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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비화수를 읽고

작성자
Lv.1 박교주
작성
03.12.22 00:47
조회
871

처음 천도비화수를 손에 넣고 서문을 읽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이 글의 서문은 본문만큼이나 중요하다.’

그것-서문-은 앞으로 어떤 내용의 글을 전개해 나가겠다는 윤-손승‘윤’-님의 각오가 담겨져 있는 것 같았고, 글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생각게 했다. 한마디로 시작부터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약간 긴장한 상태에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 천도비화수를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러하듯 나도 윤님의 유려한 문체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을 듯한 그 시적인 배경 묘사와 비유는 ‘메밀꽃 필 무렵’을 생각나게 했고, 걸쭉한 방언과 욕설은 거친 파락호를 아주 그럴싸하게 나타내었다. 특히 방언과 욕설은 인물들의 희극적 행동을 더 감칠맛 나게 만들어주어서 자칫 팽팽하고 긴장의 연속이 될 수도 있는 글의 분위기를 적절히 이완시켜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들이 항상 글을 읽기에 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은 방금 전에 언급한 글의 희극적 요소들이었다. 분명 글을 재미있게 하여주는 요소이긴 하지만 글의 전체적인 흐름과는 상관없이 뚝뚝 끊기듯 나타나는 희극부분은 글 전체와 ‘조화’를 못 이루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윤님의 문체는 칼부림-혹은 비극적 장면-에 있어서 잔인했다. 뼈가 부스러지고 뇌수가 튀는 장면은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꺼려지는 부분이었으리라. 특히 글 중 등로가 윤간당하는 부분을 처음 읽었을 때는 굳이 이렇게까지 상황을 악화시킬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글을 읽을 때에는 이 ‘잔인하고 비통한 장면’이 당혹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당혹감은 안타까움으로 느껴졌다. 처음 읽었던 서문이 생각난 것이다.

‘세상은 완고합니다.’

‘고통이라 해도 좋을 만큼, 분명 고통으로 느껴지는 일이 많습니다.’

고통으로 느껴진 것이다. 그 ‘잔인하고 비통한 장면’,'등로가 윤간당하는 장면'이 윤님이 서문에서 말한 고통처럼 느껴진 것이다.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덮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속으로 윤님에게 되물었는지 모른다.

‘그토록 세상은 완고한지요? 그렇게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인가요?’

아직 어린 내가 세상의 완고함을 다 안다고 하면 그것은 뻔한 거짓말이리.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완고함에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에, 나는 글을 읽으며 윤님과 소우에게 더 큰 것을 바랬다.  

복수 그 이상의 것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이기에 소우의 과거는 다 잊었다는 말은 무척 반가운 것이었지만 아쉬운 점 역시 있었다. 과거를 다 잊을 수 있고-뭐 사람 발골 하는 것을 보면 완벽하게 잊은 것 같지도 않았지만-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장면의 과정 묘사가 미흡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조금은 갑작스러운 성장과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생략한 것은 그 과정을 나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큰 감흥이 오지 않았다. 물론 간혹 등장하는 동굴 속 생활에서의 회상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동굴 생활의 어려움을 나타내는 것 뿐이었다. 내가 찾던 나머지 반쪽의 주제-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힘-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소우 이야기는 이제 겨우 절반이 나온듯하다. 남은 절반의 이야기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나머지 반쪽의 주제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내가 오독(誤讀)한것이 아니길 바라며- 윤님의 말이라 생각되는…소우의 말로 감상을 끝맺으려 한다.

“난 주어진 순리대로 살겠어. 과거의 상처와 모욕이 나를 순리로 이끌었다고 생각해. 누나도 그렇게 생각하길 바라. 그래야 마음이 편해서가 아니야. 누구나 한 번쯤은 받는 시련이었으니까. 그 시련은 가혹했지만 그만치 우리가 큰 거야. 그리고 마음을 놔, 누나 . 장담하건대 다시는 모욕 받지 않게 해줄 거야. 쫓기지 않을 거야. 소중한 사람을 벌판에 놔두지 않아. 이게 내 순리야.”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상 외-많은 무협이 등장인물의 무공연마 장면을 일축하고 주요 화제에서 제외하는 것 같다. 한때는 아예 무공연마 장면이 다루어질 틈도 없이 처음부터 절대강자가 주인공인 무협도 많았다. 아마도 등장인물의 무공연마장면이 많이 삽입되면 글이 설명위주가 되고 지루해지기 쉬워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편견’이 아닐까? 무공연마는 무조건 10여년 길게 잡고 면벽 수련해야 한다는 편견. 오로지 혼자, 혹은 스승 하나랑 동굴에서 갈고 닦아야 한다는…?그렇게 해야지만 절대강자까지는 안되어도 절정 고수가 될 수 있다는?

많은 이들과 부대끼는 가운데, 실전에 실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진정 고수로 거듭나는 그런 ‘무공’과 그런 ‘등장인물’과 그런 ‘과정’을 그린 무협은 왜 많지 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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