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삭월(朔月)
작품명 : 투명가면
출판사 : 문피아연재중이십니다.
흐룬팅. 온새미로. 산신
참 예쁜 단어가 나옵니다. 참 독특하면서도 고운 단어가 나오지요.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작가님이 참 공을 들이셨구나. 곰들여서 열심히 쓴 소설이구나, 하고요.
투명가면의 세계관은 무척 매력적입니다. 산신이라거나, 하늘신이라거나. 기존의 D&D류의 설정을 따르지않고, 독창적인 세계관을 만드셨지요. 또한, 삭월님 특유의 맛깔스런 문체와 어울려서, 예스럽고도 한국적인 단어들이 더욱 돋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글의 처음 시작 부분의 흐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딘가 알 수 없는 원시시대를 되돌아보는 듯한 흐름이 마음에 들었지요. 예전에 읽었던 소설 [원시시대의 여인-아일라]를 읽는 기분이었을까요. 글에서 작가님의 성의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중반부터는 이 글에 영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중간 내용]이 잘려간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온새미로의 감정에 동조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조금 멍한 기분으로 따라가게 되었던 거죠.
온새미로는 여자문제에는 미숙하면서도 또 성욕은 있고. 말은 툭툭 내던지지만 은근히 다정하고. 의리가 있으면서도 또 능글능글한데가 있는 그런 남자입니다. 그리고 온새미로에게는, 그를 좋아하는 두 여자가 있지요. 독특한 말투가 참 귀여운 엘-미르, 왠만한 사냥꾼 뺨치는 차야가 바로 그 여인들입니다.
두 여인은 온새미로를 사이에 두고 다툴 만도 하건만, 또 의외로 죽이 맞습니다. 이유를 추측해 보건데, 온새미로가 두 여인중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친구처럼 그렇게 지냈기 때문에 두 여인도 그게 가능할 법도 싶습니다. 또한, 원시 부족들의 경우를 생각해봐도 첫째부인이나 둘째 부인이 싸우지 않고 그냥저냥 서로 유대 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이해가 갔지요. 사실 둘이 질투하면서 남자를 들들 볶는 것보다 서로 의지해가면서 알콩달콩 사는 게 참 보기 좋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까지 얘기해보면 다 좋은데. 왜 제가 중반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을까요. 사실 그건, 요 매력적인 세 명의 인물들이 범인입니다. 차야는 온새미로를 좋아했습니다. 겉으론 흥흥 거려도 그런내색을 보였지요. 온새미로도 모르는 척 했지만 알고 있었고요. 엘 미르도 온새미로랑 여관가니까 몸을 배배 비트는게 속마음 딱 나옵니다. 그렇지요. 서로 좋아한대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서 그런걸까요. 잘 지내고 싸우지도 않던 어느날, 굉장히 느닷없이 두 여자는 다른 사람과 맺어집니다. 온새미로. 친절하지만 넌 남자로 안 보여. 대충 이런 요지의 발언. 여자든 남자든 이건 좀 놀라운데요. 일단 저는 여기서 뭔 사정이 있는건가 머리를데굴데굴 굴렸는데 그다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각기 남편감이라는 그 남자들도 등장한지 1-2회 밖에 지나지 않았고, [얘네 누구야] 상태였기 때문에 더더욱 황당했습니다. 온새미로가 두 여자랑 흩어지게 된 과정. 두 남자와의 알력관계. 이런 것들이 서술로 꽤나 재빠르게 지나갔기 때문에 저는 더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잘 짜여진 이후의 내용에도 슬프다거나 감동적이다거나 하는 느낌이 한결 줄어든 것 같습니다. 미리니름이 될 것 같아 생략합니다만, 투명가면의 뒷 이야기는 상당히 매력적일뿐더러, 뒷통수 치는 반전까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요 얘기 생각하느라 플롯 이리짜고 저리짜고 하셨을 것 같은데.
중간 과정이 빠진 채로는, 이 소설은 마치 뭐랄까요. 전반부가 후반부를 빨리 쓰기 위해서 버려진 기분마저 듭니다. 난 엘-미르가 좋은데. 난 차야가 좋은데. 셋이 관계를 형성해나가고 더 친해지고 그리고 배반하는 모습을 쫓아가고 싶은데. 작가님의 호흡이 너무 빠른 나머지, 독자는 헉헉거리기 시작합니다. 왜 그러지. 다정했던 엘 미르가 왜 저러지. 차야 왜 저러지. 온새미로 왜 저래. 그러기 시작하면 감동이 줄어드는 거죠.
공들인 전투 장면 또한 이 소설의 볼 거리입니다만. 전투 장면을 쓰느라, 이 인물은 왜 이 행동을 하는 거고 저 인물은 왜 저리 승질을 내는거고. 한 렉차는 뭘 삶아먹었길래 저리도 악독하게 구는 건지. 설명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전투 장면이 많이 나오는 소설에서는 인물이 소외되는 경우가 있는데. 전투가 주가 되는 소설이라도 전투를 하는 것은 인물이며 그 인물이 당위성을 갖지 않는 한 공들인 전투가 의미를 잃어버리겠지요.
투명가면의 주체. 온새미로. 그가 짐승인 자신과 사람인 자신 사이에서 고뇌하고 또 괴로워하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그가 너무 좌충우돌 헤매느라 소설조차 방향을 잃고 잠시 헤맸던 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물론 뒷 작품인 강철사자가 있는 만큼, 걸 수 없는 딴지입니다만. 저는 엘 미르가 참 마음에 들었는데. 후반에 가면 엘 미르는 다른 남자랑 잘 살았고 이상하게 변했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아서 좀 섭섭했습니다. 왜냐하면 전 엘 미르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거든요. 예쁜 엘 미르. 말투가 귀여운 엘 미르. 역시 남자는 필요없다. 차야랑 둘이 살지. 이건 농담이고요.
개인적으로 삭월님의 문체나 글풍은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짧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 생생한 묘사까지. 그래요. 삭월님의 글은 독자를 빨려들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더구나 자연스럽게 소설 내의 <독특한> 설정을 설명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소설에 녹아들게 하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지요.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한 소설중에, 그러한 능력이 없어서 전체적으로 뻑뻑한 느낌을 주는 소설도 많은데 말이죠. 게다가 투명 가면 자체의 내용도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아무래도 <중간>이 빠져서 독자를 벙벙하게 만드신 것은, 삭월님이 하고 싶은 얘기가 산처럼 쌓여있는데, 진도는 안나가고 깝깝해서 그러셨던 건 아닐지. 사실 저도 자주 그런 충동을 느낍니다. 아으. 나 이 얘기하고 싶은 거 아닌데. 초반 중반 다 잘라버리고 내가 쓰고싶은 것만 쓰면 안되나. 그런데 그러면 독자님들은 우왕좌왕 헤매시지요. 결국 <초반>과 <중반>이라는 것은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결론, <우왕 나 이거 꼭 말하고 싶었어!>로 안내하는 이정표 같은 것이니까요.
살짝 궁금했던 건, 흐룬팅은 원시시대의 향기가 나고. 후반에 나오는 그 대악마 부대는 아무래도 중세시대 정도는 되야 나올 수 있는 단체 같던데. 흐룬팅은 인간이 깃들지 않은 정령의 땅이라 문명도 발달하지 않았던 건가요? 이건 그냥 제 사소한 의문입니다.
너무나 매력적인 이야기. 매력적인 주인공들이었지만. 중간에 허리를 뚝 끊긴 기분이라 상당히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재미있게 읽어서 그런걸까요. 아니면 제가 좋아하는 엘 미르랑 차야가 비중이 없다고 심술을 부리는 걸까요. 하하.
그렇다하더라도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감상할 수 있는 권리, 말하자면 작가님의 <금쪽같은 아기>를 감히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일단은 완결이 난 투명가면의 첫 번째 이야기 <투명가면>만 감상해보았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인 강철사자는 제가 쭉 읽다가, 이 다음에라도 감상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부족한 흰새에게 감상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읽으면서 즐거웠습니다.
흰새가 당신의 창가에
글을 내려놓고 날아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시기를.
늘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건필하세요.
+) 제가 감상글을 올리는 순서는, 접수순입니다. 접수순이라니 무슨 공공기관 삘이 나지만. 여튼 그렇다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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