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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15 노레이션
작성
03.12.24 20:00
조회
951

       1.

       객관적 시야가 요구되는 비평이라고는 해도, 그 주체는 어쩔 수 없이

     하나의 개인일 뿐입니다. 따라서 제아무리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

     한다 해도, 그건 역시 개인의  호불호에 따른 평가일 수밖에  없겠습니

     다. 글 자체의 외형적 재미나 완성도보다는, 어떤 모호한 '느낌'으로 글

     을 읽는 저에겐 더더욱 그러합니다.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이런 말을 먼저 전제로 둔 것은, 제가  '몽필성'

     이라는 글을 꽤나 즐거워하며 읽었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몽필성'은 재미와는  거리가 멉니다. 소재에서부

     터 이야기의 전개, 등장인물의 면면이 그러합니다. 또한 글쓴이 자신부

     터가 재미를 위한 극적효과를 구성하는 데 인색하거나,  혹은 허술합니

     다. 그럼에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는 건,  그 독자가 바로 저이기 때

     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위의 말을 서두에 두른 것입니다.

      

       글을 읽다보면 어떤 식으로든 그 글을 사이에 두고 글쓴이와의 교감

     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특히나 그러해서,  제가 글을 읽으면서 동화되

     는 건 글 속의 등장인물이 아니라, 전체의 행간에 희미하게  드리워 있

     는 글쓴이의 모습입니다. 혹은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나타난  글쓴이의

     태도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몽필성'에는 조목조목 찬찬히 살펴가며 침착하게  써내려 가는 글쓴

     이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단어 하나마다에 올올이 마음을  쏟고 다듬어

     가며 등장하는 인물마다를 구체적으로 연상해 봅니다. 이 사람은 왜 이

     런 말을 할까? 왜 이런 행동을 할까?...가까이 밀착해서  살펴보기도 하

     고, 때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전체의 모습을 조망해보기도 합니다. 그리

     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글을 쓰는 동안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어쩌면 고용인 님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몸부림을 쳤는지도 모르겠습

     니다. 하지만, 적어도 '몽필성'이라는 글에  나타난 고용인 님의 모습은

     차분하고 안정되어 있으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저로 하여금 '몽필성'을 즐겁게 읽도록 만들어주었습

     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로서의 모습이거든요^

      

       2.

       '몽필성'의 눈에 띄는 장점은 안정된 문장과 차분한 어조입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글의 발목을 얽매고 있는 치명적인 덫이기도 합

     니다.

       그 장점과 단점이 한 눈에 드러나는 대목은  과도할 정도로 긴 만연

     체의 문장형식입니다. 우스갯소리겠지만,  무협소설 쪽에서  저보다 더

     길고 복잡한 문장을 사용하는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게 더 호

     감이 가서 즐겁게 읽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문장자체의

     실험이 아닌 이상, 이야기를 위주로 하는 소설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만연체의 문장은 그리 적절치가 못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가장 뚜렷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매상(賣上)을 기대하기 어려운 오늘 같은 날, 모처럼 든 단체손님이

     반갑기도 하련만, 사천객잔의 주인인  심대인(沈大人)은 무슨 고민이라

     도 있는지 제법 시끌벅적한 분양표국 식솔들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

     고 계산대 안쪽에서 인상을 구긴  채로 앉아있었고, 역시 모처럼  맞는

     연휴에 주방(廚房)에 딸린  방에서 숙수(熟手:요리사)들과 어울려  쌍륙

     (雙六:주사위 두 개로 하는  도박성 놀이)을 놀다가 한창  끗발이 오를

     무렵 심대인에 의해 어거지로  끌려나오다시피 한 점소이(店小二:점원)

     는 점소이 대로 볼이 잔뜩 부어서 분양표국  식솔들을 향해 연신 사나

     운 눈길을 보내며 계산대 앞 탁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었다."

      

       200자 원고지 한 장을 족히  채우고도 남을 분량이 단  하나의 문장

     속에 꽉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 문장의  장점은, 그러함에도 곰곰이 살

     펴보면 의미가 정확하게 드러나면서도 문법적으로도 아무런 하자가 없

     다는 것입니다. 이만한 길이의 문장을 의미와 문법적으로 오류 없이 쓸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심대인은 인상을 구긴 채  계산대 안쪽에 앉아있고,  점소이는 볼이

     잔뜩 부어서 계산대 옆 탁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다' 라는  의미이지

     요. 문장이 길어진 것은 심대인과 점소이가 왜 별로 좋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이어 붙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든 문장처럼 길고 복잡한 경우는  드물지만, 대개의 경우 '몽필

     성'의 문장이 만연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흔히 만연체는 독자를 지루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짧고 간명하게  치

     고 나가는 문장들이 가진 속도감, 박력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는 다분히 옳은 말입니다.

       고용인 님도 만연체의 이러한 문제점을 고민하고 계셨던 듯, 뒤로 갈

     수록 문장은 조금씩 짧아지고 차근차근  더듬어가야만 겨우 이해할 수

     있던 문장들의 의미가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만연체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형식적인 길이 때문인  것

     만은 아닙니다. 비록 문장은 짧아졌어도, '몽필성'은 여전히 만연체적인

     글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소설에 있어서의 문장은 그 하나하나가 독자의 사고단락입니다. 하나

     의 문장으로 표현된 의미가 바로 독자가 받아들이는  사고의 폭이지요.

     똑 같은 내용이라도 여러 개의  짧은 문장으로 구분해 놓으면,  독자는

     별 부담없이 그 의미를 이해해나갈 수 있습니다. 마치 작은  수저로 여

     러 번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너무  긴 문장, 이를

     테면 주걱 만한 수저로 한꺼번에 먹이려고 한다면, 웬만한 독자들은 감

     당하기가 힘들겠지요.

       주걱 만한 수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입, 그만한 양의 의미들을  한꺼

     번에 소화할 수 있는 사고의 폭을 가진  사람은 그리 흔하지가 않습니

     다. 물론 이 말은 사고의 폭이 넓은 독자가 좁은 독자보다 더 우월하다

     는 의미가 아닙니다. 소설에서는 소설에 적합한 사고의 폭이 있습니다.

     그 이상이나 이하를 염두에 두고 썼다면, 그건 소설이 아닌  다른 무언

     가가 되기 쉽습니다.

       뒷부분으로 가면서 점점  짧아지는 문장형태는 고용인  님 나름대로

     시도한 만연체의 극복방법이라 짐작됩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외형만

     의 변화일 뿐, 그 내부에  흐르는 것은 여전히 만연체적인  지루함입니

     다. 왜 일까요?

       만약 위의 인용된 문장을  몇 개의 작은 문장으로  분리한다면 어떨

     까...생각해 보았습니다.

       200자 남짓으로 표현된 내용 전부를 다 드러내려면 거의 300자 가까

     이가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주어와 술어가 반복되어야  하고, 하나의

     문장형식을 이루기 위한 소모적인 단어까지도 덧붙여 질  테니까요. 그

     결과 똑같은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서 오히려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해집

     니다.

       뒤로 갈수록 문장은 짧아지는 데도, 이야기의 속도가 떨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애초의 문장을  만연체로 만들

     었던 의미부분들도 함께 덜어내야 했는데, 고용인 님은  단순히 길었던

     문장을 여러 개로 나누는 작업만을 하신 듯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만연체는 글쓴이의 사고의 폭이 넓어서이기가 쉽습니

     다. 독자가 한 문장만큼의 폭으로 의미를 받아들이듯이, 작가는 한번에

     떠오르는 의미들을 한 문장으로 묶어내지요. 이건 딱히 좋다, 나쁘다라

     고 구분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만연체가 쓰이는 또 하나의 이유는,  너무 많은 걸 두루두루

     표현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점은 좋고, 나쁘

     고를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인물화를 그리면서 그  대상의 특징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벼운 선 몇 개로 누가 보든 그  사람이라고 알아차릴

     수 있게 만드는 화가와, 수많은 선을 덧대고 덧대서 공을 들여도 '사람

     얼굴이긴 한데, 누군지는 잘 모르겠네?' 라는 소리를 듣는 화가의 차이

     와 비슷합니다.

       고용인 님은 사람의 얼굴을 그리기 위한  기본적인 구도감과 펜선의

     활용능력은 충분하지만, 아직 그 사람의 특징을 뽑아내는  시야가 부족

     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어쩌면 그 반대로, 보지 않아도 좋을 사소한 부분까지도 명료하게 보

     이는 시야를 가진 덕분일지도  모르겠네요.^^; 분명히 보이는데 무시하

     기란 힘든 법이지요.

       아무튼, 하나의 특징을 표현해주는 선을 그렸다 하더라도, 주변에 쓸

     모없는 선들이 너무 많으면 그 중요한 선이 가려지게 마련입니다. 소설

     을 쓰던, 그림을 그리던 너무 넓고 차분한 시야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3.

       스토리에 대해서는 아직 거론할 단계가 아닌 듯 합니다.

       제가 읽은 건 이백여 쪽 남짓한 분량이고, 그나마 상당히 느리게  전

     개되는 까닭에 굳이 요약한다면 '무림고수의 꿈을 가진  몽필성이 마침

     내 무공을 익힐 기회를 얻었다' 라는 정도밖에는  진행되지 않았으니까

     요.

       주인공의 이름에서 연상되는 전체의 스토리를  예상한다면 '꿈은(夢)

     반드시(必) 이루어진다(成)' 일텐데, 현재까지는 몽필성의  '다분히 평범

     한' 가족/친구 관계가 전부일 뿐이었습니다.  두세 가지 사건이 전개되

     기는 했지만, 예의 그 '두루두루 차분히 다 표현하려는  욕심'에서 나온

     만연체의 분위기가 강렬하게 돋아나야 할 사건들의 인상을 희석시키는

     감이 있었습니다. 현재와 향후의 전개에 큰 전환점이 될 '척 노인' 이나

     '초혼검 종무기'같은 인물들도 덩달아 희석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만연체의 유령이 글 전반을 뒤덮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4.

       고용인 님의 '몽필성'에 대한 제 느낌은 여기까지입니다.

       쓰고 나서 읽어보니 '만연체'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일 뿐이군요. 게다

     가 비평이라기 보다는 '건방진 충고'에 가까운 어조인 것도 같습니다.

       변명하자면, '만연체'에 대한 부분은 저 역시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문

     제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고용인 님의 글을 보자니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가 난감했습니다. 결국 저 자신에게 이야기하듯이 비평문을 작성하

     게 되었지요.

       제가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은, 무협소설에서의 만연체가  언제나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나쁘다' 라는 정도입니다.

      

       부디 고민하시고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으

     시길 바랍니다. 덕분에 저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Comment ' 2

  • 작성자
    Lv.1 火星
    작성일
    03.12.24 23:50
    No. 1

    가인님의 글을 읽고 '몽필성'의 문체가 만연체 임을 알았습니다.-_-!
    쿨~럭!
    혹시 제가 고용인 님의 '몽필성'을 좋아하는 이유가 문체때문인지 궁금해 졌습니다. 약간 호흡이 긴 글이긴 하지만 그래선지 더욱 맘에 들던데요. 가인님 글도 그렇다면 어디서 연재 하시나요?^^;( 잘 모름니다...여기는 온 지 얼마 안돼서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검우(劒友)
    작성일
    03.12.25 00:23
    No. 2

    가인님께선 현재 정규연재란의 두 번째 자리에서, 해원이란 글을 연재하고 계십니다. 매우 독특한 설정이라고 호평이 자자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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