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자식들은 엄마는 언제까지나 엄마이기를 원한다. 그건 나이가 들어가는 것과 거의 상관없는 것 같다. 나를 낳아준 엄마 앞에서 어리광부리고 싶은 욕망을 참는 것. 그것이 나이가 들거나 철이 든 증거가 아닐까? 나아가 엄마도 나와 같은 욕망과 욕구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용인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충분한 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에효~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거리는 무진장 먼 거 같다.)
거의 모든 자식들은 엄마는 그 어떤 경우에도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는다. 사실은 그래줘야 한다는 욕구와 믿음이 혼재되어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아무튼 철봉황에 대한 반감의 뿌리는 결국은 이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따져 보면 심씨 일가를 조각 낸 원인 아버지 심제충에게 있다. 그의 돌발적인 행동은 한 가정의 아버지와 장남은 죽고 차남은 불구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무엇을 위해서? 천붕방을 위해서다. 가정 따위가 어떻게 되든 고려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결혼 전 사랑의 결과인지(난 이게 맞는 것 같다) 결혼 후 불륜의 결과인지 알 수 없는 장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제충은 그 장남을 위한 속죄양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차남의 목숨을 내어 놓는다.
그럼에도 심제충을 나쁜 놈으로 보는 시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철봉황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불공평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내 생각에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자식에 대한 책임을 엄마에게 훨씬 더 많이 지우는 사회적 인식에 있는 것 같고 다른 하나는 심제충은 충성이라는 큰 가치를 위해(혹은 천붕방이라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아들을 버렸지만 철봉황은 개인적 욕망을 위해 아들을 외면했다는 이유에 있는 것 같다.
자식에 대한 책임은 누가 더하고 덜한 것도 없는 부부 공동의 것이라는 말에 구구한 설명을 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나는 물론 이 [빙하탄]이라는 소설을 통해 장경이 하고 싶었던 얘기를 다 알 수는 없다. 그래도 그 중 한 가지라고 생각되는 건 큰 가치를 위해 희생된 개인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닐까 싶다. 장경의 본심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심제충의 ‘충’이 철봉황의 ‘사랑’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 천붕방의 이익을 위했다는 말도 결국은 열사자성의 이익을 시기하는 집단이기주의적 시각 이상 아니라고 본다. 더군다나 심제충은 너무 과하다. 개인의 아집이라고 평가 절하 하고 싶을 정도로...
[빙하탄]에서 철봉황이 결혼 뒤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장면도 없다는 건 사랑하는 남자는 아니지만 남편에게 잘 내조하고 자식들을 잘 키웠다고 봐야한다. 그런데도 철봉황에 대한 의심의 시선이 보이는 건 역시 아들과 정인의 사이에서 정인을 택한 이유 때문이고, 결국은 맨 처음에 언급한 이유 때문이지 싶다.
심연호는 자신의 부모를 욕하고 (한 때 자신의 주군이기도 했던) 천붕방주를 쓰러뜨리고 자신의 사조를 죽인다. 그에게는 (앞서 언급한 ‘큰 가치를 위해 희생된 개인에 대한 문제 제기’와 연계해서) 기존의 질서에 반항하는 청년의 이미지가 있다. 그건 또한 독립을 원하는 자식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심연호가 완전히 독립한 것이 바로 천붕방주와의 싸움 이후라고 본다. 싸움 이후에야 비로소 전대가 쌓은 업안에서 헤매는 것을 벗어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철봉황은 쿨한 엄마다. 이미 다 커버린 자식의 길을 인정해 주고 자신의 길을 간다. 철봉황이 쓰러진 천붕방주를 위로할 때 심연호의 뒤에는 교검이 있었다. 자식의 뒤를 바라봐 주는 여자가 있는데도 철봉황이 엄마 노릇을 하려고 했다면 그건 모정이 아닌 집착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읽은 장경의 소설은 [암왕] 이전의 모두와 [벽호]를 건너뛰고 [빙하탄]이다. 내가 말하는 장경의 범위는 위 소설의 안이라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 장경은 마초다. 그리고 그 자신이 그것을 굳이 숨기거나 부인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장경이 그려낸 여성상는 크게 둘로 나뉜다. 성녀와 악녀. 모두 한쪽으로 극까지 증폭되었지 실제적인 모습의 여성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잠깐 삼천리로 빠져 보자면 임준욱의 여성상도 크게 둘로 나뉜다. 현모양처인 (상상 속) 자신의 엄마 혹은 부인의 이미지와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의 이미지다. 임준욱의 이미지에도 상당한 왜곡은 있지만, 장경에 비하면 상당히 실제적이다. 내 생각에는 그 차이가 유부와 총각의 입장 차이에서 오는 것 같다. 근저에는 장경은 여성을 두려워 하지만 임준욱은 여성을 부담스럽거나 귀찮아하는 의식이 깔려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철봉황과 교검이라는 캐릭터는 좀 특별하다. (철봉황에게는 악녀의 이미지가 조금 걸쳐있지만) 그 이전의 성녀와 악녀 어디에도 끼지 않는 듯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대로 소설을 써보자면 교검과 철봉황은 마초 장경이 (회개는 아닌 것 같고)변명이나 주장을 위해 만든 이미지라고 생각된다. 현실의 여성들에게 교검이나 철봉황만 같아도 남자들의 인정과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변명과 남자들이 능력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하라는 주장이 섞여있는 캐릭터가 아닐까?
그 외 죽이기 위해 비급을 넘겨줬다는 말은 지나친 비약인 것 같고....
철봉황은 장경이 만들어 낸 여러 인물 중에서도 전형에서 벗어난 멋있는 인물상이라고 생각한다. 박하게만 보기에는 너무 아깝다. 그보다 우리는 결국은 엄마도 나와 같은 욕망과 욕구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용인해야 한다. 그 첫걸음을 철봉황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_-;;;(난 늘 결론이 안 맺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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