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때였습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저는 혼자서 몽상을 즐겨했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어릴때 했던 재미있는 상상을 적어보겠습니다.
완전 천재였던 저는 장난감 크기의 비행기를 만듭니다.(왜 천재인지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비행기 조종기도 만들고 - 비행기에 카메라 기능도 있어서 조종기로 그 화면을 볼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논리적인 그 무엇도 없습니다. - 해서 비행기를 띄워서 개미 왕국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비행기는 신기하게도 크기도 마음대로 조절이 가능합니다.^^ 크기를 작게 해서 개미왕국으로 진입(짜잔~), 처음에 개미들은 비행기를 보고 마구 공격합니다.(왠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놈들이 깨물고 창도 던지고^^; 해도 당근 비행기는 끄덕도 안합니다. 좀 기다리다가 비행기에 있는 조그만 폭탄을 살짝 투하했습니다. 그리고 광선 빔도 한번 쏴 줍니다 (하하하). 개미들은 난리가 났고 덤비다가 안되니 걍 꿇어없드려서 굴복합니다. "용서해 주세요."하고요^^ 저는 비행기에 달려있는 스피커로 개미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고 - 어떻게 된 일인지 개미들의 말도 전부 통역이 되고 내 말도 통역됩니다. 원리나 이유 ? 그런거 없습니다.- 개미들을 부추겨서 다른 개미왕국에 전쟁을 걸었습니다.우리 개미왕국의 전사들이 몰려가서 열심히 싸우지만 아무래도 밀립니다.(왜냐하면 상대는 불개미였으니까요. 저는 어릴때 촌에 살아서 그런건 조금 압니다. 불개미는 붉은색 개미인데 정말 장난 아니게 쎕니다. 일반 검은 개미는 상대도 안되지요.)우리 개미들은 싸우다 밀리니까 비행기한테 와서 도와달라고 합니다. 저의 비행기는 당당히 날아가서 붉은 개미들을 싸그리 죽여버립니다.(당시 반공방첩이란 말이 너무 흔할 정도로 주입교육이 강해서 저는 붉은 색이 무조건 나쁜걸로 알았습니다. 빨갱이등등...) 그리고 우리 착한 개미들을 그곳으로 이주시켜서 편히 살게합니다. 물론 저의 비행기는 그들에게 신같은 존재로 군림하고요^^
위에까지 상상하면 그때의 저는 정말 굉장히 즐거웠습니다.개연성이고 뭐고 생각할 이유가 없었지요. 무조건 즐거웠고 제가 생각한 것이 재미있었으니까요(2부도 있답니다.하하하^^)
요즘 일상이 바빠서 감/비나 논/비란에 들르지 못하다가 오늘 아침에야 짬을 내서 보니 여전히 열심히들 토론을 하시더군요. 작가와 독자, 그리고 비평에 관한 서로간의 의견을 보고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너무 격한 문장들도 많았지만 대체로 논리정연한 말씀들이었습니다. 그 문제에 관해 저는 제 나름대로 감상적인 느낌이 되어 몇자 적어보겠습니다.
1. 여러분은 비평을 할때 지나치게 논리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 같습니다. 과학이 세상의 절대 진리가 아니듯 논리적 비평역시도 비평의 모든것은 아닙니다.감상적인 비평도 존재할 수가 있고 무시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감정적이 아니라 감상적인 입니다.) 논리적인 비평을 하려는 무협이라는 장르문학 자체가 논리와는 거리가 먼 장르라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습니다. 관점이나 시각의 차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비평은 항상 냉정하고 차가운 비평이 옳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그 어떤 비평이라도 감정이 섞일수가 있습니다. 정작 본인은 냉정하게 비평했다고 한치의 사견이 없다고 주장하더라도 그것은 참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나 주제에 관해 접근하는 방식은 누구나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사고의 형성과정이 모두 판이하기 때문이지요. 단, 비평이라는 말이 갖는 무게를 모두 한번쯤은 다시 한번 인지를 하고 임했으면 합니다. 일단 카테고리에 비평을 선택하면 그에 수반되는 자기 비평글에 대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말입니다.
2. 개연성에 대하여 .
많은 비평논객들이 작품을 비판할 때 가장 많이 들춰내는 것이 개연성입니다. 개연성이 부족한 작품을 보면 참지 못하고 그 칼날을 마구 휘두르지요. 개연성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네, 물론 중요하지요. 하지만 역시 작품이 비판받아야할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것은 아닙니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을 보면 주인공들이 주유소를 습격할 그 어떤 개연성도 없습니다. 그들의 과거 회상씬을 보면 비뚤어진 이유에 대한 나름의 근거 제시는 될 수 있어도 그게 주유소를 습격할 직접적인 근거는 되지 않습니다. 그냥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다가 '우리 주유소나 털까?''그래, 그러자.'하고 우르르 몰려가서 난장을 치는겁니다. 그걸 보고 관객들은 몇부류로 나뉠수 있습니다. '어, 저럴수도 있구나.''저것들 또라이네.''무슨영화가 이래?''그래도 재미는 있네.'등등의 반응이 나올 수 있죠.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그 감정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10년동안 그냥 충실히 하루도 쉬지않고 열심히 직장에 다니던 사람이 불현듯 '아, 그냥 여행이나 다녀올까?'하고 휴가를 내고 여행을 갔다고 해서 '저런 개연성 없는 놈.'하진 않지요. 우리들이 즐기는 무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그 장면에서 개연성이 부족하더라도 작가는 등장인물의 마음이 되어서 그 심리를 써내려갔을테니 작가를 존중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분명 극 중의 등장인물이 화산에 간다고 해서 갔는데 나중에 보니 무당파에서 생난리를 치고 있다고 해서 개연성이 없다고 욕할 것이 아니라 그 등장인물의 기분이 되어서 몰입해보면 걍 그냥 무당으로 가고 싶어서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인간이니까요.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지탄을 받을 작품은 존재합니다.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 양화와 악화의 구분경계선은 참으로 모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와 지식정도,취향에 따라 그것은 모두 달라집니다. 그 기준을 잴 수 있는 척도를 누구도 이거다하고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최소한 글 쓴이를 존중해 주어야 하는게 바른 소양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요? 비평글을 쓸때 '만약 내가 이 글을 쓴 작가라면 이런 말을 하면 인간적 인격적 모욕이라고 느껴질까'하고 스스로를 비추어보고 거기에 합당하다면 그것이 각자 개개인의 비평의 기준이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물론 믿고 책을 샀는데 정말 어이가 없다면 욕도 나올수 있겠지만 선택은 그 자신이 했으니 작가에 대한 인격적 모독만큼은 금해야지요. 그 인격적 모독의 기준은 위의 사항과 같지 않을까 합니다.
4. 담천님이나 그밖에 작가분들의 비평에 대한 나름의 소견을 보면서 저 역시도 반성도 하고 '그건 아닌데.'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작가와 독자간의 생각의 차이가 크다는것도 느꼈습니다. 작가는 독자의 입장에서 독자는 작가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의 말뜻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깨어지지 않는 절대영도의 굳어진 자신의 신념만 고수한다면 대화는 될수 없고 토론또한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느낀 것은 작가들이 좀더 따뜻한 비평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 작품의 잘못된 점만 지적하는 것이 비평은 아닙니다. 잘되고 좋은 점도 칭찬해주고 미비하고 부족하다 싶은 점을 지적하는것이 진정 서로를 위하는 비평이 아닐까요? 그럼 작가님들도 덜 겁내고 참여도가 높지 않을까합니다.^^
終 . 비록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딱딱하고 차갑기 그지없는 플라스틱과 쇠와 유리로 이루어진 컴퓨터란 기계이지만 우리들은 따뜻한 체온이 흐르는 인간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사랑하는 고무림에서만은 넷이라고는 믿을 수없는 따뜻하고 훈훈한 인정이 흐를 수 있도록 서로가 조금씩 더 미소짓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장문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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