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여러 숫자+이름의 아이디들.
작품명 : 여러 감상문
출판사 : 문피아 감상란.
평소에 문피아 감상란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나 또한 책을 읽는 사람인지라 내가 깊게 감명 받은 책을 읽으면 감상문을 쓰기도 하고, 또 그것을 감상란에 올리기도 한다. 본인의 글도 이 감상란에 몇 편 정도 있다. 내가 문피아 감상란을 싫어하면서도 감상문을 그곳에 올리는 것은 내가 그 책에 느낀 ‘무언가’ 를 글자로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읽은 글에 대하여 일말의 책임의식을 갖고 있고, 그 의무를 표현하는 것이 감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감상이다.
아래는 내가 문피아 감상란에 올라온 수많은 학생들의 ‘감상문’ 을 읽고 쓴 내 감상이다.
갑자기 감상란 게시판을 점령한 수많은 학생들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그 내용의 구성이나 전개가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학생들이 스스로 원해서 쓴 것이 아니고, 그들을 뒤에서 조종한 어떤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나는 곧 그 구성이 아마 그 한 사람에 의해서 탄생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뭐, 이렇게라도 했을 지 모른다. 감상란은 줄거리와 자신의 느낌을 반드시 써야 한다. 운운.
물론 글의 구성이 글의 가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의 글이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어서 글을 보는 데 상당히 지루함을 주었음을 말하고 싶다. 물론 그들이 자신들의 감상문을 모아서 감상집을 내는 것도 아니거니와 나보고 읽어 달라고 한 적도 없으니 뭐라 할 자격은 없지만 그들의 구성 속에는 무언가 문제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감상이 단지 일회적이고, 일차적이라는 것이다. 재미있었다. 흥미로웠다. 멋있었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등등.
감상문은 그 책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가,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이해하고 어떻게 변화했는가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때문에 감상문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때문에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말한 바가 있다.
“해마다 그것을 읽으면서 햄릿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적어 놓는 것은 사실상 우리의 자서전을 기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생에 대해서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코멘트도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감상문을 본다면, 그것들에는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글에 대한 ‘이해’ 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읽은 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이 이 책으로 감상문을 어떻게 뽑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만이 가득하다. 이들에게 서사는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단지 줄거리의 서술에 불과하다. 때문에 감상문의 내용은 일회적이며, 글에 대한 이해는 찾아볼 수 없다.
사르트르는 이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헤겔 철학의 전통도 없고 마르크시즘을 가르칠 대가들이나 교과과정 그리고 사상을 설명할 도구들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세대는 우리의 전 세대나 이후의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사적 유물론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했다. 그 대신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기호논리학은 아주 자세히 배웠다. 바로 그 즈음에 나는 <<자본론>>과 <<독일 이데올로기>>를 읽었는데, 책의 내용 자체는 아주 분명하게 이해했으나 아무것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스스로를 넘어서는 일이다.마르크스의 책을 읽는 일이 나를 변화시키지는 않았다. 나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던 것은 마르크시즘의 현실, 즉 마르크시즘을 겪고, 실제로 체험하면서 멀리서나마 쁘띠 부르주아 지식인들을 저항할 수 없는 마력으로 이끌던, 나의 지평으로 다가온 어둡고 거대한 노동자 대중의 묵직한 현존이었다." (p26)
장-폴 사르트르, 1995, <방법의 탐구>, 현대미학사
때문에 나는 그들의 글이 감상란에 올라왔더라도, 감상문으로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들의 감상에는 글에 대한 이해보다는 한줄평이 있는 것 같다. 사실 한줄평이라도 그 말이 그 소설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면, 촌철살인의 평이 될 터인데, 그들의 한줄평은 핵심이라기보다는 글의 테두리를 둘러싼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단지 이들의 글에는, 검사만 맡고 빨리 끝내겠다라는 조급함이 엿보인다. 그 글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이 글이 갖는 외적인 의미에 더 주목한다는 느낌이다. 감상문을 쓰려는 것인지, 혹은 검사를 맡겠다는 것인지, 그것을 알 수가 없다. 감상을 책에 대해서 하는지, 선생에 대해서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말이다. 진정으로 책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조건에 대한 이야기만 가득하다.
내 개인적인 사견에는, 이런 식으로 할 것이라면 도대체 이곳에다 올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런 식으로라도 감상을 연습시킬 것이라면 개인적으로 종이에 제출해서 하면 충분하다. 그도 아니라, 아이들이 진정으로 감상문을 쓰고 그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맘이라면 이런 글로는 누구의 진정어린 충고도 들을 수 없으리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단지 데이터베이스의 편리 때문인가? 이곳은 이런 곳으로 쓰라고 만들어놓은 곳이 아니다.
덧. 이러한 인플레 때문에, 간간히 보이는 학생들의 글이 엄청나게 좋은 평을 받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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