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감상

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작성자
Lv.1 영지윤
작성
04.01.17 22:37
조회
1,136

조금 늦었지만 하성민님의 ' 악인지로 ' 를 빌렸습니다.

밑에 추천의 글을 썼던 ' 독비객 ' 을 책방에 갖다주는 김에 빌린 것입니다.

제목부터 ' 악인지로 ' 인지라, 정의협사(正義俠士) 주인공을 상당히 싫어하는(?) 저로서는 뭔가 사악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이 책에 끌렸습니다.

사실 싫어한다기 보다는, 무협을 처음 접했을 때 읽었던 무수한 ' 주인공에게 찬란한 서광을!! ' 류의 이른바 구무협에 대한 기억이 그런 주인공을 껄끄럽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김용의 사조영웅문 3 부를 읽으면서 ' 역시 정의협사 주인공은 따분해! 답답해! '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있고..

아무튼 하성민님은 저의 기대를 반만 충족시켜 주셨습니다.

왜 반인고 하니, 재미있게 읽었지만 저는 결국 주인공 장두이를 완전한 악인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인 채, 그 안만을 세계의 전부로 알고 살아가는 연약한 새가 연상되었습니다.

작가님께서 끝머리에 '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핑계거리를 만들어내어 그 핑계를 맹신하고, 남 뿐 아니라 자신을 속인다. 그것을 사실은 자신도 알고 있지만 만약 멈춘다면 더 큰 상처를 입는다는 두려움으로 계속 핑계를 만들어낸다 ' 는 장두이에 대한 평가를 하신 바 있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실제로는 거짓말과 배신을 밥먹듯이 하며 살아가는 장두이. 그러나 그는 가장 믿었던, 아버지처럼 따르던 사부에게 배신당한 후,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배신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거짓과 배신을 행할 때마다, 온갖 궤변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켜 여린 자신을 보호합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이 배신한 사혼검객 이균하에게 자신의 행동을 모두 털어놓고, 이해를 구합니다. 그가 자신을 찔러온다고 해도 전혀 반격하지 않겠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그가 장두이를 찔러올 때, 장두이는 단숨에 이균하의 목뼈를 부러뜨려 죽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그는 자신이 맹신해오던, 아니 맹신하고 싶어서 몸부림쳤던 그 모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들이 실은 자신이 만들어낸 궤변, 정당화 시키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자신을 보호해오던 껍질이 벗겨져버린 장두이가 어떻게 될지 궁금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장두이가, 과거 천하제일검이었던 무불도의 온정으로 살아난 후(동귀어진하는 상대방을 반수 정도 나은 상대방이 살려주고 자신이 죽는 것은 장경님의 천산검로를 연상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는 행동입니다.

검을 하늘에 던져 올리며, 검봉부터 검이 똑바로 떨어진다면 하던 일(무림의 파괴)을 계속할 것이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검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기실 그 검은 장두이가 검봉을 일부러 더 무겁게 만들었기 때문에 똑바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장두이는 제 기대대로 성숙하기는 커녕, 다시 자신을 속이는 일을 시작한 것이지요.

다시 길을 떠나며 장두이가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 잘생기고 머리도 좋고 무공도 강한데다 하늘의 뜻까지 마음대로 하니, 난 정말 나쁜 놈이다 '  는 것이었습니다.

장두이는 자신의 사부가 강호에서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을 원망하여 강호를 파괴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는 사부가 자신을 배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를 사랑하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사부를 미워한다고 자기 암시를 겁니다. 그는 정말로 연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기 기만으로 가득찬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천하에 단 한 사람이라도 그를 이해해주고, 배신자가 아니라고 해주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에 천하제일검이 그를 이해함으로써 그런 삶을 벗어던질 기회가 왔지만, 그는 용기가 없어 자신을 가두고 있는 틀을 깨지 못합니다.

이런 장두이의 모습은 보통 사람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사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를 원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일 겁니다. 장두이는 어쩌면 결벽증 환자였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정당화시키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이것은 명예욕과는 다른 것입니다. 장두이는 적어도 남이 자신을 칭찬해 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던 것 같으니까요. 단지 그는 이해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토록 믿어오던 것은 허상이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완벽한 악인(惡人)의 그것이었고..

현대에 장두이가 살았다면, 그는 아마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죄를 저지른 후, 정신병이 있는 자로 판단되어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거죠.

이 책에서는 장두이가 다시 떠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것은 장두이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살던 대로 살다가 파멸할 지도 모릅니다.

인간성에 대한 통찰이 엿보이는 수작이었습니다. 작가분의 말씀대로, 저는 장두이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적어도, 쉽게 미워할 수는 없는 종류의 사람인 것 같습니다.


Comment ' 3

  • 작성자
    Lv.1 농구광
    작성일
    04.01.17 22:50
    No. 1

    억... 내용이 있네요. 아직 안 본 소설인데.. ㅡ.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가라
    작성일
    04.01.18 02:14
    No. 2

    악인지로.. 정말 재밌게 본 소설..

    장두이의 계략은 혀를 내두르게 하죠 ^^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0 狂風
    작성일
    04.01.18 20:14
    No. 3

    악인지로... 용대운님과의 공저죠.
    시간이 나면 다시 읽어봐야지.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감상란 게시판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2423 무협 '반인기'를 읽고 .. +2 Lv.4 야옹 04.01.18 1,377 0
2422 무협 한상운님의 '양각양' 을 읽고.. +2 Lv.1 영지윤 04.01.18 1,262 0
2421 무협 무협작가 평론- 서효원입니다. +15 Lv.19 che 04.01.18 2,600 0
2420 무협 임준욱님 농풍답정록,,,, 역시~~~~~~ +1 Lv.67 아임그룻 04.01.18 947 0
2419 무협 용혈무궁-한수오. 04.01.18 951 0
2418 무협 작가님들별 추천입니다.. +6 Lv.3 조아조하 04.01.18 1,433 0
2417 무협 학사검전과 유수행 보다 더 재미있는 소천... +11 Lv.99 곽일산 04.01.18 2,469 0
2416 무협 <격류>. 무협의 장르에 속한다고 볼 ... +1 Lv.8 우림스파 04.01.18 697 0
2415 무협 (자유연재란)천애님의 강호연가 +2 Lv.10 일천수라 04.01.18 791 0
2414 무협 <학사검전> 특이하긴 한데...흠.. +13 bible-THOM 04.01.18 1,220 0
2413 무협 보표무적 4권을 읽었는데.. Lv.70 운진 04.01.18 984 0
2412 무협 유치한 것, 감동적이고 +1 Lv.1 등로 04.01.17 981 0
2411 무협 사마쌍협 삼권까지 읽고.. +3 Lv.1 농구광 04.01.17 864 0
» 무협 하성민님의 '악인지로' 를 읽고.. +3 Lv.1 영지윤 04.01.17 1,137 1
2409 무협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방랑자 이공! 설봉님... +7 Lv.13 은검객 04.01.17 1,184 0
2408 무협 금슬상화 +10 천풍운 04.01.17 1,440 0
2407 무협 이 책 추천합니다!! +18 Lv.1 志樂少享 04.01.17 2,260 0
2406 무협 소녀의 시간 +8 Lv.1 낙일방 04.01.17 1,293 0
2405 무협 일검쌍륜을 읽고. Lv.17 억우 04.01.17 776 0
2404 기타장르 재미있었던 무협작...기억나는 대로 무작위... +15 Lv.1 북천권사 04.01.17 2,046 0
2403 무협 살수전기 , 귀거래사 / 백야 +9 청해의별 04.01.17 2,470 0
2402 무협 '사신'을 읽고 아쉬운점 (개인적생각) +6 Lv.1 석광 04.01.17 1,048 0
2401 무협 저가 생각하는 베스트 무협소설 +8 천풍운 04.01.17 2,653 0
2400 무협 괴선을 읽고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네요 +2 Lv.78 유심 04.01.16 1,423 0
2399 무협 한상운 님의 '독비객' 을 읽고... +4 Lv.1 영지윤 04.01.16 1,114 0
2398 무협 송진용님의 몽유강호기를 읽고.. +1 카푸치노 04.01.16 945 0
2397 기타장르 사마쌍협..을 "절반" 쯤 읽고나서.. +12 Lv.1 삼겹살 04.01.16 1,200 0
2396 무협 임준욱님의 괴선을 읽어보고.... +7 Lv.60 미인촌사장 04.01.16 1,237 0
2395 무협 [추천 겸 감상] 대붕이월령(大鵬易越嶺)을 ... +5 Lv.17 억우 04.01.16 1,370 0
2394 무협 장경님의 '황금인형' 을 읽고 +13 Lv.11 향수(向秀) 04.01.16 1,278 0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