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은 풍부한데 고만고만한 수준, 정답이 없다?'
프로농구 전주 KCC는 최근 몇 년간 리그 최고의 가드왕국으로 군림했다. 하승진(27·221cm)이라는 최장신 센터의 영향도 컸지만 상대적으로 포워드진이 얇아 '높이의 팀'이라고 불리기에는 2%부족했다.
오히려 장신 포워드들인 많은 팀들에 역으로 미스매치를 당하며 고전한 적이 많다. 거기에 하승진은 신체적 특성상 부상이 잦아 못 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KCC의 밸런스를 잡아준 것은 단연 가드진이었다. 최고의 공격형 가드 전태풍과 전천후 블루워커 강병현을 중심으로 임재현-신명호-정의한 등은 양과 질적으로 모자람이 없었다. 각자 개성과 플레이스타일이 달라 허재 감독은 때에 따라 3가드 시스템까지 가동하며 상대팀의 앞선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제는 실정이 달라졌다. 전태풍은 혼혈선수 3년 보유 규정에 따라 고양 오리온스로 둥지를 옮겼고 강병현 역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상무에 입대한 상태다.
핵심가드 2명이 빠진 공백은 예상보다 더 크다. 임재현-신명호는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다. 임재현은 포인트가드로서 시야가 좁고 리딩 능력이 떨어진다. 상대가 압박 수비를 들어오면 순식간에 흔들리기 일쑤다. 신명호는 수비만 특화된 탑디펜더다. 전태풍과 강병현의 버틸 땐 이들의 장점을 활용해 전력을 극대화했지만 지금은 쉽지 않다.
전태풍은 센스나 팀 전체를 조율하는 능력은 미덥지 않았으나 뛰어난 드리블 솜씨를 바탕으로 좀처럼 볼을 뺏기지 않는다. 적어도 전태풍이 코트에 있을 때는 상대팀의 수비에 공을 뺏길까봐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워낙 개인기가 좋아 수시로 더블팀을 유발해 동료들에게 빈공간을 만들어줬다.
강병현은 1~4번까지 수비하는 말도 안 되는 디펜스 능력도 출중하지만 보조 리딩이 아주 훌륭하다. 타 팀의 쟁쟁한 슈팅가드들을 통틀어도 강병현의 패싱센스나 보조리딩은 톱클래스다. 강병현과 함께 하는 포인트가드는 상대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렇듯 전태풍-강병현이 중심을 잡아주는 가운데 임재현은 자신이 잘하는 슈팅에 집중할 수 있었고 식스맨으로 체력을 비축해 더욱 악착같은 수비도 가능했다. 신명호 또한 이들과 함께 했기에 리그 최고 수비형 가드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태풍-강병현이 없는 가운데 이들만 남게 되자 상대적으로 약점이 너무 두드러지고 있다. 허재 감독은 지난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로 '한국판 아이버슨'으로 불리던 박경상을 선발한 것을 비롯해 2군리그에서 활약하던 김우람을 끌어올리는 등 가드진 강화에 애를 썼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잡힌 가드가 단 한명도 없는지라 상대진의 앞선 수비를 뚫고 안전하게 공을 운반하기조차 버거워 보인다. 가드진이 우왕좌왕 하다 보니 정상적으로 공이 돌아가는 것은 생각하기도 힘들고 그로 인해 다른 포지션 선수들조차 차분하게 플레이하기 어렵다.
허재 감독은 이러한 상황을 용병술로 타파하려하고 있다. 타이밍에 맞게 수시로 선수 교체를 하며 체력전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것, 악착같은 수비가 골자가 된 가운데 선수들 컨디션에 따라 다양한 공격 시스템 변화를 꾀하는 모습이다.
최근 있었던 2경기는 이러한 시스템의 장단점이 확연하게 드러난 경기였다. 임재현-신명호를 축으로 한 앞선 압박수비는 그런대로 효과를 거뒀지만 공격에서 자신 있게 활약할 선수가 드물어 찾아온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공 간수도 제대로 안됐고 그렇다고 찬스 때 정확하게 슛을 꽂아주는 모습도 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베테랑 임재현이 공격선두에 나서며 힘을 내고 있지만 팀플레이 없이 혼자 우겨 넣는 슛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더욱이 전체를 이끌어야 될 책임이 큰 임재현이 공격에서 무리를 하게 된다면 조직력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가드 문제는 비단 올 시즌에만 한정될 사항이 아니다. 운이 좋아 다음 시즌에 김종규라는 젊은 빅맨을 뽑더라도 가드진이 부실하면 제대로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 KCC 입장에서는 좋든 싫든 올 시즌 안에 중요 전력이 될 젊은 가드진을 육성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윈드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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