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장경
작품명 : 철산호
출판사 : 로크미디어
장경은 작가다.
연일 범람하는 지뢰의 홍수에 지쳐버린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물론 기존 작품들로 장경을 알고 있을 팬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테지만...
장경의 전작들에 빠져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철산호'에서 전작들과 다른 맛이 난다고 느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가벼움'을 느끼고 투덜거리기도 할 것이고... 하지만 내가 느낀 '철산호'의 맛은 '자유로움'이다. 곽검영(앞으로는 귀호라고 칭해야겠다. 왠지 간지럽다. >.<)의 행보는 단여원(이것도 왠지 간지럽다. 아가씨라고 해야하나...)에 매여있는 듯 하면서도, 자유롭다. 귀호는 논다. 밑바닥에서 시작했던 그의 인생이었기에 더 자유롭게 논다.
'철산호'에서 귀호의 가장 큰 힘은 그 노닐던 과거의 행적에 기인하여 얻었던 인연들이다. 그 인연들이 기연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연이었기에 독자들은 더욱 훈훈한 마음으로 귀호의 보보에 눈을, 마음을 기울일 수 밖에 없을 터.
철산호의 협은 곽정의 '위국위민 협지대자'와는 완연히 다르다. 아무리 좋게 치장해도 녹림의 총표파자는 십만흑도의 우두머리에 지나지 않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호가 미워지지 않는 것은 그의 대립각이 정파의 위선자들이기 때문일까? 명초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원말 기승을 떨었던 한간들의 후예가 정파의 위선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마침 어제 오늘 뉴스에 계속 흘러나오는 우리의 이슈들과 겹쳐보여 의미심장하다. 물론 그의 인간적인 면도 빼놓을 수는 없을테고.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장경의 문장은 근래의 양산형지뢰들과는 판이하다. 그의 유려한, 여유있는 문장들이 1인칭무협이라는 장경의 위험한 시도를 성공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사이사이 적절한 한시의 구사도 빼어나고, 군데군데 보이는 작가의 경험과 위트가 그 필력 속에서 훌륭히 흐르고 있다.
4권쯤에선가 통천방주의 아들인 황이화와 술을 마시던 부분이었다. 소방주이자 사형으로 불렀던 황이화의 천성적인 유약함에 대해 한마디 하려던 귀호는 그 말을 하지 못한다. 사람이 자신을 바꾼다는 것은 사판승이 이판승이 되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에... 휴우~ 우리말을 이 정도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장경이야말로 진짜 작가다.
5권에는 또 이런 표현이 있다. 사람은 원숭이에서 출발했기에 결국 '정치는 조삼모사요, 인간관계는 표리부동이요, 정의는 힘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떠돌았던 조삼모사 유머를 생각해보니 장경의 힘이 한층 더 잘 느껴진다.
부끄럽게도 최근 나오는 소설들을 읽으면서 오타에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눈에 띄는 순간 머릿속에서 자동치환장치가 작동해 표준말로 전환하거나, 맞춤법 조정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철산호 5권을 보면서 화가 조금 났다. 66페이지던가 왼쪽 상단 두번째 문단쯤에 나오는 '심검회'때문이었다. 너무 아쉬워서 그 페이지에서 5분쯤 맴돌았다. 왜일까?
또 한가지 아쉬운 건, 드디어 발톱을 세운 귀호의 행보에 뿌듯해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볼 때의 일이다. '마지막권으로 이어집니다.'
오호애재라~! 아직 두어권은 더 필요하겠다 싶었건만... 바라건대 귀호다운 마무리를 짓기를...
대산으로 갑옷을 삼고, 대하로 장검을 삼아, 사자후로 만인의 심장을 울릴 귀호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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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좋은 무협을 봤기에 추천해드리고 싶어 처음으로 감상문을 올려봅니다. 손톱이 길어 타이핑이 어려워 말이 짧아졌으니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먼산~)
이하작가의 괴협과 함께 올 상반기 나의 베스트 무협에 등재하였습니다. 지하철에서 신나게 읽고 있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멍하니 상상했더랍니다. 쟁천구패의 '우쟁천'과 장강수로채의 '곽무한'이 같은 배경에 등장해서 세상을 말아먹으면 어떨까 하고... 괜시리 속이 시원해지면서 웃음이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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