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신가
작품명 : 벽천십뢰
출판사 : 청어람
벽천십뢰의 감상을 적는 것은 참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취향을 크게 타기에 한쪽에선 열광을 다른 한쪽에서는 한숨을 부릅니다. 재미있었다고 감상을 적으면 그렇지 않다는 댓글이, 재미없었다는 감상을 쓰면 나는 재미있었다는 댓글이 달릴 소설입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태생적으로 특정 독자층을 대상으로 쓰여졌으며 그로인해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짊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분명한 이 소설의 장점이자 동시에 족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찬 족쇄는 꼭 족쇄라고 할 수 없다는 이치를 아실 것입니다. 때론 안전끈이 되기도 하지요.
이 소설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50년전 마교의 침공을 막고 마교교주를 일격에 죽인 망아대사를 찾아 개방의 장로 청풍개는 조선 금정산 범어사에 방문합니다.
망아대사는 50년 전 싸움이 끝난 그 때 이미 마교의 재침공을 우려하며 용아청뢰검이라 불리우는 자신의 보검 열자루를 중원에 남기고 왔습니다. 다음의 말을 남긴 채로...
"이것이 끝은 아닐 겁니다. 때가 되면 찾으러 오겠습니다."
망아대사 대신 그의 제자 환우가 열자루의 보검을 되찾기 위해 청풍개를 따라 중원으로 떠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 소설은 첫장부터 그 성격과 방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파도소리가 시원하게 울리는 백사장. 그곳에 선 한 소년.
소년의 손이 망망대해를 향해 뻗습니다.
당찬 기합과 함께 눈부신 빛살 하나가 그의 손을 떠나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다 힘을 잃고 사라집니다.
세월이 흐릅니다. 백사장에 차오르고 내려가는 바닷물... 하늘을 나는 갈매기 떼 무엇 하나 변화 없지만 대자연 속에 소년만이 변해갑니다. 매일같이 백사장에 나와 바다를 향해 빛을 쏘아내던 소년은 어느새 청년이 됩니다.
소년의 손끝에서 생성되던 빛은 어느새 하나에서 열로 불어나 있었고 그러한 청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첫장이 끝납니다.
그 절대적인 신위를 보이는 청년은 바로 환우입니다.
줄거리와 첫장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이 소설의 분위기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어린 나이, 강한 무공, 첫 하산, 조선에서 태어났다는 특징을 가진 주인공이 타국인 중원에 가서 보이게 될 행동은 충분히 추측 가능한 수순입니다.
강한 무공을 가지면 그것을 사용하고 싶을 것이며, 중원의 무공보다 조선의 무공체계의 우수성을 드러내고자 할 것이고, 나이와 겉모습만으로 무시하는 초면의 타인에게 자신을 몰라본 죄로 쓴 맛을 보여주고 싶을 것입니다. 좀 과하게 보여주고 싶을 것입니다.
나이가 나이인데다 이방인인 만큼 중후함이나 품위, 사회적 체면따위로 자신의 마음이 가고자 하는 길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 풀어 말해서, 제 맘대로 행동할 거란 이야기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소설이 어떤 독자층을 대상으로 쓰여졌는지 아셨습니다. 그 안에 속해있든 속해있지 않든 이제 이 소설에 대한 제 생각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높게 평가합니다.
그것은 작품성이 뛰어나다거나 깊은 철학이 담겨있다거나 혹은 새로운 시도를 한다거나 상상력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이 소설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특정 독자들에게는 재미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왜 재미있는가?
소설의 방향이 확실히 잡혀 있기에 대상층이 명확하고 이에 맞춰 그들이 좋아할 주인공의 성격을 설정했으며 또한 기호에 맞추어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재미를 쉽게 느낄 수 있는 스토리를 구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소설은 내게 유치해 보인다고 남에게까지 유치하다고 판단하면 안되며, 내가 주인공 성격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남또한 그 성격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며, 내가 식상했다고 남들도 식상하리라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 소설에 크게 만족하는 사람은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수를 위한 맞춤형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벽천십뢰는 기본 소양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부정적인 느낌을 가질 확률이 타 소설에 비해 낮아 더더욱 그렇습니다. 재미또한 빠지지 않습니다.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대상층에 속해있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으며, 속해있지 않다고 해서 좋아할 일도 아닙니다. 나이에 따라, 취향에 따라, 혹은 그와 관련된 역린이 만들어 졌느냐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느냐에 따라 우리 모두는 그 대상층에 속해있던 적도 있었고 속해있지 않은 적도 있었으며 또 언제 다시 속하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취향에 맞아 재미있었다면 그것은 그 자신에겐 최고의 소설이 됩니다. 그 소설이 자신에겐 재미없었다고 남에게까지 자신의 판단을 강요하는 것은 오만이자 자만입니다.
취향에는 때가 있고 그 때에 가장 자신에게 맞는 소설을 찾아내 그것을 읽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사람은 같은 자극엔 항상 변화를 꾀하기 때문에 결국 자연스럽게 새로운 취향을 찾아 변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겐 나이나 체형에 따라 그때 그때 어울리는 옷이 있습니다. 남의 입에 밀려 자신의 취향과 나이, 체형에 맞지않는 옷을 입는 이는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나귀를 매고 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에서나 있을 법한 남 시선에 조종당하는 우스갯거리가 되겠지요.
소설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무언가를 읽고 싶다면 그 소설이 맘에 맞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벽천십뢰는 특정 독자들을 위한 재미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그러한 것에 질리지 않았다면 즐겁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그 즐거움을 느끼시라고 추천하는 바입니다.
물론 벽천신뢰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는 이유는 특정 대상의 체형에 맞춰 지어졌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 특정 대상이 입는 옷은 이음새가 쉽게 뜯어져 망가지기가 쉬운데도 깔끔하고 잘 정돈되게 바느질을 해 놨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장점은 아래의 측면에서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다음과 같은 취향의 소설을 원하는 분이 있습니다.
1. 정/사 구분없는 주인공[협의심도 없고 자기앞길만 가는주인공]
2. 자기 혼자 여행하고 시비거는것들 족족 다 쳐죽이는 주인공
3. 음모에 흽싸이고 괜히 복잡한 스토리는 싫습니다.
4. 여자한텐 좀 무관심한 주인공이 좋습니다.
5. 중요한건 먼치킨입니다. 먼치킨이어야합니다.
6. 주인공이 답답하지않은 성격 털털하고 걸리는거 없이 나가는 주인공. <출처-네이버>
이런 소설 정말 쓰기 쉬울 것 같지요?
물론 초보작가들이 건들기는 정말 쉽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강하고 개성강한 주인공만큼 다루기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순식간에 적정한 선을 지나쳐 툭툭 튕겨버리기 일쑤입니다.
무심코 읽고 있던 분들께는 이때야말로 재난이 시작되는 때입니다. 사회적 관념과 이성이 지나치게 또렷한 분들은 주인공의 '무절제, 내 맘대로' 공격에 맞아 작게는 내상, 크게는 자칫 광기에 빠져 심한 분노를 표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벽천십뢰는 위의 취향을 가진 독자층을 위해 만든 주인공임에도 위험수위를 넘어서지 않게 잘 통제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최후의 고지선만큼은 필사적으로 사수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스토리나 등장인물의 행동이 비약적이거나 이치에 심하게 안 맞는 부분도 없었습니다. 이미 여러 소설을 낸 작가 답게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고 이 소설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높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맘 편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
이 소설은 그러한 이유로 특정 대상층에게 완벽한 재미를 보장합니다. 아직 이와 같은 소설에 질리지 않았고 오히려 찾아다니고 있다면 이 소설은 바로 당신을 위한 소설입니다.
단지 제 취향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소재의 식상함 때문에 전 통한의 발길을 돌리지만 부디 이 재미있는 소설과 상성이 맞는 분은 제 몫까지 즐겁게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