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밤샘 근무를 마치고 나서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도서관으로 향하던 때였다.
도서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네 길가의 한 열린 문 안쪽에서 가느다랗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보이소! 부탁 좀 하이시더."
원래는 상업용 주택이던 것을 살림집으로 바꾸었는지 대문도 따로 없이 현관문을 열면 곧바로 시작되는 마룻바닥에 머리가 허옇게 센 할머니가 쭈그리고 앉아 나를 부르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지(저) 좀 옆집에 데리다 주이소."
"어느 집에다가예?"
"아무 집에나 좀 데리다 주이소."
황당한 주문이었다.
백내장인가 뭔가가 하얗게 뒤덮인 눈, 그리고 싸구려 몸빼바지 아래로 드러난 때가 덕지덕지 낀 맨발.... 오랜 병치레로 반 폐인이 되고, 그렇게 사람들과의 접촉이 끊어짐으로써 정신까지도 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할머니인 듯하였다.
"지금 집에 아무도 없습니꺼?"
"아무도 없습니더. 내 혼자만 나쭈고(놔두고) 나가서 들어오지도 않습니더."
생판 처음 보는 나를 앞에 놓고 할머니는 분연히 자기 식구들을 성토하였다.
대충 얘기를 들어 보니 이 집은 할머니의 딸네 집이고, 원래 이 할머니는 서울에 있는 아들네에서 살고 있었던 듯하였다.
그리고 모르긴 해도 그 아들은 어머니를 수발하는 의무를 자기 누난지 여동생인지에게 슬쩍 떠넘겨 버렸는데 할머니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고....
뭔가 가내 부업을 하여 공장에다 하청을 하는지 부품 같은 것이 잔뜩 담긴 상자들이 곳곳에 쌓인 집안 풍경으로 미루어, 할머니 딸이 자기 어머니에게 소홀한 것은 먹고살기가 너무 바빠서이지 비정한 탓은 아닌 성싶었다.
아무튼 나는 빨리 도서관으로 가야 했다.
빨리 도서관에서 봐야 할 일을 모두 보고, 집으로 돌아가 씻고 먹고 그리고 잠을 자 두어야 했다.
게다가 치매기가 좀 있어 보이는 할머니를 빈 집에 혼자 남겨 두는 것도 아닌게아니라 조금 신경이 쓰이는 일인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본인 부탁대로 이웃에다 할머니를 맡기는 일을 알아 보기 위해 개중에 좀 만만해 보이는 대문을 하나 골라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대문을 열고 나온 이웃집 사내는 내 얘기를 듣자마자 손을 홰홰 내두르며 거절을 하였다.
"그만 두이소. 그 할매가 정신이 좀 이상해서 저라는 거라예. 나 두이소."
"그래도 지금 그 집에 사람이 아무도 없고 할무이 한 분밖에 없던데.... "
"그냥 나 두이소. 데꼬(데리고) 오모(오면) 나중에 그 집 딸한테 안 좋은 소리 듣습니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어머니를 두고도 먹고살려니 외출을 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하루 이틀도 아닌데 허구한 날 어머니를 이웃에다 맡길 염치도 없고.... 그래서 처음부터 이웃에 의지하는 길을 싹둑 잘라 버리고자 그렇게 하였을 딸의 사정이 뻔히 들여다보였지만 아무튼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할머니에게 돌아간 나는 그냥 혼자 계셔야겠다고 조금 민망해 하며 말했다.
"그라모 우리 아들 좀 불러 주이소. 우리 아(아이)한테 옴마 좀 데꼬 가라 하이소."
할머니는 그렇게 말해 놓고는 자기 생각에도 그것이 가당치 않은 요구임을 알겠는지 그 소리를 다시 되풀이하지는 않고 절규하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도야아아! 내 좀 데꼬 가라아, 으이?"
나는 가슴이 아려 왔다.
내가 원래 어머니와 자식 간의 애틋한 감정과 관련된 일에는 대책 없이 약해지고 마는 사람이다.
아까 이 할머니는 자기 아들이 서울에 살고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얘기하면서도 아들이 '공부를 잘하여 법원에 들어갔다'는 표현을 굳이 덧붙였었다.
모르긴 해도 고작 법원 소속의 하급 공무원에 불과한 듯한 아들이 그녀로서는 그렇게도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도서관에서 돌아올 때는 그 할머니와 다시 마주치지 않도록 다른 골목을 택했다.
그 할머니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앞에서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 할머니가 자신을 이웃집에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왜 했겠는가.
딸이 얼마나 오래 집을 비웠는지 몰라도 필경 사람이 그리워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잠깐 그 집 현관에 퍼져 앉아 말상대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그 할머니에게는 멋진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낮밤이 바뀌어 늘상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나로서는 30분 정도의 시간이라도 허투로 보냈다가는 그날 밤 근무하는 데 상당한 지장을 받을 터였다.
아니, 아니다. 그것도 내가 할머니 말상대를 회피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오랜 병환을 앓는 사람 특유의 거무스름한 안색, 몸 내부에서부터 무언가가 허물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 그 할머니에게서 짙게 풍겨 오는 병의 냄새가 나는 두려웠던 것이다.
군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를 맞은 것은 중병에 시달리는 어머니였다.
그로부터 20년간 어머니의 병시중을 드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나는 질병과 관련된 일은 그저 끔찍하기만 한 것이다.
그 비통함, 그 암담함, 그 애달픔....
언짢은 기분으로 걸어가는 내 저만치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또다른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라....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쪽을 진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지만 않았다면 그냥 여인으로 보았을 것이다.
검붉은 맨드라미 색 털 가디건, 풍성한 주름을 잡으며 부풀어올라 종아리까지 오는 초콜릿 색 한복 치마, 그리고 폭 넓은 흰색 머플러....
노인네답지 않은 세련되고 과감한 색상 매치였다.
신발은 어떤 것을 신고 가방은 어떤 것을 들었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는 곧 그것들 역시 눈에 거슬리는 선택은 아니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어지간한 젊은 여자보다 더 키가 컸고, 지팡이도 없이 걸어가는 자세는 꼿꼿하였다.
젊었을 때 틀림없이 발레리나였을 것이다.
슬쩍 훔쳐본 주름진 얼굴은 강가의 조약돌처럼 희고 말끔하였다.
매일 욕조에 더운 물을 채우고 목욕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까 그 추레한 할머니를 보고 난 뒤라서 더욱 정결하게 여겨지는 그 할머니를 보고 있자니 내 기분은 좀더 언짢아졌다.
치사하게도 나는 그 유복한 늙은 여인을 향해 질투를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여 돈도 건강도 놓치지 않고 평탄한 노년을 맞는 데 성공한 영리한 인간들에 대한 적대감이었다.
마치 그 노파를 끌어내림으로써 내 어머니의 힘들었던 노년을 보상받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고를 상대가 없어서 하필이면 힘없는 늙은 여인을 향해 거치른 감정을 품는 자신이 혐오스러워져 나는 얼른 그녀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그러고 나서 한 달쯤 뒤, 그날과 비슷한 시간대에 비슷한 지역에서 나는 그 할머니와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한 달 사이에 그녀는 몹시 변해 있었다.
옷차림은 여전히 화사하였으나 걸음걸이가 완연히 노인네의 그것으로 바뀌어 있었고, 잠깐은 멈춰 서서 허리를 손으로 받치기까지 하였다.
이제는 지팡이가 꼭 필요해 보였다.
멀쩡해 보이다가도 어느 한 순간에 자칫 삐끗하여 무너져 버리는 것이 노인네의 건강인 모양이었다.
나는 공연히 죄책감을 느끼며 그녀와 스쳐 갔다.
그리고 다시 두어 달이 지난 바로 어제, 역시 도서관으로 가던 길에 이번에는 첫번째 할머니와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이 할머니는 그 동안 되려 건강이 조금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저번에는 가만 있어도 몸을 부들부들 떨며 엉덩이를 영 마룻바닥에서 떼지를 못하더니 이 날은 누가 옮겨다 주었는지 어쨌는지 집 바깥에까지 나와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
활짝 열린 문짝 사이로 싱크대 앞에서 도마질을 하는 중년 여자의 펑퍼짐한 뒷모습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할머니는 어째서인지 단 한 번 보았을 뿐인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뭔가 얘기를 걸어 보고 싶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벙긋거리더니 불쑥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어머이 못 봤습니꺼?"
나는 혹시 '딸'의 주의를 끌까봐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가벼운 목례를 하고 그곳을 지나쳤다.
그러면서 저 늙은 여인이 내게 말을 걸기 위해 얼핏 떠올린 구실이 자기 어머니 얘기라는 점에 야릇한 감동을 느꼈다.
그렇구나. 우리는 누구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사는구나....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