를 위해 악마같은 짓을 하면 그것이 스스로 감옥에 갖힌 친구를 두 번 배신하는것이기에 정도를 걷고자 하는 주인공은 용병대장이 되고, 원수가 될수도 있었던 전임용병대장과도 관계를 좋게 가지게 되는 더 좋은 기회가 된것입니다. 이게 3권까지의 내용입니다.
버림으로써 얻을수 있다는 현대사회의 좋은 가르침은 현대사회에 있을 때 배웠던 죽은 지식이 아닌, 친구의 온몸을 다바친 희생으로 온몸으로 느끼게 된것입니다. 이제 주인공은 영웅이 될수 있는 준비가 된것입니다.... 이제 주인공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요. 4권이 너무나 기다려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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