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SHEoLn_9I9M
연암 박지원이 사신단을 따라 건륭제가 머물던 열하에 다녀온 이야기를 적은 책입니다.
왕조는 대개 어쩌다 우연히 세력을 잡은 것이 아니라 시대적 소명을 쟁취한 자가 권력을 잡게 되는 경우 이후 약 100년 전후로 점차 강한 성세를 가지게 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청나라는 강희제 옹정제에 이어 건륭제가 청나라의 전성기를 이끌게 되는데...대단한 성세를 구가하게 됩니다. 그런데 국력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부패하지 않고 이어가는 나라가 극복하는 나라보다 훨씬 더 드물며 청나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후 여러가지 이유로 급격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연암 박지원은 중국이 영토를 넓힌 이후로는 역대 최고의 힘을 구가하던 시기를 지나갈 때 청나라를 방문하였기에 그곳에서 본 문물은 정말 대단했을 것이 자명합니다.
열하일기 영상을 보면서 느낀 점은,
무려 6번째 황제가 제위를 잇는 동안 조선의 사대부들은 달라진 시대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조선과 비슷한 시기에 건국된 명나라를 상국으로 받들던 마인드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던 것입니다. 이후 청국 역시 급격히 무너져 내리며 융성했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하고 차후 유럽 열강에 수 차례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명에 이어 영토는 넓어지고 성세를 구가했지만 화기연구제조가 금지 되는 등 군사력을 이루는 여러 요건들이 부족함을 넘어 퇴보하는 수준까지 이르러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열하일기 이후 수십년이 지난 시점에 벌어진 아편전쟁의 결과는 비록 국력이 정점을 지나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고는 해도 중국인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영상의 말미에 건륭제가 하사품을 내리지 않았다는 부분은 실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갖습니다. 중국은 드문 경우에 공물을 쥐어짜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하사품이 더 규모가 커서 국가 재정에 영향이 있을 정도인데, 하사하지 않았다는 건 대단히 화가 났다는 의미가 되겠죠. 그럼에도 조선의 유학자들은 수백년전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생각 그대로 행하며 온갖 답답한 행태를 보입니다. 이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열하일기가 금서가 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에서 본 것들만으로도 국내의 상황과 비교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였는데, 그가 당시 유럽의 문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접하게 되면 어떠했을까요. 그가 접한 서구의 문물에 대한 정보 대부분은 청나라를 통해서였을 터이니 제한적이고 정확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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