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돌린 계집애가 발을 쭉 뻗었다. 한 뼘이
약간 못 되는 작고 앙증맞은 발. 그러나 충격은 대략 사망치였다. 엄
청난 굉음이 칠구를 자빠뜨렸다.
팡-
"애 떨어질 뻔했잖아요, 짜샤!" -
결국, 어지간하면 모니터로는 읽지도 않는데다가, 그나마 읽어도
눈에 힘 팍 주고 '어디 잘 쓰셨나 볼까?' 라는 궁리나 하기 좋아하던
대머리(^^:)는, 대략 이 장면에 이르러 항복하고 말았다.
진지하기를 포기한 채 웃다가 뒤로 꼬꾸라질 뻔했다는 말씸. (말
씸? '청풍연사'를 읽었더니, 나도 모르게 따라하게 되어 버렸다는 말
씸^^;)
그리고, 또한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뒤집어질 준비를 하게 되었
다는 말씸. 바로 이런 의미의 항복.
오호라? 책으로 치면 겨우 백 쪽도 안 되는 분량만으로 나를 무장
해제 상태로 만들어 버리셨겠다?
반쯤의 오기와 반쯤의 기대를 더불어 안고 으라차차-다음 장을 클
릭!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별 괴상망측한 일들이 나를
찾아왔다.
담배 뻐끔대다가 사레 들러서 콜록콜록 눈물 찔끔,
갑자기 푸하-입 벌렸다가 모니터에 침 튀기기,
커피 홀짝이다가 목구멍으로 넘어간 거 콧구멍으로 뱉어내기,
이야-낭만적이다...해롱대다가 다짜고짜 후려치는 폭소덩어리에 넉
다운 돼서 미친X 처럼 키득거리기, (흠...이 부분은 정말 대략 난감하
다. 웃다가 울면, 혹은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뭐 난다던데...;;)
무엇보다 낯선 경험은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 어라? 더 없잖아!
입술 삐죽거리기.
고백하건데, 습작이랍시고 글을 올리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분들의 글은 잘 읽지 못한다. 우선은 모니터로 글읽기가 익숙치
않기 때문이고, 동시에 나 자신의 글에 몰입한 상태에서는 다른 분의
글이 재미나게 읽혀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 고백하건데, 나는 꽤나 독선적이며 고루한데다가 약간은
엄숙주의자이기도 하다.
'글이란 이래야 돼' 라는 나만의 가치관을 해골 속에 쾅 못박아 놓
고, 거기서 어긋나는 건 가차없이 난도질을 해버려야 직성이 풀린다.
게다가, (이건 자랑 같지만^^;) 머리도 꽤나 좋아서, 어지간한 유머로
는 콧방귀도 안 뀐다.
그런 내가 드디어 완죤히 쫀심 상해버렸으니, 무조건 항복! 청풍연
사! 다.
흠...배알도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쫀심 상해놓고도 오히려 헤헤거
리며 만세! 청풍연사나 외치고 있으니...라는 생각은 당연히 하지 않
는다.
지고도 기분 좋은 것이야말로 소설 읽기의 최대미덕이 아닐까?
그게 좋은 것이든 좋지 않았던 것이든, 기존에 빡빡하게 굳어져
있던 내 머릿속의 지평이 단번에 무너지는 순간...오오! 세상은 참 넓
기도 하여라! 눈이 확 트이는 그런 기분.
손승윤 님의 '청풍연사'는 여러모로 신선하다.
우선 '천도비화수'에서 선 보였던 그 무겁다 못해 암담하기까지 한
글의 무게, 감정의 무게를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아니! 그 사람이 이
런 글을 썼을 리가?' 눈알이 뿅 튀어나오기가 쉽다. 혹시 중간계투요
원이었던 '열하일기'를 사뿐히 즈려밟은 사람이라면 눈알 튀어나오는
정도가 약간은 덜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아니! 그 사람이?' 라
며 고개 한 번 정도는 갸우뚱하게 될 듯.
그러나, 이 말이 '청풍연사'가 가볍다 못해 훨훨 날아가 버릴 정도
다, 라는 말씸으로 받아들이면 대략 곤란하다.
그런데 또, 가볍지 않다, 라고도 말하기가 거시기하다.
그래서 한바퀴 빙글 돌아 다시 '청풍연사'는 가볍다.
타다다다-무지막지하게 튀어나오는 통신어, 은어, 비속어의 범람은
왠지 삐딱한 자세로 읽기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길어봤
자 두 줄을 넘지 않는 간략간략한 문장, 앞뒤토막 뚝뚝 잘라먹고 문
법이야 안녕~ 난 내 식대로 쓸련다~ 손 흔드는 모습은 문학 엄숙주
의자의 악마를 약올리기에 딱 좋다. 너 진지? 나 천진난만이야! 열
세 살 짜리 송강호의 무대뽀 정신.
이런 글이 떠있는 곳까지 떠오르려니 어찌 가벼워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기존의 선입견, 잘난 척하는 못난 척, 해골 속의 녹슨 대못
도 잠시 뽑아놓아야지.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스스로 무장해제를 당하고 그 가볍고 높은
곳에 올라가며 밟는 계단이 신비로운 빛을 닮아 있다는 것.
그리하여 '청풍연사'는 정말이지 가볍다. 너무 가벼워서 미쳐버릴
것 같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라이트! 래프트! 어퍼컷! 혼수상태로 만들어
해롱해롱, 허공에 둥실 띄워 올리는 식의 가벼움. 이게 가벼움이 아
니면 뭐가 가볍다는 것이냐!
훠이~ 사이비 가벼움들은 저만치 물렀거라!!
모든 문학은 현실을 떠나 꿈에 이르게 하는 계단, 그러나 그 계단
을 다 걸어간 뒤에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새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있
음을 발견하게 된다.
무협이나 환타지를 두고 대리만족이니 현실도피니 어쩌고 지랄해
도, 세상의 그 어떤 소설이 '현실-꿈-현실' 의 계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종류의 소설이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고 볼 수도 없는 것은...그 계단의 중간과 끝, 즉 꿈은 어느 방향의
어떤 꿈인가, 그리고 되돌아온 현실은 처음의 출발했던 현실에 비해
얼마나 나아졌는가...하는 차이점 때문이다.
아아...해골 삐걱거리게 만드는 잡설은 때려 치자.
'청풍연사'는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무협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
벼운 꿈으로 나를 인도한다.
눈꼽 한 개 만치 과장법을 쓰자면, 저 알퐁스 도데의 '별'보다 더
순수하고 맑고 깨끗하며 낭만적인 세계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몽니가 웃을 때 함께 웃고, 몽니가 입술 삐죽거릴 때 나 역시
소설 속의 누군가에게 입을 삐죽거린다. 그리고 몽니가 알싸한 첫 번
째 입맞춤을 경험할 때에는 헤벌쭉~ 괜시리 요놈의 심장이 두근 반
이 됐다가 세근 반도 된다.
"사과에여?"
"하아-하아- 음, 청사과."
"그...그럼 한 번 먹어봐도..."
안돼, 몽니. 청려가 손을 잡았다.
"음?"
"아직 덜 여물었어."
에이, 씨......이하생략^^
에고 부끄러워라...;; 이 장면에서는 진짜 헤벌쭉~ 했다.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한 이십 년 남짓 휙 돌아간 듯한 기분. 아직
은 세상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거라고 믿으며, 그렇게 아름답고 반짝
이는 것을 찾아다니고 싶어지던 시절의 내가 된 것 같은 기분.
이것이 바로 '청풍연사'가 인도하는 계단을 따라가면서 경험한 꿈
이었다.
제각각의 사람이 있고, 제각각의 이야기가 있다. 따라서 하나의 이
야기를 읽고 난 뒤에 젖어드는 여운의 가짓수는 사람수 곱하기 이야
기수...라는 건 거짓말이고^^; 아무튼 그 여운 역시 제각각일 것이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종류의 여운에 맞는 이야기를 찾는 게 사람의
본성이다.
나는 무협을 읽으면서 몇 가지의 좋아하는 여운이 있는데, 그 중
동화적 감성에 대한 항목은 전혀 없었다. 사람이 퍽퍽 죽어 나자빠지
는데 동화는 무슨 동화. 애초부터 그런 의도로 쓴 이야기는 외면한다
는 의미.
하지만, 이젠 눈이 팍 터졌다.
무협에서도 동화적 감성을 한 번 얻어보자. 이거 봐. '청풍연사!'
능글능글하고, 죤마니 어쩌고 엉겨붙으면서 응큼하기까지 한 데다
가, 소위 형님(?)한테 투자금까지 받아 챙길 정도로 성깔도 제법 있
다. 한 마디로 싸가지가 바가지인 솜털. 그런데 왠지 가만히 보노라
면 새콤달콤 칵 깨물어주고 싶은 우리의 열 세 살 청춘 몽니를 따라,
나도 저 거대한 바다를 가르며 뿌우-물기둥을 뿜어 올리는 고래 한
마리 잡으러 가보겠단 말씸이라 이거다.
흐흐...혹시 저랑 같이 몽니를 따라 고래 잡으러(?) 가실 분 계시다
면 일반연재란에 문짝 활짝 열려있다는 말씸은 뽀~너스^^
피에쑤-랍시고 덧붙이자면, 손승윤 님. 우리 몽니 고래 잡을 때까
지 손가락 신명 꼭 붙잡고 계시길. 중간에 길 잃고 어디론가 잠적해
버리면 그 몽니 따라서 저 역시 방황할 것임. 그럼 아마 주인 잃은
열 세 명의 살벌한 암살자들, 손승윤 님 주위를 어슬렁거릴 것임.
키득키득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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