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진영수
작품명 : 대검의 암살자
출판사 : 뿔미디어
일전에 정담과 비평란에서 호되게 질타를 받았던 대검의 암살자 1권을 읽어봤습니다.
기초가 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이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 소설을 제 비평으로 처음 접하시는 분들을 위해 아주 간략하게 추리자면, 사람을 29명이나 죽인 "전과 13범"의 희대의 살인마가 탈옥을 하고 서울을 배회하다가 우연히 부딪친 사람과 시비가 붙어 칼로 찔러 죽인 뒤 대 탈주극 끝에 검거. 특별법에 의거해 그 자리에서 법원으로 소환되어 교화 10년형을 선고받고 오직 그만을 위해서 지어진 호화 저택에 갇혀 가상현실게임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참고로 그 저택에는 런닝 머신 등의 운동기구와 TV가 있고, 푹신한 침대와 맛있는(-_-) 식사가 배급됩니다.
많은 분들이 '살인마'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상당부분 미화하고, 게임의 동기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되는 제반 설정을 내세우고 있다고 말씀하시고 정작 게임 내적인 비평이 몇 개 없는 것을 보고 저라도 가급적이면 게임 자체를 보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않더군요.
사실 전 게임소설에서 동기 부분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즐기기 위한 엔터테인먼트를 굳이 이유를 대고 개연성에 맞춰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왕 동기가 나왔다면 그것은 반드시 확실해야 합니다. 그 동기가 주인공의 심리와 액션에 명확한 피드백을 주고, 또 그것이 복선이 되거나 스토리에 관여하기도 하면서 유동적으로 흘러가야 합니다.(제가 게임판타지를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확신은 못하겠지만 저는 이 부분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포란처럼 오프라인에 대한 부분은 일절 언급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헌데, 대검의 암살자에는 그런 게 없더군요. 주인공 류현상의 동기는 단지 그가 게임을 하는 이유에서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기부분에 할애되는 지면이 40페이지가 넘습니다. 잉여지면이죠. 그런데 그 잉여지면조차 이미 반 이상 모순과 헛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른 비평글을 통해 대부분 드러나 있으니 따로 적지 않겠습니다.
대분류에 앞서 작법에 관한 몇 가지 지적을 하고 넘어가야겠군요.
ㄱ. 단어 남발.
초반부 20페이지까지 [희대의 살인마]라는 표현이 다섯 번 나옵니다. 표현이 처음 나오는 10페이지 두 번째 줄 '그가 죽인 사람의 숫자는 자그마치 30명. 정말 희대의 살인마가 아닐 수 없었다.'를 끝으로 더 이상 안 나와도 되는 이 표현을 얼마나 강조하고 싶었으면 두 번, 세 번, 페이지를 넘기고 인물들이 주인공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예외없이 다시 나옵니다. 앞서 20페이지에 다섯 번이라고 했지만 그건 세기가 귀찮아서 중간에 그만둔 거지, 넘기다보면 더 나옵니다. 아마 열 번 이상 나왔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그 극단적인 표현을 하도 반복해서 듣다 보니 '이 사람이 장난하나?'라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또한,
단어는 아니지만 "~시작했다."는 표현이 엄청나게 자주 쓰입니다.
205페이지에서만 세 번이 나오네요. 주인공 류현상이 무슨 일을 하거나 볼 때마다 '보이기 시작했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화를 시작했다'...
...장난하는 거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ㄴ. 대화체.
이 부분은 직접 읽어보신 분이라면 아실 테지만, 주인공 류현상의 말투는 고어체입니다. 특별히 고전적인 사상을 가진 것도 아니고 행동이 어른스러운 것도 아니며 깊이 고찰하는 타입도 아닙니다. 그런데 말투만은 고어체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작가가 강호순 유영철에 감명을 받고 연쇄살인에 환상을 품은 게 아니냐.. 고 하시는데 제 생각엔 왠지 타입문의 나나야 시키 쪽에 끌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좀 심하다 싶을 만큼 겉멋에 취해 꼴사나운 대사를 남발합니다. 경찰이나 변호사가 뭔가 있어 보이는 척 잘난 말투 쓰는 건 젖혀두고 류현상 하나만 봐도 설정이 삑사리가 난 게 보입니다. 그리고 저에겐 왠지 그 대사들을 쓰면서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했을 작가의 미소마저 보이는 듯하더군요.;;
ㄷ. 문체.
이건 단시간에 고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지만, 작가의 나이가 어린 만큼 습작 경력이 부족하여 미숙하다는 것이 늘어지는 문체를 보면 티가 납니다. 묘사도 전혀 없고, 충분히 간단한 단어로 치환할 수 있는 부분에서조차 전문용어를 남발하는 폼이 마치 나스체를 떠올리게 합니다.(제 비평글도 떠오르시는 분.. 착각이십니다.) 그게 제가 타입문을 연상한 이유이기도 하구요.
뭐 문체야 호불호가 갈리는 문제이고, 개의치 않는 분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 부분이니 길게 적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민감한 분들이 보시기엔 굉장히 짜증나고 답답한 문체입니다. 마치 유식해 보이기 위해 열심히 문자를 읊지만 오히려 무식이 탄로나는 느낌? 제가 보기엔 낯간지러울 정도였는데,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앞서 공작아들 비평글에도 언급했었던 '서사적인 미래완료형 문장' 역시 간결하게 몇 번인가 나오는데, 웅장하다는 느낌은커녕 가소롭다는 생각만 들더군요. 이야기 진행이나 하라고 등 떠밀어주고 싶은 느낌?
이제 초기에 의도했던 게임 내적인 비평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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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딱히 할 게 없네요.
몰입이 안됩니다. 유머도 없고, 개그도 없고, 센스도 없고, 유저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없고 그냥 퀘스트만 깨러 다닙니다. 그런데 도중에 드러나는 게임 구조가 그야말로 양판소에요. 보스몹인 고블린 킹은 인공지능이라는 생각이 안 들 만큼 저질스러운 삼류대사나 읊고 있고, NPC 노인이라는(이름도 안나오고 그냥 노인입니다.)
사람은 주인공과 말투가 똑같습니다.
마침 펼쳐진 229페이지의 대화를 한 번 옮겨서 써볼까요.
[그대가 바로 나의 가르침을 받으러 온 자인가?]
"전직이 가르침이 맞다면, 나는 그대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온 것이 맞다."
[말이 이상하군. 하지만 그대가 가르침을 받으러 온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 같군. 그대는 잘 모르고 있겠지만 나는 허울뿐인 제자는 받지 않는다. 엄선된 자들만이 나의 제자가 될 수 있지.]
"그 말은 즉 그대가 강하다는 소리로군. 나를 실망시키지 말도록."
...뭐 대충 이렇습니다. 서로를 그대라고 부르며 똑같은 말투로 대화를 나누는 유저와 NPC. 상황을 놓고 보면 아주 재밌습니다. 웃음이 안 나온다는 게 문제지만요.
운영자들은 주인공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응원이나 하고 있고, 이런 게임을 좋다고 플레이할 유저가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게임이 재미가 없습니다. 하아...... 게다가 주인공이 목을 메는 무기는 표창과 수리검.. 작가 나이대의 학생들이 열광하는 한 애니메이션이 생각나지요. 대검을 쓰는 건 260페이지에서부터인데, 대검의 암살자로 전직하고 난 뒤입니다.
그리고 272페이지에서부터 273, 274페이지에 걸쳐 스킬창이 뜨는데, 스킬 이름이 참마격, 광격화, 비영승보 같은 무협 스킬입니다. 세계는 분명 오크와 고블린이 공생하는 판타지세계인데 말이죠.;;
게임이니까 아무렴 어때.. 라고 한다면 지금의 저는 몹시 화가 나 있으므로 받아버리겠습니다.
...........더 이상 쓰는 것도 지치네요. 줄일랍니다. 조금이라도 재미를 느끼며 읽은 책이라면 잔뜩 흥분해서 열심히 타자를 두드렸을 텐데, 이 소설은 정말 재미없습니다. 아닌말이 아니라 재미를 느낄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내가 써도 이것보단 잘쓰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_-;; 비평이라 함은 응당 장단점을 나누어서 논하는 것이 맞겠지만 이 소설엔 장점이 없습니다. 있다면 주인공이 연쇄 살인마라는 것 정도? 딱 한 번 시선을 끌 정도의 자극적인 소재. 그러나 그뿐으로, 유일한 장점마저 제대로 살리지 못했으니 2권을 읽을 가치가 없어졌습니다. 사서 볼까 빌려서 볼까 망설이다가 후자를 택한 제가 대견스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아~)
가능하면 일반적인 비평보다 다른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했지만..
내용은 다른 비평과 다르지 않은 혹평이 된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어제 전륜마도를 읽고 살짝 호감이었던 뿔미디어가 대검의 암살자로 근사하게 자폭을 해주셔서..
역시 파피루스와 드림북스가 더 좋아졌어요.
PS. 쓰고 나니 대분류를 아예 안해버렸네요.. 깜박했습니다.;
PS2. 매니아! 님께 비평 쓴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겁니다. 잔인한 매니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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