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플레이 더 월드
작가 : 디다트
출판사 : 문피아 유료연재 (완결)
(편의상 비어를 사용하겠습니다.)
올해 2월, 총 188화로 완결된 플레이 더 월드를 묵혀두길 반복하다 드디어 근 일주일에 걸쳐 완독했다. 글을 제대로 접하기 전부터 작품에 대한 상반적인 견해를 봐왔었다. 용두사미격의 결말이 아쉽다는 평과, 어느 정도 깔끔하게 끝냈다는 쪽. 결과적으로 보면 글 전체에 걸쳐 뿌려진 무수히 많은 떡밥들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은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구매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개인적은 견해로서 단언컨데, 플레이 더 월드는 훌륭히 잘 쓰인 소설이다.
소재 자체는 유행처럼 번진 레이드물에 과거 회귀의 요소가 더해졌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같은 재료라도 누가 요리하냐에 따라 맛이 확 달라짐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플레이 더 월드. 신비한 힘을 가진 수수께끼의 앱을 설치한 순간, 당사자는 플레이어라는 특수한 위치와 함께 더 월드가 생성하는 던전을 파헤칠 수 있게 된다. 인류에게 찾아온 기적이나 다름 없었다. 문제는 그런 기적만이 온 것이 아니란 점...
2020년, 던전에서만 활동하던 몬스터들이 던전을 벗어나 현실 세계에 나타나는, 일명 ‘몬스터 아웃브레이크’란 사태와 함께 세상의 종말이 진행된다. 그 종말의 끝에까지 싸웠던 주인공 ‘박도광’은 결국 용군주라는 어마어마한 괴물 앞에 쓰러지고, 눈을 뜬 박도광은 그가 플레이어가 되기 이전의 시간대로 회귀했음을 깨닫게 된다.
이야기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간 8성의 몬스터, ‘용군주’를 죽이기 위한 주인공의 행보로 펼쳐진다. 사실상 주인공의 궁극적인 목적인 동시에 글의 종착지나 마찬가지다. 냉철하고 누구보다 뛰어났던 최강의 사냥꾼, 박도광은 자신의 힘을 되찾으면서 용군주를 죽이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주인공의 앞길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된 것은 난공불락의 퀘스트도, 압도적인 힘을 가진 몬스터도 아닌 바로 인간이었다. 시간 회귀로 힘을 잃은 박도광은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지만, 그보다 더한 강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길 반복한다. 온전히 힘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선 눈치게임도 성립되지 않는 일방적인 폭거였다.
다가올 재앙을 막기 위해 눈부신 속도로 성장하는 주인공. 그렇게 두각을 드러내는 박도광의 모습에 자신들 집단의 이익을 계산하며 주사위를 굴리는 인간들. 주인공 본인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 과정을 몸으로 떼우는 것 역시 주인공이었다. 오로지 용군주 살해만을 바라보는 박도광도 답답하고, 보는 독자들도 서러울 정도로 배신과 배신이 난무한다.
바로 이것이 플레이 더 월드의 특징이라 생각한다. 던전 공략에만 치중되지 않은 균형. 박도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군상극이 던전 플레이에 영향을 주고, 그런 던전 플레이가 이번엔 새로운 양상을 가져온다.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장인이 한땀한땀 지은 명품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깔끔하게 전개된 이야기가 담백한 맛을 내다가도 어느 순간 강렬하게 이마팍을 확! 친다.
박도광의 처지는 고래 싸움에 끼인 새우. 아니, 고래들에게 노려진 새우라 할 수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모든 난관을 헤쳐나가 이윽고 먹이사슬의 끄트머리까지 올라서게 되는 주인공의 행보는 아주 기가막힌다. 글 초중반의 답답함이 뻥 뚫리면서 다소 루즈해질 뻔한 리듬을 통쾌하게 뒤바꾼다. 필자는 이런 글을 좋아한다.
캐릭터로 이야기가 넘어가면, 쓰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당장 머릿속에 정리가 되지 않을 정도다.
최강의 사냥꾼 그 자체로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주인공 박도광부터 시작해, 그의 오른팔과 같은 지영우. 차갑기 그지 없지만 내 남자에게만은 따뜻한(?) 채은영. 주인공 박도광의 스승인 김강인, 악동 알렉스 파간, 신비스러운 닥터 둠, 어느새 귀여움까지 장착한 쇼우메이 등...
인물 하나하나가 글 속에서 완벽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부족하게나마 글이란 걸 쓰고있는 필자로선, 자신이 창조해낸 캐릭터를 이렇게까지 완성도 있게 그려내는 작가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부럽다.
영리한 인물이 몇 수 앞을 바라보고 일을 짜내는데, 다른 한쪽에선 마음에 칼을 품은 이가 뒷통수 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 갈등 밖에선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세상을 활보하는 악동이 있다. 반응이 터져나온다. 와! 설마 저기서 저런 짓을? 하지만 과연 ㅇㅇㅇ답구만!
각각의 인물들이 가진 특징들이 생생하게 살아있으니 사람들은 저렇게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가 부럽다.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작품 속 인물들이 수많은 독자들에게 완벽한 인격체로서,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인정받은 것이 아닌가?
이야기의 클라이막스에선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들에겐 다소 싱거웠다는 평을 받는 장면이지만, 그 장면이 만들어지기까지 그간 있어온 인물들 간의 일들을 떠올리자 닭살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용군주와의 결전은 글의 단어 하나하나까지 필자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완독까지 걸린 일주일은 사실 우스운 소리다. 왜냐하면 시간 관계상 5일간 읽은 분량이 고작 20화 정도였으니까. 그 이후부터 필자는 글이 끝날 때까지 합법 마약에 중독돼 버렸다. 비교적 짧은 시간안에 몰아치듯 글을 읽어서 감회가 남다른 지도 모르겠다.
글을 다 읽고나서 감상글에 쓰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았다. 막상 타자기를 두드리다보니 거짓말처럼 까먹고 말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필자가 플레이 더 월드를 얼마나 재밌게 봤는지 표현되었으면 좋겠다.
아쉬운 부분이 아예 없다는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여전히 풀리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런데 개인적으로 필자는 그리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소 떨어지는 디테일에 관대하다기보단 원래 이 소설의 목적은 단 하나였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플레이 더 월드라는 신비한 앱. 지구공동설. 용군주의 본체. 물론 궁금하긴 하다. 사람에 따라선 핀퐁처럼 치여대던 초기 주인공의 모습보다 더한 답답함과 실망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필자는 글의 완결에서 그 이후를 생각하지 않았다. 박도광 팀과 용군주의 결착이 이뤄지고 그 끝에 도달한 순간, 사실상 글의 끝임을 실감했다.
영화로 생각해봤다. 트루먼쇼의 짐캐리가 새장 밖으로 나간 이후, 레옹의 마틸다가 성장한 모습 등등. 너무나 궁금한 부분은 많지만 그 전에 부분적이나마 하나의 이야기로서 매듭이 지어진다. 플레이 더 월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짐캐리는 자신의 삶이 거짓됨을 깨닫고 스튜디오를 나갔으며, 마틸다는 레옹과의 가슴 떨리는 생활 끝에 그의 희생으로 살아남는다.
박도광은 시간 회귀 이후 가진 최초의 목적이자 유일무이했던 궁극점에 도달했다. 그의 행보, 시간 회귀 이후의 삶은 오직 그것을 위해 펼쳐졌다. 그것이 이뤄진 순간 박도광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 것이라고. 독자로서의 필자와 함께한 박도광의 이야기는 거기까지이며, 이후의 일은 필자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펼쳐질 그들만의 삶으로 남게 됐다.
취향에 차이는 있고, 사정에 따라 유료 연재란 부분이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이 글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시간을 들이더라도 한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근래 등장해온 여러 소설들과 비교했을 때,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멋진 소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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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 없이 길기만 한 글을 전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겠습니다.
워낙 애정이 많이 섞여있긴 하지만 추천 게시판보단 감상글에 가까운 듯 해서 이곳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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