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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66 서래귀검
작성
13.08.05 18:29
조회
3,228

제목: 호설암(중국 상도라는 이름으로도 나왔다.)

저자: 고양


호설암은 상당히 골때리는 상인 소설이다. 배경은 청 말기, 제국의 모순이 쌓여 태평천국의 난이 일고 바다에는 서양의 배들이 시시탐탐 이득을 노리고 있어 외유내환으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을 때다.


이 소설이 왜 골때리냐면, 중국 특유의 강호화된 윤리의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순으로 나라가 혼란한 시기에 상도를 펼치는 주인공이라면, 무언가 시세를 초월한 윤리와 철학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호설암에는 그런거 없다. 주인공 호설암은 누구보다 강호에 적응하여 접대, 향응, 예물(뇌물), 의리, 인맥, 청탁, 리베이트를 통해 성공한다. 사실 호설암은 실제 역사상 성공한 상인으로 유명한 인물이므로 어쩔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난세에 성인군자가 성공한 예가 있다면 분명 조작이지 않겠는가.


주인공 호설암이 처음 일어설 때를 보자.


그는 한 전장의 점원으로 가난한 사람으로 보잘 것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돈을 수금하고 오다가 한 낙척서생을 본다. 그 서생의 이름은 왕유령. 서생이긴 하지만 과거 준비도 하지 않는 한량으로 오늘날로 치자면 30대 고시생이다. 하지만 왕유령에게 범상치 않은 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의 돌아가신 아버지. 그의 아버지는 관리였는데 아들을 위해 연반을 하여 작은 관직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연반이란 돈을 주고 관직을 산 것. 매관매직이지만 이 시대 청나라는 매관매직이 공식화 돼있었다. 하여튼 그래서 왕유령은 예비 관원의 신분이었다. 그런데 실재 관직을 얻기 위해서는 추가 비용이 들었다. 북경까지 가는 여비, 실결을 하기 위해 드는 수수료, 도중에 거쳐야 하는 관리들에게 줘야할 예물들 등등..그 비용이 없어 왕유령은 남경 길거리에서 차나 마시면서 죽치며 딱하게 있던 것이다.


호설암은 수금한 돈을 왕유령에게 대뜸 줘버린다. 물론 이후 왕유령은 성공하여 돌아와 호설암에게 은혜를 갚게 되고 그걸로 호설암은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마치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도운 미담 같지만, 이건 사실  ‘횡령’ 이잖아?? 자기 돈도 아닌 전장의 돈을 차용증 하나 안받고 생판 남에게 줘버린 것이다.


운하를 관리하는 중임을 맡은 왕유령이 운하청의 금고를 호설암에게 맡기고 호설암은 그 돈을 바탕으로 전장을 세운다(자기 자본은 땡전 한푼 없다). 예전에 일하던 전장에 인사를 가는데(횡령한 돈을 갚으러 가는거지만..) 중요한 고객이자 동업자가 된 호설암에게 예전 상관이 굽신거린다....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횡령범이 이렇게 당당해도 되나?? 물론 호설암은 거만하지도 거들먹거리지도 않고 조용히 예의를 차리며 돈을 갚고 산뜻하게 나오지만 그의 이런 반듯함과 깔끔함이 오히려 횡령범의 주제를 모르는 것 같아 어이가 없을 뿐이다. 이런 ‘뻔뻔함’이 사실 이 소설의 주제일지도 모른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아야 하며 어쩔 수 없이 했으면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어쨋든 호설암은 사업을 일으켰고 이제 그의 일대기가 장작 6~8권으로 펼쳐진다. 그의 사업 방식도 참으로 재미 있다. 호설암의 성공은 전적으로 왕유령의 힘이다. 호설암은 왕유령의 손과 혀가 되어 여러 일을 처리해주고 그 댓가로 특권과 이득, 정보를 얻어 사업에 성공한다. 중국의 거상은 모두 관상이라는데, 그게 어째서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왕유령의 ‘끈’으로 하계청이란 고관이 있다. 왕유령처럼 연반관리가 아닌 과거에 붙은 진퉁 관리로 왕유령의 아버지가 돈들여 교육시켜준 은혜를 받았던 인물이다. 왕유령은 여러모로 아버지 제사를 잘 지내야 할 것이다. 하계청은 같은 해에 과거에 급제한 동기들끼리 학연으로 묶여 있는데 중앙에서 여러지방의 지방관까지 두루두루 퍼져 있다. 호설암은 이 네트워크의 덕을 톡톡히 본다.


이런 네트워크의 ‘의리’에는 선악보다 니편내편이 더 중요하다. 하계청의 학연으로 황씨 고관이 있는데 왕유령의 상관이다. 이 놈은 나쁜 놈으로 처음 등장이 나름 청렴했던 전임관리를 모함해 목을 매어 죽게하면서 등장한다. 어떻게든 돈을 긁어모으고 그 돈을 위로 상납해 자기 직위를 높이는 것만 신경쓰는 전형적인 탐관오리다.


처음 황씨가 등장했을 때만해도 나는 당연한 소설의 전개를 예상했다. 호설암이 사업을 하는데 이 황씨가 욕심을 낼 것이고 그로인해 고난을 겪지만 극복해 황씨는 망하고 왕유령 호설암 콤비가 그의 세력을 빼앗는 전개가 되지 않겠는가?


호설암에는 그런거 없다. 외려 호설암은 왕유령의 하계청쪽 인맥을 동원해 황씨의 죄과를 덮는데 돕고 그로인해 끈을 만들어 인맥 네트워크를 더욱 단단히 하며 친하게 지낸다. 물론 황씨가 나쁜놈인만큼 서로 절대 마음을 터놓지도 약점을 보이지도 않긴 하지만....윤리와 도덕, 인과응보가 중요한게 아니며 검다고 적대하면 안된다는 의식이 보인다.


사실 이것이 호설암 성공의 가장 큰 이유다.

호설암의 처세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바로 ‘적을 만들지 않는 것’. 장사를 하다보면 다른 사람의 이윤을 빼앗을 수 밖에 없다. 그는 이런 경우에도 뺏기는 사람을 찾아가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주어 빼앗겼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하고 조금이라도 이윤을 나눠준다. 호설암이 장사하면서 여러 강호의 인물, 토비에서 대지주의 집사 등 온갖 종류의 사람을 만나는데 처음엔 이득을 놓고 다투다가도 결국엔 호설암에 ‘배려(상대방의 체면을 높여주는)’에 감동해 같은편이 되어 이득을 나눠먹게 된다. 


소설 호설암은 또한 강남의 화려한 접대문화를 보여준다. 소설 내용 대부분이 배위에서, 기루에서, 주점에서 음식과 술을 즐기며 도박을 하고 아편을 하며 계집질하는 내용이다. 물론 놀고먹는게 중요한게 아니다. 이것은 접대이고 향응이며, 서로의 체면을 세워주는 아첨이고 상대에게 인정을 베풀어 빚을 지게하여 신용을 트는 과정이다. 어떤 거래도 생판 남끼리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선 그들은 술과 도박과 아편을 하며 친해져 서로 형동생하게 된 후 사업 이야기를 시작한다. 호설암의 능력이 여기서 발휘되는데, 그는 접대와 향응을 즐기면서도 냉철히 이득을 따지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례를 범하지 않으며 도를 넘지 않는다.


이런 접대와 아첨도 황당한 면이 있다. 가장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아묘(?)라는 기녀이야기다. 이 기녀는 호설암과 같은 이불을 덮는 사이가 된다. 이 과정도 웃긴데, 바로 전 에피에서 호설암은 둘째부인을 들였는데, 이 때문에 조강지처 첫째와 관계가 소원해진다. 반성을 조금 하는듯 싶더니 얼마 안있어 썸씽이 생긴다 -.-;; 호설암은 당당한데, 밖을 돌아다니는 만큼 자기 시중을 들어줄 여자가 곳곳에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뭐 정 틀린 말은 아니지만 힘들었을 때부터 잡곡에 욋가지로 죽을 때어온 아내의 충정이 그저 가여울 뿐이다. 여하튼 아묘와 야릇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우연히 방문한 하계청이 아묘를 보고 마음에 들어한다. 호설암은 조금 고민하더니 바로 아묘를 하계청의 첩으로 바쳐버린다. 딱히 하계청이 아묘를 달란 것도 아니었는데, 여자 하나 소개해달라고 하자 하계청이 마음에 들어한 듯한 눈치를 보인 아묘를 바로 바친 것이다. 나중에 하계청이 망해버리는데, 아묘가 다시 호설암에게 찾아와서 같이 지내자 이게 뭐하는 것들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백록원”이란 소설이 있는데, 호설암 소설보다 조금 더 지난 시기에 화북 섬서 서안 일대의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는 한 젊은이가 소박맞은 첩을 아내로 맞는데 그 때문에 가문에서 쫓겨나 사당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같은 중국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문란함에 대한 기준이 이리 다른가.


소설 호설암에서는 중국 강호 문화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아래쪽에 리뷰를 남긴 중국강호를 보기 전에 이 소설을 먼저 봤는데, 그래서 더 이해가 잘된 것 같다. 체면과 의리를 중시하는 듯 하지만 금과 은, 즉 이득을 최우선시 하는 자본주의적 탐욕이 실은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점.


호설암의 은인이며 지기, 형제보다 더욱 친근한 왕유령이 태평천국군 때문에 죽게 된다. 왕유령을 위해 먼길을 배를 타고 군량미를 실어왔던 호설암은 지독히 슬퍼한다. 하지만 호설암은 나중에 태평천국군이 망하자 돈을 들고 도망친 그 잔당들에게 익명으로 계좌를 만들어 재산을 보전해주는 사업을 구상한다. 이때 나누는 대화가 일품이다.


부하가 반군의 재산을 맡아주는 것은 부정한 것 아닌가 묻는다. 이에 호설암은 상인의 양심과 신용은 고객과의 사이에 생기는 것이지 나라와의 사이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말한다. 법만 준수한다면 나라에 최선은 다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반군의 이름이 아닌, 가명으로 계좌를 만들게 종용하라는 것을 은밀히 암시하며 말한다. 참 기가 막히는데 바로 전 권에서 이 반군 때문에 목매달아 죽은 왕유령에게 통곡하던 사람이 맞나 싶다.


여하튼 호설암은 이런 소설이다. 실제 강호가 있다면 아마 호설암에 묘사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을까. 술과 음식, 아편과 계집을 대접하며 호형호제하고 사업얘기를 나누며, 호령은 관리가 내지를 지라도 강호의 상인, 아역, 거간꾼, 사대부 등의 지방유지가 실제 일을 처리하며, 일보일보 움직이는 데도 붉은 봉투에 돈을 넣어 문지기에게 넣어주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 의리와 체면을 목숨처럼 여기지만 실은 결국 돈이 가장 중요한 사회, 아마 이런 사회가 강호였을 듯 싶다.


Comment ' 4

  • 작성자
    Lv.11 레듀미안
    작성일
    13.08.05 22:21
    No. 1

    도서관 한편에서 뽀얗게 먼지가 쌓여있던 작품이군요.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으나 언뜻 손이 가지 않아 읽지 않았는데
    서래님 덕분에 알고 가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1 배화밀교
    작성일
    13.08.10 13:34
    No. 2

    진정한 강호인의 의리가 느껴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8 독자에요
    작성일
    13.08.10 22:48
    No. 3

    호설암이라는 이름을 보고 중국상도라고 했을대 발끈하게 되더군요. 상道가 아니라 상盜죠. 재물은 바르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이런게 상도 아닌가요.. 중국계열 상인영화나 소설은 도적이나 무술가 밖에 없더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구스타프
    작성일
    13.08.15 20:24
    No. 4

    고양과 이월하를 혼동했네요. 글 느낌이 난 비슷하게 느껴져서....

    호설암은 굉장히 좋은 글입니다.중국소설이고 시대가 청말이라는걸 감안하고 봐야합니다. 정서와 문화가 다르니까요. 작품은 청말의 사실성에 접근해서 내용을 풀어갑니다.이 글만으로도 청말의 시대 상황을 볼수가 있습니다.청말에 관리들의 습성과 권력구도..그리고 권력싸움등등..그리고 당연히 대상인은 이런 권력자와의 밀착이 관건이죠.

    굉장히 볼만합니다. 현대의 한국의 오늘날도 호설암과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 치열하니...오늘날에도 조직사회는 어떤곳이던지 위로 가기 위해선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맥과 처세가 뒤따라야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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