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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44 역설逆說
작성
11.04.03 00:22
조회
2,240

작가명 : 백린

작품명 : 강소일문

출판사 : 파피루스

강소일문(江蘇一門). 1, 2권.

강소일문. 강소성의 문파 하나?

 꽤 많이 원숙한 작가라고 불러도 될 듯 하지만, 정작 지금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완결작품 한 질 포함해서 두 작품만을 찾을 수 있는(으윽) 백린 작가의 현재 집필작입니다.

  “십 년 만에 돌아온 고향이건만

       아무도,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무협은 어울리지 않은 두 문자(武, 俠)의 만남입니다. 의협심은 핍박받는 약자를 돕지만, 그 협의가 하필 칼을 들었으니 이를 어쩌겠습니까. 칼을 든 악당을 칼을 들어서 막았으니 마지막에는 칼을 내려놓고 쉬러가든지 또 다른 칼 들고 올 사람을 기다리든지 해야할 수밖에요.

 칼로 흥하면 칼로 망한다는 옛말처럼. 영호충은 독고구검을 익혀서 강한 게 아니라 술을 잘 마셔서 강한 것처럼. 그러지 못하니 무협, 그들은 도산검림을 걷는 숙명을 안고 있습니다.

  “우리, 거래할래요?”

 누가봐도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느긋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자왕…이 아니라 사자안(獅子眼) 이현입니다만, 징글징글하게 마주칠 ‘거래’라는 단어처럼, 강소일문인지 강소파티(江蘇party?)인지 제목을 헷갈리게 만드는 인물들의 행보 때문에 중심축은 이현에게만 집중되지 않습니다. 하군영은 누군가를 고용해야할 필요성이 잔뜩 있고, 잔뜩 꼬인 일들도 그걸 풀어헤칠 이유도 모두 군영에게 있죠. 이는 모든 인물과 개연성을 한 곳에 묶는 편리한 분산입니다.

 이런 분산은 편리한 도구인만큼 작가에게 독이 되기 쉬운데, 특히나 그게 건방진 캐릭터라면 더욱 위험합니다. 잘 쓰면 어디까지 잘 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대로 못 쓸 경우 부작용은 굉장히 크죠.

  “나 같아도 저러고 있겠네.”

  고뇌에 가득 찬 도원현의 모습을 간단히 평한 군영은 다시 귤이 든 광주리에 손을 뻗었다.

 백린 작가의 건방진 꼬마 활용은 꽤 준수합니다. 작가부터가 조용한 성격이라 그런지 싶은데, 모든 깐죽거림에는 작가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작중에서 펼쳐지는 말장난이나 투닥거림 등은 모두 온전히 캐릭터의 것일 뿐, 글 뒤편에서 작가가 “내 깐죽거림을 들어봐라, 괜찮지 않냐” 라는 식의 거슬리는 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네요. 아예 없다고 하긴 그렇지만.

  “내가 이놈을 닮아 같다고?”

  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장령은 이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현도 고개를 끄덕이자 이를 간 장령은 이번엔 이서은을 보았다.

 앞에서 진심으로 까부는 게 아니라고 했죠? 이것은 캐릭터들이 얼마나 경망스럽게 굴든지 상관없이 냉철한 작가가 존재한다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약간만 조절을 잘못하더라도 독자들과의 간극을 조절하지 못해서, 캐릭터들이 무슨 만담을 하고 떠들든 어색함만 낳을 위험이 있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다행히도 주인공-능글맞은 영재-만담의 희생양 등의 전형적인 구도에서도, 마냥 인물들의 배치에만 매몰되지 않는 개성을 캐릭터들이 갖추고 있습니다만…….

  눈에 뭐가 쓰인 막진충은 그 모습마저 군자의 겸양으로 보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부님, 제가 드디어 옥현진결의 진정한 주인을 찾았습니다.'

 구도 자체에서 타성적인 기분이 드는 문제와, 캐릭터를 서술함에 있어서 유일하다시피한 약점이 드러나는 문제, 둘 중에서도 특히 후자가 문제입니다.

 하군영과 도원현이라는 양립구조는 전형적이지만 그다지 위태로운 줄타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고, 이현의 여유로움은 억지 주인공 띄우기와는 거리가 멀고, 새로운 인물들이 끼어드는 과정도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기가 막히게도 이 글에서 두드러지게 느낀 약점 단 하나는…….

  “……폭군(暴)이라 해야 할 거요.”

  자신이 고른 표현에 만족하던 막진충은 갑자기 다가오는 싸늘한 기운에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소, 소저, 왜 그러시오?”

 여성 공포증입니다.

 진심입니다.

 정말로. -_-;;

 안 그런 경우가 어찌 흔하겠습니까만, 인물의 특성에 있어서 성별이 끼치는 영향은 알게 모르게 매우 강력합니다. 심지어 인물의 진짜 특성과는 관계없이, 독자가 받아들이는 인물상에까지도 그 영향력은 대단하죠.

 성별역할을 극단적으로 나눈 나머지 여성을 과연 인격체로 보는 건지 의심이 가는 소설도 많은 반면, 작중 세계관에 성별개념이 전혀 없는 건지 독자가 아무리 생각해도 근친 동성애 소설인 듯한 소설도 있는데, 백린 작가의 소설은 그 어느 것과도 다릅니다. 여성성에 대한 공포라고 표현해보겠습니다.

 언어가 자극적인 면이 있습니다만, 작중의 장면을 하나 빌리자면 이서은이 최초로 등장할 때 그녀가 남중재인을 쫓아다니고 있다는 건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추측(이라기보다 시작부터 확신에 가깝지만)은 몇 번의 장면을 거듭하며 확실해지죠. 그리고 괜히 이현을 귀찮게 한 행동 하나 외에는 별 다른 일 없이 끝입니다.

 그녀의 비중이 높은지 낮은지, 그녀의 행동이 마음에 드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다만 그녀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언가가 공포에 질려서 빠진 기분입니다. 그 무언가를 개연성이라고 말하자니 너무 범위가 넓고 분위기라고 말하자니 좁은 기분이군요.

  손톱에 낀 때를 ‘후’하고 분 장령은 손을 털며 이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장강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어서 말이네.”

 새로운 인물을 넣는 과정은 꽤 세련된 방식입니다. 오해가 생기는 방식도 적절하고 오해가 퍼지는 과정 및 그로 인한 시비와 뒤에 따라붙는 전개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시발점인 이서은에 대한 후속대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했으니 저 캐릭터를 처벌하라 이런 수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처벌이든 용서든 무언가 소통이 있어야할 것이 텅 비었습니다. 오해를 풀 생각이 없고 무시하기만 한다고 해도 그 과정 자체는 독자에게 전해져야하는데, 이현이 검귀라는 오해는 “네놈이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와서 이런 추태를!” 이라는 대사에서부터는 그저 이현과 개방 장로의 투닥거림이 되고 맙니다. 정작 그 둘을 싸움 붙였다 할 수 있는 이서은은 기절한 개방 장로를 보고는 “오라버니랑 싸울 건 아니죠?” 라고 할 뿐이죠. 남궁재인을 추적하는 이외의 행동은 마치 타인이 행했다는 듯이 되어버리니, 연정의 표출 외에는 삭제된 캐릭터같습니다.

 그 이후에 막진충이라는 고수를 살기에 떨게 만든 일 이외에 한동안 삭제 상태가 이어집니다. 이 장면이 딱히 무리한 대목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이로 인해 이서은의 캐릭터는 남궁재인에 대한 광기만 남은 듯한 모습이 됩니다. 게다가 막진충은 그 열 페이지 직전에 귀감으로 삼을 만한 고수라는 평을 듣고 있었지요.

 또 다른 여캐(그래도 여캐가 마르진 않았다!)는 어찌 될지 모르겠군요. 극초반부에 등장해서 이현을 구박하는 사매 소혜는, 첫 등장 장면에서 투닥거림을 부부싸움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중반부에 잠시 등장했을 때에는 아예 어미 오리를 그리는 새끼 오리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강민이 좋아하는 카리스마 대빵 큰 오리는 바로 이현…… 아니 이게 아니고.

 이 장면은 사실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이서은의 경우에 비춰서 읽다보니 어째 이 장면도 주인공이라 누리는 비자연적 매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건 좀 어거지니까 무시.

  “그보다 강소신창 맞소?”

  “왜, 신창이라는 이름을 얻기엔 가벼워 보이나?”

  “그게 아니라…….”

 이현은 가볍습니다. 그에게 가장 큰 위기는 아마도 잔소리하는 사매에게 들키는 일이라 해도 되겠지요. 그러나 술이 많다고 영호충이 마냥 행복할 수 없듯, 이현 또한 스스로 가진 바 여유로움만으로 살기엔 그가 몸 담은 곳이 도산검림이군요. 그래도 이현은 쇳덩이 같은 세상에 깃털처럼 살고자 합니다. 쇠뭉치가 묶여있는 깃털이지만, 그의 앞날에 유유자적한 여유가 많이 있기를.

주인공의 여유로움에 대해 적어보니 문득 떠오르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백린 작가 고유의 특색 하나. 알게 모르게 글 부분부분에서 뿜어져나오는 여유로움은 좋게 말해 초탈, 나쁘게 말하면 인스턴트 채팅의 감성입니다. (이것도 딱히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만)

인물들의 대화를 읽다보면 이러고 놀고 싶어집니다.

역설 : 마감 얼른 하세요. 글은 쓰고 노시나요.

백린 : 어휴

역설 : 다 쓰시고 회사요

백린 : 잉여같으니. 학점 3을 넘기고 오시죠.

역설 : 아악

 뭐 대충 이런 기분으로……. 제 학점을 위해 잠시 묵념.

덧.

작가가 책을 줘서 밥을 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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