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훈영
작품명 : 금강동인
출판사 :
삭허님의 글에 댓글을 남기려다 글이 길어져서 따로 쓰게 됐습니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판단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주세요.
금강동인이 대여시장에서 외면 받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첫째, 내용이 어렵고 다수의 독자에게 공감을 얻어내지 못함.
금강동인은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불교적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그러다보니, 불교적 지식이나 이해가 따르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소림이 만월을 금강동인으로 키우는 과정에 대해 다수의 독자들은 소림의 결정을 단순 만행으로 치부하기에, 그 선택의 안타까움이나 사부의 애절함과 만월의 성장에 담긴 순백의 슬픔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연재 당시에도 '금강동인'이라는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를 만들기 위해, 하나의 인간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만드는 과정을 두고 '금강동인'이 '강시'와 다를게 뭐냐는 의견이 있었죠. 하지만, 불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금강동인'은 '부처'와 다를바 없습니다. 불교의 수행 목적이 부처에 있으니 금강동인은 죄악이 아닙니다. 소설 '등신불'의 소신공양도 현대적 관점에선 '자살'에 다름 아니지만, 종교적 관점에선 성불의 과정이죠.
다만 그 과정을 만월이 아닌 소림과 만월의 스승이 선택했다는 부분에서 갈등이 비롯되고, 만월이 소림에 느끼는 한없는 그리움과 슬픔이라는 이중적 감성의 근원이 되며, 인간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 존재가 되어 나타나죠. 그 과정을 이겨내어 진짜 인간이 되고, 또 진짜 '금강동인'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일진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어렵거나 황당한 이야기로 느껴질거라 생각되네요.
둘째, 주인공이 '중'.
무협소설에서 '스님'이 주인공으로 나와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신승'이나 '파계' 외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두 작품에서 주인공의 공통점은, '중'이었지만 중답지 않았고 소림에 미련을 두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금강동인'의 만월은 소림에 버림받았지만, 소림을 그리워하며 스님보다 스님답습니다.
이게 무슨 문제냐고 질문할 분들도 계시겠지만, 무협소설을 읽는 독자는 대리만족을 원하고 있습니다.
무협의 기본 골격을 보면, '절대무공을 익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고 명성을 드날리며 절세가인을 얻는다'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기본이라고 말할 정도로 정형화된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바도 이에 다를게 없겠죠. 권력, 명예, 사랑.
그런데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스님이란 존재는 이런한 '속세의 가치를 초월한 자'입니다. '만월' 역시 힘을 내세우지도 않고, 여주와 엮일지 어떨지 애매하기만 하고, 한마디로 대리만족이 어렵습니다. 특히나 요즘 대여시장의 추세는 먼치킨 코믹물이 대세로 보입니다. 감동? 교훈? 작품성? 다 엿바꿔 먹은지 오랩니다. 장르문학에서 재미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재미의 종류는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만큼, 자극적인 재미 외에 가슴을 흔드는 감동 한점 기대하는 게 뭐 그리 큰 욕심이 돼 버렸는지 모르겠네요.
'금강동인'처럼 인간관계에서 오는 가슴 저린 감성을 자극하는 글은, 가슴 한쪽 공허한 날에나 어울리는 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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