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강승환
작품명 : 전생기
출판사 : 로큼미디어
- 너희는 나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지만 나는 너희의 주인이 되기를 원치 않노라! 내가 왕이 되는 것은 운명의 노예가 된다는 것! 나는 다만 내 운명의 주인이 되기를 원할 뿐이다.
재생 연재본이 전생기란 이름으로 3권짜리 책으로 나왔습니다. 여러가지 말이 많았지만 제 느낌은 제목 그대로 입니다. 삼두표월드의 뼈이자 팬서비스라고 말이죠. 이 책은 애초에 인터넷에 연재된 이야기를 뼈대로 수정할 부분은 수정하고 뜯어낼 부분은 뜯어내고 새로운 살을 붙인 이야기 입니다. 재생, 신왕기, 열왕대전기의 세계관을 매끄럽게 이어줄 끈, 재정립이 필요했고 거기에다 이 이야기를 계속 보아온 독자들에 대한 팬서비스란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흔히 장르소설을 읽을 때 암묵적인 룰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큰 힘을 얻고 자신을 억압하는 기존의 세력이나 부조리를 깨부수는 호쾌한 내용이 전개 될 것이란 기대 말입니다. 일부에선 이러니 장르가 발전이 없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이런 대리만족을 주는 이야기가 없으면 안 팔립니다. '나는 즐길 거리가 필요해.'라고 독자들은 말하고 있고 거기에 맞춰서 작가는 이야기를 풀고 있으니까요. 더 큰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좋지만 그 주제보다는 일단 대리만족이 우선이니 말입니다. 대리만족을 주면서도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면 그런 작품이 명작이고 대작 소리를 듣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전생기에선 그런 대리만족을 할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파천황적인 힘으로 주인공이 세상을 뒤엎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 장면을 보고 독자들이 호쾌하다거나 장쾌하다는 느낌을 받진 않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세상을 뒤엎는 장면은 그런 호쾌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절규이기 때문입니다.
초생에선 정을 받지 못해 세상을 피로 뒤덮었고 재생에서 자신의 가문을 무너뜨릴 때는 자신의 부모, 특히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울분이 있었습니다. 전사인 칼리일 때는 자신의 연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비분이 깔려 있었죠. 자신에게 깝죽거리는 적을 징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 혹은 전부를 잃고 세상을 때려 부수기에 그런 장면이 아무리 스케일이 커도 통쾌함을 느끼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 전생기는 지금 시장에 나온 대리만족적인 이야기와는 달리 '자유'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고 묻고 있는 것이죠. 이 글에서 자하르의 동료는 자하르를 부러워 합니다. 자신들은 자신의 나라, 지위, 규율, 가족 등으로 부터 속박되어 있는데 자하르는 그런 속박으로 부터 자유로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내키는대로 행동하고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모습에 다른 등장인물들은 자하르를 부러워 합니다.
하지만 그 자하르조차도 섭리와 운명으로부터 자유롭진 못했습니다. 초생과 재생 등의 과정이 섭리가 깔아 놓은 레일 위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흡혈왕의 기억과 재생에서의 대마법사의 기억 등, 모든 기억을 되찾은 칼리가 한 말이 '이게 뭐야!'입니다. 진정 자유롭게 살아왔다고 생각해 왔는데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처럼 그 손바닥 안에서의 자유만 누린 셈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칼리는 그 섭리의 안배를 벗어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 역시 섭리의 안배일지 운명의 예정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과정에서 책의 이야기가 끝이 나니 말입니다.
서대륙의 이야기와 자하르와 주변 인물들이 계속 전생한다는 이야기 등 지금 연재되고 있는 열왕대전기와 비교를 하게 만듭니다. 전생기에 나온 이글스, 힐테른, 예나, 사이어른, 소리타, 세린느, 트리시, 스바타와 스바사 등의 인물들이 열왕에선 어떤 인물일지 생각해보는 것도 독자들의 재미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삼두표님의 글 중에서 이 전생기가 주제의식은 제일 깊었다고 생각합니다. 길고 긴 이야기를 군살은 하나도 없이 뼈채로 드러내었고 작가님의 본 모습, 내면을 가장 잘 드러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속박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모습, 운명의 간섭조차 거부하는 모습 등 모든 속박으로 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것을 계속하여 드러내고 있습니다.
읽다 보니 삼두표님의 이야기에 나오는 대표적인 코드가 희미하게 나마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자유와 부정(父情), 광기와 같은 모습 말입니다. 재생, 신왕기, 신마강림, 열왕대전기의 인물들은 자유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슬에선 자유롭지 않죠. 자신의 힘을 드러내고 세상을 향해 일갈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속박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자하르는 부정을 느끼지 못해 모친의 사랑을 갈구했고 신마강림의 양인명은 남궁유룡과 혼재된 자아속에서도 부친의 정에 번민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열왕대전기의 카르마는 황제에게서 부정을 느꼈지만 결국 배신 당하고 말죠. 그런 부정을 갈구하는 모습이 삼두표 월드의 다른 교집합이라 생각합니다.
광기는 여러작품에서 곳곳에서 보입니다. 사람의 야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강렬함은 곳곳에서 보이지만 그런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 신마강림의 당문의 비사가 아니었나 합니다. 패륜과 증오등 인간의 원초적인 강렬함을 잘보여 주었으니 말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이 전생기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란 주제를 붙잡고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광기나 부정, 자유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 말입니다. 그냥 대리만족 대신 이 자유에 대해 이야기를 풀고 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전생기는 자유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풀어 썼다는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대리만족이 아닌 자유에 대한 주제를 붙잡고 이야기하고 박스본으로 책을 내는 등 이 이야기는 삼두표월드의 골수독자들을 위한 팬서비스가 아닌가 합니다.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하면서도 그 이야기를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독자들을 위해 내 놓을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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