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목이 자극적이네요.
일단 취향을 얘기하자면 먼치킨 이라 불리는 작품은 정해진 작가분을 제외하고는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사실 먼치킨이라 불릴만한 소설은 강무님의 바이바할 연대기 와 몇몇작품을 제외 하고는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깽판과 먼치킨을 따로 분류 하였습니다)
강무님의 소설에 부족함이라면 호쾌함이 부족하다는 것이겠지요.
일단, 개인적으로 분류한 먼치킨에 대한 생각은 작품내에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이게 필수 조건이지요.
그런면 에서 ‘투명 드래곤'은 훌륭한 먼치킨 소설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다른 작품 얘기를 해보자면 그런 존재에게 성격을 부여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다 보니 그 성격이 이해가 되지 않고 답답함을 느끼다 보면 재미가 없어질수 밖에 없지요 그리고 단조로운 표현도 단점이 되곤 하지만, 결정적으로 먼치킨에서 느껴야할 통쾌함이 부족하게 되고 설정도 박살나다 보니 안좋게 보이는게 어쩌면 당연 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시 투명 드래곤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히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투명 드래곤 이라는 글 안에서는 투명 드래곤의 적수가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크와앙" 이라던가 “투명드래곤이 xx했다” 라는 표현의 단조로움을 제외하면 가장 먼치킨을 잘 표현했고 가장 호쾌한 ‘방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면 에서 ‘먼치킨’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릴수 있는 방식은 복수물이 되겠지요.
많은 복수물의 주인공들은 굉장히 강합니다. 또한 억울하지요, 십전제가 그러했고 전륜마도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 과정과 상황에 대한 명분은 충분히 카타르시스를 느낄만 하죠, 거기에 추가한게 일명 ‘먼치킨'이라 불리우는 장치입니다. 먼처킨을 성격으로 표현하자면 ’파괴성' 으로 분류 할수 있겠네요.
즉, 먼치킨에 부여된 성격과 인물에 부여된(보편적으로)먼치킨을 죽이는 상반된 성격
(보통은 은거라던가 착하다던가 숨긴다던가)이 충돌 하다보면 이도 저도 아닌 소설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많은 작품들이 오류를 범하고 용두사미의 수순을 밞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즉, 먼치킨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위한 최상위의 장치중에 하나인데 억지로 이야기의 틀에 맞추려 보니 그게 답답함과 허술함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것에 대한 해결 방안을 ‘투명 드래곤'에서 찾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더 잘 쓴 작품을 들자면 십전제를 전 추천하고 싶습니다.)
즉, 위기가 없다는것은 긴장감이 없다. 단조로운 이야기 진행등의 단점을 불러올수 있지만 그것 이상의 장점이 있습니다. 투명 드래곤에서 보여줬던 단점인 단조로운 표현력 이야기의 배제등을 보완해서 비극적인 사건을 거침 없이 해결해 나가는것으로 해결할수 있는데 이런 부류를 또 잘 보여주는것이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고전소설 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많은 영웅적 고전소설등을 보면 초기의 위기 부분을 제외하고는 좀 상스럽게 표현하자면 “쑤컹 쑤컹"(스포츠에서 다득점이 날 때 이런 표현을 자주하는 편이네요) 이란 느낌 이랄까요.
사실 단점이 확연한 만큼 장점도 확연한 장르, 상업적으로 생각해보면 적은 권수로 나올수 밖에 없고 변화가 힘들다는점이 있지만, 한 번쯤은 써볼만큼의 가치가 있는것이 먼치킨 이라는 장르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절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낄수 있는 먼치킨 소설을 다시 한 번 보고싶내요.
(글을 얘기하는데 있어 작가분들 개개인의 필력은 제외하였으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제목으로 낚시하고 사실은 추천을 받는 기막힌 수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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