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히라사카 요미
작품명 : 헌티드! 1권
출판사 : 서울문화사 J노벨
“좋아해! 나랑 사귀어줘!” 어느 날, 고등학생인 쿠도 유우키는 엄청나게 무서운 표정을 한 소꿉친구 시라사키 미하루에게 고백을 받았다. 왠지 모르게 날 좋아하는 느낌은 있었고, 미하루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유우키는 대답을 보류했다. “기다릴게.” 하고 쾌활하게 대답한 미하루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듯이 달려가다――사고를 당했다. 놀라움과 슬픔으로 미하루의 사체에 매달려 울부짖는 유우키. “미하루, 좋아해!” 그렇게 외쳤을 때 들려온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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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의 나친적 1권과 라노벨부 1권 발매 지연으로 인해, 나친적 1,2권, 라노벨부 1,2권, 헌티드 1권이 같은 달에 발매되어 '한 작가 작품 5권 동시 발매'라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던 그 히라사카 요미의 데뷔작입니다.
모 처에서 소개겸인 프롤로그를 읽고 상당히 흥미를 가졌던 터라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소꿉친구 여자아이가 있습니다. 전형적인 운동계로, 폭력적이고 괄괄하고 약간 어린애같은... 그런 애가 옥상으로 자신을 불러(주인공은 '옥상으로 불러내서 린치인가!'라고 덜덜 떱니다만) 다짜고짜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생각할 시간을 줘."라고 하고, 고백의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다짜고짜 달려서 학교 밖으로 뛰어나간 그 소꿉친구는,
신호위반한 트럭에 치여 날라갑니다.
머리에서는 뇌가 흘러나오고, 옆구리는 터져서 내장을 쏟아내며, 겨우 원형만 유지한 체 도로 한가운데를 피바다로 만들어버린 소꿉친구.
주인공은 울부짖으며 사고 사진을 찍는 구경꾼에게 달려들어 패버리고, 넋이 나간 체 다가가 소꿉친구의 시체를 안고, "좋아해!"라고 절규합니다만...
"정말로? 야호!"라고 주인공의 뒤에서 소꿉친구의 유령이 만세를 부릅니다. 야호, 도입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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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부터 상당히 정신나간 작품.
이 세계에는 어느순간부터 '고스트'라는 유령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주로 사고나 살인사건 등 억울하거나 비참하게 죽은 사람들일 수록 고스트가 되기 쉽다고 합니다. 고스트가 되는 것은 대강 사망자의 1/10 정도. '인류의 진화다!'라는 사람도 있고, '인류의 적이다!'라는 사람도 있고, 고스트 보호법이니, 자살교단이니 이리저리 사회는 시끄러운 중.
하여간 충격으로 넋이 나간 상태에서 수락해버린 '고백'으로 인해(그것도 학교 앞이라 대다수가 목격) 육체도 없는 '유령'이랑 공인 커플이 되어버린 주인공.
보통은 유령 연인과의 순애보가 펼쳐지겠지만, 그런거 없어! 주인공이 상당히 비틀려 있거든요.
"너는 육체가 없어! 그러니까 난 성욕을 해소할수가 없다! 여자따위 성욕을 처리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야!"라고 소꿉친구 면전에 소리치는 녀석인데 뭐. 아니 뭐, 일부러 미움받으려고 한 소리이긴 하지만.
하여간에 주인공 성격이 상당히 특이합니다. 러브코미디면서 상대방에게 일부러 미움받으려고 온갖 짓을 다 하고, 주저 없이 계략을 파고, 독백으로는 쉴세없이 허세 헛소리를 늘어놓고.
거기에 자살지원인 한 여자아이가("저같은 쓰래기만도 못한 존재가 인간님의 언어로 말하다니 말도 안되요! 죄송해요! 구더기는 구더기닾게 구더기 언어로 말할게요! 구더구더구더기!"... 이 아이도 첫등장부터 임팩트 넘치는 아이) 얽혀들고, 주인공과 미하루의 무술 스승인 '부메랑 할매'라던가, 자살교의 테러라던가 상당히 막나가는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데뷔작인 만큼, 뭔가 미숙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특히 주인공의 감정묘사가 강해지는 부분에서는 나스체풍의 과다묘사가 눈에 띄는데, 사용 자체는 문제 없지만 그 강약을 조절하지 못했다는 느낌.
그래도 막나가는 이야기와 막나가는 캐릭터성이 섞이다 보니 상당히 재밌는 괴작입니다. 특히 서브히로인인 자살지원녀와 주인공의 대화는 절로 폭소가 나오는 유쾌한 물건. 데우스엑스마키나 격인 '최강자'가 '할머니'란 점도 뭔가 유쾌한 비꼬임이 보입니다.
'안티 러브코미디'란 장르를 대놓고 표방하고 있는 만큼, 러브코미디이긴 러브코미디인데, 전개고 캐릭터고 애들 사이의 관계고 여러모로 비틀려 있습니다. 미군마짱 같은 진짜로 '비틀린 정신세계'라기 보다는 그저 '개그 요소'로서의 비틀림입니다만. 고스트와 죽음에 얽힌 무거운 이야기도 나오는 듯 합니다만,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네요.
일러스트가 좀 옛날 냄세가 나는게 좀 마음에 걸립니다만, 내용 자체로는 평균적으로 재밌습니다. 이 사람이 '라노벨부'를 내고, '나는 친구가 적다'로 넘어간다고 생각해보면 상당히 특이하기도 하고요.
뒤의 작품들은 이 '헌티드'에 비하면 문장이나 묘사 면에서는 확실히 '절제하는 감각'이 늘어났고, 캐릭터 구성력은 그 '괴상함'의 방향을 좋은 의미로 발휘할 수 있게 성장한 느낌입니다. 물론 이 '헌티드'부터 상당히 재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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