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신선은 잘된 글이다.
읽으면서 가슴이 따듯해지는 글.
그에게는 전작이 있다.
그 글은 망가지기 좋은, 난감한 부분이 많았는데 결국 망가지지 않고 마무리가 된 걸로 들었다. 망가지기 쉬운 흐름과 말도 안되는 억지가 전편에 흐르는데, 그걸 망가지지 않게 끌고 감은 작가의 능력이긴 하다.
하지만 그걸로 그 글을 쓴 사람이 계속 제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가? 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섯부른 일이다.
그 전작인 천봉무후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논단이 아니라 작가들만 보는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 무당신선은 과연 같은 사람이 쓴 것이 맞는가?
라는 생각이 들만큼 전혀 다르다.
연재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무당신선이 골든베스트1위를 하는 걸 보면서.. 신선류의 글은 늘 온라인에서 인기가 많지. 라고 간단히 치부했었다.
그러나 이 글을 3권까지 읽으면서 그 생각이 아주 잘못되었음을 아는 데는 별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안정되고 따듯하고 편한 글...
근래에 보기드문 조횟수가 나온 이유가 충분히 보였다.
무한.
그가 가는 곳, 그가 머무는 곳은 그의 향기로 가득찬다.
그가 풍기는 향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따듯함이다.
사람다운, 사람과 사람이 지켜야할, 서로를 위하는 그런 따듯함.
그 훈훈함이 무당을 감싸고, 우리를 감싼다.
일개 학도인에게서 스스로를 넘치게 하여 무당의 신선이 되기까지(3권에서 신선이라는 경지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마음가짐은 이미 신선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사부와 제자의 서로를 위하는 마음.
촌지를 받아야만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는 이야기가 정말 제자를 사랑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보다 너무 자주 들려 곤혹스러운 지금의 세상에서 우리는 무당신선에서 더욱 그러한, 우리가 바라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보고자 함이 아닐까.
무당신선은 그 자체로 이미 완성도를 자랑한다.
요즘 글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연성의 부족이다.
필력이 부족한 것보다 더 문제가 바로 그 개연성의 부족이다.
왜 중이 중답지 않고, 도사가 도사답지 않으며, 협객이 도둑놈이고 협잡군이어야 하고, 마두가 협사노릇을 해야 하는가?
복수를 해야 할 사람이 나와서 여자와 노닥거림을 보고 과연 독자는 무엇을 생각할까?
무협을, 판타지를 장르를 보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그 글을 보는 것일까?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고 싶어서?
억눌리고 치받치는 그 답답함을 무협을 읽으면서도, 그러면서도 보고 싶어할거라고 착각하는 건가?
독자는 일탈을 꿈꾼다.
현실에서의 탈출...
오늘 나는 어렵지만 글을 읽을 때만은 나도 로또를 맞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건 바로 꿈을 의미한다.
내가 그리는 이상향. 내가 바라는 세상....
무당신선은 바로 그러한 세상을 그리고자한다.
잔인한 마두도 감화시켜 따듯함이 흐르는 세상.
그런 면에서 이 글은 마음놓고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추운 겨울에, 정말 편하게 옆에다 간식을 가져다 놓고 배깔고 누워서 편히 보면서 푸근한 미소지을 수 있는 그런 책.
그 미소는 책을 보면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라 더욱 편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무당신선이 단순히 선도소설류라고 생각함은 또한 오산이다.
무당신선은 무(武). 와 협(俠)이 어울어진 무협소설이다.
그의 전도를 기대하고자 한다.
삭풍이 불기시작하는 계절, 연화정사에서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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