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황규영
작품명 : 천년용왕
출판사 : 동아발해
치명적인 미리니름이 존재하니, 완결권을 못 읽은 분은 백스페이스 꾹!
0.
약 한 달 전에 6권으로 완결된 <천년용왕>을, 본인은 이제사 읽을 수 있었다. 저자 '황규영'이라는 네임벨류에 혹하여 완결권까지 읽기는 했으나, 읽는 내내 거북한 느낌이 들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문피아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감상과 비평에서 볼 수 있었던 혹평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듯이.
이 <천년용왕>이라는 작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짚으며, 저자 황규영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1.
<천년용왕>의 기본적인 구도는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이 가진 힘을 숨기고 싶어하는 주인공, 주인공과 독자가 함께 악으로 규정하고 있는 반대세력, 주인공의 지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우군의 수장들. 이 기본적인 구도야말로 저자 황규영이 매너리즘에 빠졌다 말하는 가장 큰 근거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감상과 비평에서 나온 이야기니만큼 더 언급하기도 곤란하다. 이미 나온 말을 재가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2.
<천년용왕>을 쓰기 전부터, 저자 황규영의 문장은 점점 단순해지고 있었다. 다만 <천년용왕>은 그것이 극에 달했을 따름이다. 어쩌면 이후에 나올 작품의 문장은 더욱 단순해질 지도 모를 일이다.
<천년용왕>은 바로 전작인 '이것이 나의 복수다'와 비교해도 유난스러울 정도로 단문이 많이 쓰였다. 문장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주어, 목적어, 서술어로만 이루어진 이 간단한 문장은 단순한 만큼이나 속도감 있는 서술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단문의 남발은 독자를 그 속도감에 길들이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하고 이해가 빠르다는 장점은 읽는 맛을 떨어뜨린다는 단점을 함께 내포한다.
단문 위주의 서술은, 비단 읽는 맛을 떨어뜨릴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글의 수준저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물의 행동이나 심리상태의 표현이 단순해진데다, 독자로 하여금 납득할 만한 여지를 남기지 않고 서술자가 말하는 바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준에서 그치게 한다. 독자가 읽던 도중에 의문이 생겨도 해소할 길이 없으며, 저자가 말하는 바를 그대로 좇지 않고서는 이야기의 이해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는 간결한 문체가 아니라 단순한 것이다. 서술이 적은 게 아니라 부족한 것이다. 저자가 휘두르는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독자를 고르는 문장일 뿐이다. 이야기에 의문을 갖지 않는 독자를 길러내는 문장일 따름이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단정짓는 단문의 남발은 글을 건조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3.
<천년용왕>이 독자에게 아무런 감흥도 남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소설답지 않은 구성이 아닐까 여겨 본다. 발단과 전개는 있으나, 위기와 절정 없이 결말로 치닫는 구성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천년용왕>의 이야기는 주인공 허무정이 제자의 암살시도로부터 벗어난 데서 발단이며, 그가 제자의 음모와 맞닥뜨리며 천천히 분쇄해가는 이야기가 - <천년용왕>에서는 이야기의 태반에 해당되지만 - 전개가 되나, 그에게는 결국 위기와 절정의 단계 없이 모든 사건을 해결해버리는 결말이 오고 말았다. 위기라 할 만한 위기는 결국 독왕지혼을 먹는 장면 뿐인데, 이마저도 권말에서나 위기일 뿐이며 6권의 권두에서 해소되고 만다.
결과적으로, <천년용왕>은 읽는 내내 주인공 허무정에게 감탄만 하다가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위기도, 절정도, 게다가 반전 또한 존재치 않는 구성의 소설이라니. <천년용왕>은 소설의 탈은 썼으나, 실제로는 소설이 아니라 단지 길고 긴 이야기에 그치는 수준에 머물렀다.
4.
<천년용왕>은 분명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청바지에 면티같은 가벼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저자의 서문은 틀렸다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독자가 바라는 것은 '가벼운' 소설이다.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것'을 가볍다고 말할 뿐이지, 존재감 없고 허무함만 남는 '투명한' 소설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 둘을 동일시한 저자가 '가벼운' 기분으로 쓴 책은 독자가 가볍게 읽을 만한 소설이 아니다.
매번 비슷한 구도, 점점 퇴화하는 문장, 바람직하지 못한 구성, '황규영'이라는 이름에 실리는 무게가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음을 저자는 자각하고 있는가? 저자는 <천년용왕>을 향한 많은 평가가 부정적인 이유에 대해 필히 고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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