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한광수
작품명 : 마법공학자
출판사 : 루트미디어
1. 플롯 & 스토리
재미있는 소설의 필수요소는 바로 흥미로운 스토리이다. 이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라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스토리야 말로 좋은 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다.
흔한 플롯에 흔한 스토리 전개 방식, 흔한 발상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욕하는 거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선택을 하고도 출판을 한 사람들을 칭찬하고 싶다.
왜냐하면, 흔한 것 - 즉 클리셰라는 걸 선택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에서 콕 집혀 출판에 성공했다면 그만큼 특정한 면 - 예를 들자면 캐릭터가 생동감이 있거나 또는 인기있을 법한 캐릭터성을 지니고 있다거나 또는 스토리가 톡톡 튀거나 깨알 같은 재미가 있거나 등 - 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그런 걸 발견했다면 이 글을 아예 작성하지도 않았겠지.
글의 시작부터 줄거리는 꽤나 흔하다. 흔한 반도의 공돌이가 다른 나라 실험에 자원했다가 사고 나서 환생한다. 좋다. 굳이 공돌이여야 할 까닭도 쉽게 알 수 있다. 이 주인공은 새로운 세계에서 힘을 기르고 산업 혁명까지 주도할 심산이다.
많은 글을 읽어보거나 쓴 사람은 알겠지만, 과학이 비교적 덜 발달했거나 아니면 발달은 했지만 기형적인 곳(스팀펑크나 디젤펑크스러운) 아무튼, 대부분 [다른 세상]이란 곳에 사람을 보낼 때는 공돌이를 보내는 게 가장 좋다. 이론도 어느 정도 알고 손으로 뚝딱뚝딱 뭘 만들기도 좋고 애초에 현대 과학을 이끌어온 건 이론 물리학자 + 공학자란 걸 생각하면 다른 세계 가서도 잘 먹고 잘 살려면 역시 공돌이가 좋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놈이 가서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이런 건 판타지 소설이랑 다르네."
"이건 무협지에서 말하던 뭐 같네."
"이런 점은 또 판타지 소설이랑 다르네."
한 챕터에 한 번씩 꼬박꼬박 말해준다. 이거 무슨 산소 호흡기인가? 이 말을 안 하면 폐로 가야 할 산소가 혈관에 틀어박혀서 전색증이라도 일으키나? 그렇다고 그런 장면이 진짜 다른 소설과 차별화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인 것도 아니다. 그냥 상황과 묘사 배경, 대사로 지면을 [잡아 먹고]있는 거다.
나는 소설이 꼭 사건 전개에만 주력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웃음이 있어야 한다. 위트가 있어야 한다. 클라이맥스가 있어야 하고 스포트라이트도 필요하다. 복선 중요하다. 그에 관한 모든 장치가 중요하다. 작가의 철학, 자가가 전하고자 하는 말, 사상 전부 중요하다. 그게 꼭 스토리의 전개와는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난 그것도 존중한다. 사건 전개에만 쭉 일변도로 집중할 거면 그냥 룰북이나 플롯만 읽으면 되지 뭐하러 소설을 읽겠는가?
그렇다고 한들 아무런 의미없는 단어와 단어의 나열을 소설이라고 불러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작가는 무엇을 소설에 담고 싶었던 건가? 꼭 철학이나 사상도 필요없다. 그냥 재미만 담고 싶었다면 재미있게 쓰면 된다. 재미에도 종류는 많으니까 풍자일 수도 있고 해학일 수도 있고 아니면 스탠딩 코메디, 언어유희 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마저도 없다.
난 도대체 이 글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그래서 주인공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뭔지! 하다 못해 주인공에게 날 투영해야 할 필요성조차도 못 느낀다.
거기다가 글의 흐름도 중구난방이다.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걸 원하지 허허벌판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빙글빙글 도는 건 싫어한다. 주인공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생존인가? 세계 정복? 진리를 좇아서? 연구를 더 하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은가? 명확한 의지가 동반되지 않은 주인공의 행동은 스토리마저 엉클어지게 만들고 있다.
2. 캐릭터
캐릭터는 스토리에 버금갈 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정말로 매력적인 캐릭터라면 - 흡사 반지의 군주에서 나오는 샘 와이즈, 스파이더만의 피터 파커 같은 - 스토리가 조금 떨어지거나 전형적이어도 굉장히 인기있다. 물론 예시로 든 곳에선 캐릭터 뿐만 아니라 스토리도 신급에 다달았으니 그런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된 것이다. 아무튼, 캐릭터 하나만 가지고 성공한 예시를 들자면 [토라도라] 정도가 있겠다. 그런데 이 글은 캐릭터도 문제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이다. 이 인간은 도대체 캐릭터 설정이 어떻게 잡혀 있는지가 가장 궁금한 인간이다. 원래 나이 + 현재 나이를 하면 마흔이란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도 가끔 마흔이고 행동거지도 마흔으로 보여서 주위의 의심을 산다. 아주 자연스럽다. 이런 전개가 좋다. 이런 전개만 있었다면 말이다.
그런데 가끔 하는 짓이 나이 40으로도 열다섯으로도 안 보인다. 지멋대로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정신질환자에 가까운 행태를 보인다. 행패라고 해도 좋고. 도대체 이 주인공이란 사람이 뭘 원하고 뭘 행하는지 알 바가 없다. 독자한테도 좀 알려주길 바란다.
주위 인물들은 더 심각한 문제다. 주인공은 거의 반미치광이 수준인 대신 전형성에선 벗어났는데 주위 인물들은 전형성을 전혀 벗어나질 못햇다. 꼭 다른 소설에서 또 본 녀석 같다.
혹시 그런 건가? 조역 전문 소설 배우들이 있어서 매 소설마다 이름만 바꾸고 다시 출현하는거? 가끔 세 탕, 네 탕 뛰는 캐릭터들은 여러 소설에서 본 것 같고 그런 건가?
매력적인 조연은 주연을 북돋아준다. 매력적인 악역은 주인공과 양립하며 소설 그 자체를 북돋아준다.
찌질거리는 캐릭터들은 소설을 콱 붙잡고 같이 나락으로 떨어지려고 발버둥을 친다. 이 소설은 후자다.
3. 문체
나 좀 살려달라. 중간 중간 하이픈(-)은 왜 넣는 건가? 대사 시작을 하이픈(-)으로 할 때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대사 끝날 때 느낌표는 왜 꼭 너댓개 씩 박아 넣는 건가?
"너!!!!!"
이러면 강조하는 걸로 보이나? 바보같아 보인다. 느낌표, 물음표는 마침표와 같은 종류이다. 즉 글은 "너!"에서 마쳤는데 마침표가 네 개나 더 박혀 있다. 이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문장과 문단이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예시)
사실 이천 골드의 가치는 레너드의 생각이 정확하다고 봐야 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비누가 제대로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초도 물량 주문이 저 정도 되었다는 이야기는 향후 시간이 지나면 물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거란 뜻이기 때문이다.
-마법공학자 4권 127페이지에서 발췌
위 문장이랑 아랫 문장은 왜 띄어 놓은 건가? 이거 하나만이 아니라 한 권 매 페이지마다 하나 이상씩 발견했다. 이거 내가 이상한 건가?
위에 소개한 세 가지 요소, 스토리/캐릭터/필력은 셋 중 하나만 잡아도 베스트 셀러는 될 수 있다. 아무리 글이 단단하고 캐릭터는 전형적이어도 스토리가 굉장하다면 잘 팔린다. 스토리는 막장 전개에 필력도 고만고만하지만 캐릭터가 엄청나게 매력적이면 또한 잘 팔린다. 스토리도 캐릭터도 전형적인데 필체가 아름다우면, 그건 엄청나게 잘 팔린다.
그럼 셋 중 하나라도 잡을 생각을 하거나 최소한 셋 다 기본 이상은 할 생각을 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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