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이란 한국영화를 보았다.
군복무 중에 고참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젊은이가 나중에 보복 살인을 한다는 영화였다.
혹시 나중에 저 영화를 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반전'과 관련된 부분은 언급을 삼가고ㅡ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나중까지 꺼림칙하였던 이유는 주인공 동성애자들이 끝에 가서 동반 자살을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 류의 영화를 너무 많이 보지 않았던가, 우리.
'번지 점프를 하다', '로드무비', '패왕별희',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동성애자들은 아니지만 여성들 특유의 끈끈한 유대가 동성애적 색채를 띠고 있던 '델마와 루이스'....
퀴어영화를 별로 보지 않았던 나도 즉석에서 이 정도로 열거할 수 있을 정도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동성애자를 처리하는 방식이란 생각이 든다. 죽여 버리는 것 말이다.
무능한 시나리오 작가가 실타래처럼 얽힌 현실을 해결하는 가장 안이한 방식이 죽음이다.
좋은 게이는 죽은 게이인 모양이다.
본의 아니게 순결을 잃은 여주인공이 자살을 함으로써 그 정신적 순결을 입증해 보여야지만 비로소 보는 이의 동정을 살 수 있듯, 게이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난 다음에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모양이다.
성적 소수자를 그린 영화들 중에서 예외적으로 내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얼마 전에 디비디로 보았던 '천하장사 마돈나'다.
그 영화가 내 마음에 든 이유는 그것이 해피엔딩을 선택하고 있다는 데 있다.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영화 속의 소년은 자살도 하지 않고 엉뚱하게 차에 받혀 죽지도 않고 소원하던 수술을 받아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글쎄, 성소수자들의 현실이 과연 실제로 그렇게 순조롭게 풀려 나갈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러한 결말은 우리 사회가 이질적인 존재들을 배척하지 않고 불편을 감수한 채 끌어안고 살기로 했다는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 같아서 일단 호감이 간다.
아, 그러고 보니 역시 얼마 전에 본 이송희일의 '후회하지 않아'도 있다.
그 자신 동성애자로 알려진 감독이 만든 작품답게 이 영화의 결말은 대단히 현실적이다.
주인공인 두 게이는 자신들의 성정체성 때문에 이리저리 부대끼며 마음 고생을 하다가 결국은 서로를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한다.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너무 장황한 과정을 거쳐 온통 만신창이가 된 두 주인공은 한적한 교외에 자동차를 세우고 그 안에 지쳐떨어져 있고, 무슨 일인가 싶어 차를 살피러 온 경찰관이 들여다보는 앞에서 한 게이가 다른 게이의 음부에 손을 갖다 댄다.
앞으로 자신들의 성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의사표시다.
하지만 그래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사랑을 인정하겠노라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도 아니다.
그저 본인들이 자신들의 감정에 정직해지기로 마음먹었을 뿐이다.
그래도 그들은 살아 있고 자신들의 사랑을 지켜 가기 위한 싸움을 감당하기로 작정하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적이다.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