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비평란

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매창소월, 그 아름다운 공명.

작성자
Lv.6 박상준1
작성
09.04.28 00:39
조회
3,050

작가명 : MIRO

작품명 : 매창소월

출판사 : 정규연재

원고를 보내고 나니 또 허하다. 다음 글은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고, 이미 세 번 읽은 전 글은 지겹다. 나쁜 버릇이다. 책이 나오면 거들떠도 안 본다. 이상하게 보기가 싫다. 혹시 제본이라도 잘못 된 게 없나 어쩌다 휘리릭 넘기면 꼭 눈에 띄는 오탈자나 잘못 쓴 한자나 문장이 있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한 번 더 봤어야 하는 건데. 그러면서도 또 마찬가지이다. 세 번 이상은 더 못 본다. 다시 보기가 싫어진다. 그 한 동안이, 그러니까 원고를 넘기고 다음 글을 쓰기 시작할 그 동안이 참 고역이다. 나쁜 버릇이다.  

글을 쓰면서 새벽에 잠이 없어진지 오래다. 오늘은 푹 자야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몽유병 환자마냥 눈이 떠져 결국 또 불을 켜고 컴퓨터 스위치를 누르고 커피를 내린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

‘독일이데올로기’를 꺼내들었다. 보려고 꺼낸 것이 아니라 눈에 띄어서 꺼냈다. 이 책을 언제 사서 읽고 책장에 꽂았나 싶다. 88년에 발간된 책이니 20년이 지났다. 20년 동안 책장구석에 내내 있다가, 어느 잠 안 오는 밤, 우연히 뽑힌 것이다. 이걸 가방에 넣고 다니다 덜컥 불심검문이라도 당하면 당장 경찰서에 끌려가 전과조회를 당하고 운 나쁘면 따귀 몇 대 얻어맞고 너 그때 거기 있었지 하면서 사진을 수북이 들고 와서 얼굴을 찾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즈음에 사거나 구한 책들은 쉽게 버리지 못하고 이삿짐 쌀 때 눈총을 받는다. 소유 자체가 범법행위였으니 그 때 그 스릴이 책을 버리지 못하게 하나보다. 우스운 시절이다. 출판을 하고 서점에서 돈 받고 파는데, 사서 가방에 가지고 있다가 잘못하면 곤욕을 치른다.

이렇게 흰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이렇게 하면 겸연쩍음이 좀 덜어질까 싶어서다. 비평은 문학의 한 장르를 차지하고 있는 창작이다. 그런데 비평은 해독을 그 질료로 한다. 해독은 당연히 완독을 전제로 한다. 완결되지 않은 작품에 대해 비평을 하는 이 얼토당토않은 짓에 대한 변명이다. 전 글과 다음 글 사이의 곤혹스러움을 달래려고 쓰는 이 글에 대한 옹색한 변명과 함께 작가에게 사과를 하려니 영 겸연쩍어서 객쩍은 너스레가 늘었다. 그나마 긴 연재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아서, 그래도 이 정도면 하고 어물쩍 넘어가본다.

독일이데올로기 이야기를 꺼낸 것은 들뢰즈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철학자의 철학자라고 까지 불리는 지성, 들뢰즈의 욕망론은 이 맑스의 초기저작 독일이데올로기에 닿아있다.* 맑스는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이 살아 있어야만 한다”고 언급하면서, “역사행위란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 물질적 생활 자체의 생산”이라고 말한다. 맑스가 욕구충족을 위한 역사적 행위로 본 노동은 “포이에르바헤에 관한 테제”에서 ‘감성적 행위, 즉 실천’이라고 밝힌다. 들뢰즈는 욕망 축족의 노동에서 욕망의 가치를 정초한다. 맑스가 경철수고에서 말하는 유(類)적 본성으로서의 인간회복에서 들뢰즈가 나아간다. 들뢰즈는 여기에서 프로레타리아트의 조국, 억압기제로서의 국가, 유기체론의 신체를 극복하며 ‘기관 없는 신체’로 구조를 정초한다. 해방 주체-감각적 실천 행위는 현재적, 잠재적 상태를 동시에 의미한다―로서 세계를 떠도는, ‘노마드’로서의, ‘기관 없는 신체’를 사유한다.

매창소월을 읽게 된 것은, 그저 눈에 띄기에 꺼낸 든 독일이데올로기만큼이나, 생뚱맞다. 좌측 메뉴에 쭉 나열돼 연재작 제목 중에서 눈에 띄기에 그냥 클릭을 했다. 그런데 매창소월(梅窓素月)을 매창소월(梅槍掃月)로 지레 짐작하고 눌렀으니 참 우악스럽고 무지막지한 폭거가 아닐 수 없다. ‘매화 그림자가 어린 창에 비친 흰 달’이라는 이 아름다운 제목을 ‘매화나무로 만든 창으로 달을 쓸 듯이 전개하는 초식’ 쯤으로 마음대로 해석해 버렸으니. 미안한 마음 가득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목처럼 아름다운 글이 아닐 수 없었다.

  

“서녘으로 반쯤 이운 보름달을 향해 유란은 본디 날기 위해 태어난 족속인양 가벼이 뛰어 올랐다. 무릎 바로 아래쯤 하얗게 중대님 끈을 싸맨 두 다리가 희미의 시야 저편을 채웠다가 이내 달빛을 받아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옷자락이, 사박사박 내리는 눈 마냥 넘실거렸다.”

“희미는 가만히 치맛자락을 잡아 당겨 외씨 같은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 걷어 올렸던 주렴이 차랑차랑 소리를 내며 희미의 등 뒤로 흘렀다.”

도처에서 이런 탐미의 향연들을 발견할 수 있다. 모국어를 얼마나 잘 갈고 닦았는지 감탄을 하게 된다. 마치 영랑의 시를 소리 내어 읽은 것 같다. 감각적이다. 보고 듣는 게 즐겁고 만지고 싶어진다. 욕심이 있다면, 한껏 숨을 들이쉬고 냄새를 맡게도 해주었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구슬 하나에도 세공의 정성이 가득하지만 그 구슬을 얼마나 잘 꿰었는지 새삼 또 감탄하게 된다.

  "...... 흔한 시종 하나 쓸 때에도 예순 가지를 눈여기는데, 조널이 정할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니?"라거나,

"춘삼월 호시절이라 여유자적 거닐다 사월이면 꽃 질까 마음도 버적버적 졸여보고 깐깐오월 생일 손꼽으며 성년이라고 관이나 좀 쓰겠지요. 그러면 뭐 있습니까? 미끈미끈 어정어정 건들건들 유월, 칠월, 팔월 지나면 구시월 세단풍이란 말 아까워할 새도 없이 금세 겨울을 맞을 테지요."  

이런 식의 대화 하나에서 그 세공된 구슬이 얼마나 잘 엮였는지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나무는 ‘이다.’라는 동사를 부여하지만 리좀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라는 접속사를 조직으로 갖는다. 이 접속사 안에는 ‘이다.’라는 동사를 뒤흔들고 뿌리 뽑기에 충분한 힘이 있다."

저자는 매창소월의 서사를 통사적으로 이어가지 않는다. 사건을 비틀고 시간을 분절시킨다. 이런 식의 글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이내 짜증을 내거나 싫증을 낼 우려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아득한 분절의 ‘운동’과 ‘시간’에서 적잖은 희열을 맛보았다. 여기에서 리좀을 생각했다면 들뤼즈와 가리타를 오독한 것일까.

들뢰즈와 가리타가 정초한 개념인 리좀은 어느 한 지점에서 끊어지거나  부서지더라도 예전의 선들 중의 하나나 또는 새로운 선들 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모든 리좀은 층을 만들고, 영토를 만들고, 의미작용을 수행하는 '나누는 선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또한 끊임없이 달아나는 탈영토화의 선들도 포함하고 있다. 나누는 선들이 탈주하고 파열할 때마다 리좀 안에는 단절(rupture)이 있게 된다. 하지만 탈주하는 선 역시 리좀의 일부이다.

아마 그것은 나무의 뿌리줄기를 찾아가는 내 글쓰기를 반추하는 부러움과 시샘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들뢰즈의 노마드는 변용적 욕망의 가지를 정초하지만 나는 반대로 n-1의 수평적 다양성이 아니라 1의 수직적 원류를 찾아가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땀 흘리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라고 외치는 촌스러운 구호에 나의 글쓰기는 닿아있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지점이 바로 -맑스보다 수 세기를 앞선, 스피노자의 유기체, 즉 좀 더 나무가 건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확실히 이것은 나의 불만을 기초로 한다.

‘협’라는 이데올로기의 뿌리는 보통 묵자에서 찾는다. 펑유란도 루쉰도 본말의 차이이지 그 접속에서는 같은 의견을 보인다. 당대에 가장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묵자에 접속한 ‘협’은 ‘무협’ 속에서 그 내재적인 모든 가치를 사상시켜 버리고 오직 그럴듯한 이름 하나만을 취하고 있다. 한비가 국가 질서를 파괴하는, 법체계를 위협하는 그들에 대하여 혐오를 나타냈지만, 누구도 거기에 대해 반론을 하지 않는다.(김용이나, 좌백 정도가 그런 것이 있다는 피력 정도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묵자도 한비도 모두 극복되고, 왕도정치라는 유교만 번성했지만, 협은 이름 하나로만 (소설을 통해) 살아남았다. 관과 무림은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는 괴이한 언명 하나로 모든 것을 비켜가며, 또 다른 뒤틀린 권력을 만들어낸다. 우스운 이야기다. 거기에 한국 무협은 훨씬 더 탈영토성을 보인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어떤 작품에서도 그 이행이나 과정에 대한 양해나 이해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매창소월은 창룡국이라는 장치를 만들어 냈다. 동아시아 어디쯤인가 있었을 법한 환상의 시공간이다. 동아시아라고 추측하는 것은 글 곳곳에 등장하는 기재들에서 나타지만, 극명하게 "무릇 수신제가한 다음에야 치국도 하고 평천하도 하는 법" 같은 말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농경사회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앞서 말한 대화 중 '깐깐오월', '미끈유월', '어정칠월' 같은 것은 모두 농사와 관련있는 달(月)에 대한 말들이다.

유교가 지배 이데올로기인 한 국가에서 과시를 통해 출세하려는 한 남자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여동생을 궁에 의탁하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딸 대신, 용의 재물로 바치려는 한 가장의 모사가 숨어 있다. 건국 신화가 신화로 존재하지 않고 날 것인 채로 삶의 언저리에 남아 있는 셈이다. 그것도 기우제 같은 형태가 아니라, ‘야만적’인 형태로.

또한, 산신에게 소녀를 바치려는 한 마을의 행태는 그것을 추론하는데 무리가 없다. 여기서 소녀는 사람들의 집단 야만에 희생되는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 자발성으로 그 신화에 기꺼이 자신을 동일시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애써 신선초라는 문명의 힘으로 그 동화를 깬 소녀의 남자는 오히려 공격을 당한다. 결국 소녀는 황홀한 죽음으로 신화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리고, 사내는 신화를 되돌리는데 ‘실패한’ 상처뿐인 문명에 남게 된다.    

“끝없이 연초를 태워 온 방안을 너구리굴로 만드는” 무리가 있는 것을 봐서는, 담배가 사회적으로 적잖이 보급된 시기 같다. 콜롬버스가 서인도제도로부터 유럽으로 전한 담배가 동아시아에 전래된 게 대충 16세기 정도는 될 테니, 매창소월의 창룡국은 그 이후쯤 될 것 같다. 그러나 문명과 야만이 공존, 혼재되어 있는 이 창룡국에 문명사의 잣대를 가져다 대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몰락한 영웅가의 후손에게 사람들은 계속 강요와 주문을 한다. 가문의 재건이라는 성스러운 임무를 강요하고, 영웅의 부활이라는 향수를 주문한다. “이리도 허망하게 청사에서 사라진다면 저승에서 통곡할 선대를 어찌 뵈오랴.”하는 탄식에 그러나 유란은 “통곡해도 내 선대가 통곡하지 당신들의 선대가 통곡하는 것도 아니지 않아?” 하고 조소할 뿐이다. 유란에게 그것은 쓸데없는 지긋지긋하고 귀찮기 만한 각다귀일 뿐이다.

무림, 특히 전배(前輩)는 ‘이다’를 강요하는 뿌리나무이다. 유란은 이미 영토에서 탈주하는 선이다. 그에게는 “본 것이 없으니 꿈꾸는 것도 없었으며 겪은 것이 없으니 바라는 것도 없을” 뿐이다. 이것은 앙띠 오이디프스가 아니다. 유란에게 소거할 오이디프스는 애초부터 부재였던 것이다. 이 부재는 혈허(血虛)와 그리고 라는 접속사로 ‘접속’, ‘배치’ 된다. 그러나 그것이 그저 습관성 빈혈인지 부존재의 존재를 의미하는 지는 좀 더 읽어 볼 일이다. <“단박에 살해당하듯 거룩하게 추락하는 그 꽃....... 동백. 목 잘렸던 자리에서 천연스레 피었다. 마치 새것인양.” >

역시, "나비가 되어 준다고 내게 말해다오. 여기에 다시는 꽃이 피지 않는 날이 오면 나비가 되어 주기로. 나비가 되어서 꿈꿔주기로, 약속해다오"같은 알쏭달쏭한 수수께끼 한마디에 ‘이다’가 되기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살아온 희미에게 영토를 탈주하는 격렬한(혁명적인) 클리나멘이 있을지도 더 읽어볼 일이다. <"나는 용을 뵈러 갈 생각이네. 그것이 내가 맡은 유일한 책무인즉." 유란은 기꺼이 웃어 보였다. "낭랑의 뜻대로.">

“꽃이 꾸는 꿈인지도 모를” 나비와 “창룡의 꿈인지도 모를” 나라. 이 몽환적인 시공간에 ‘접속’한 노드들이 어떻게 시뮬라크르를 ‘생성’ 하고 또 ‘배치’를 통해서 뻗어나가는지, 역시 기꺼운 마음으로 읽어 볼 일이다.  

들뢰즈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들뢰즈의 존재론과 인식론은 ‘차이’와 ‘공명’ ‘사후성’ 같은 개념을 정초한다. 여기에는 ‘칸트의 순수이성’에 대한 비판과 니체의 <‘사유의 선의지’에 대한 비판>을 먼저 이야기 해야겠지만(그러자면 베르그송과 데카르트도 언급해야 한다.),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다만, 들뢰즈는 그 깊은 ‘철학사’를 사유하여 정초한 개념으로 프루스트나 카프카의 문학에서 철학을 사유했지만, 나는 소설 하나를 읽는 동안에 그가 정초한 개념이 스쳤음(들뢰즈처럼 ‘마주침’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조금 어색하다.)을 이야기할 뿐이다.

들뢰즈는 공명(re‘sonance)을 ‘'비의존적인 이질적인 항들 간의 ‘'이웃 관계’'의 조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공명을 가능케 해주는 것을 그는 ‘어두운 전조(sombre pre’curseur)'라고 부른다.*** "어두운 전조는 자기 고유의 힘을 통해 차이 나는 항들을 매개 없이 관계 짓는다."

“유란이 발을 걷고 나설 때에는 종소리가 울리지도 않았건만. 하기야 울리지 않는 쪽이 번상하지 않은 것이니 그걸 두고 수선스럽다 야단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1. 사유란(2))”고 말한 추향의 말에 대한 기억이 오히려 역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 “눈송이가 닿을 때마다 휘던 풀잎이건만 유란이 발을 붙였다 뗀 풀잎은 흔들림조차 없었다.(18. 미련(7))”고 천연덕스럽게 초상비나 “검을 품고 자국눈 위에 발자취 없이 백리 길을 떠나(18. 미련(6))”는 답설무흔을 말해도 그 핍진성(verisimilitude)이 전혀 손상되지 않아 보인다.

“도적을 모두 척살하였으되 그 흰종이에는 핏방울은커녕 생채기 하나 남기지 않다니, 참으로 기이한 사내였다.(2. 희휘랑요(3))”는 희미의 회상은 “맑은 술이라지만 부채에 흔적이 남겠구나. 모처럼 흰 빛깔을 오래 지켰다 여겼는데(3. 묵락(3))” 하고 아쉬워하는 유란을 읽으며 공명하게 된다. 그것은 “이제 술이 깼나?”, “저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사뢰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대의 부채가 마셨다고 했지.” “부채라면 이제 다 깼다고 하는군요(3. 묵락(3)).” 나,  "영광스럽게도 낭랑님께 길잡이로 임명받은 제 부채님께서 말씀하시길.(5.호접몽(2))" 같은 대화를 더욱 유쾌하게 해준다. 이 유란의 부채에 돌뢰즈가 프루스트의 마들렌에 대는 트레이싱페이퍼 같은 ‘어두운 전조’를 들이대는 것은 너무 억지일까.

둘뢰즈를 말하는 것이 옴니암니 하는 것이라 해도, 이러니저러니 해도 매창소월은 그 탐미적 가치만으로도 너끈하다.  

“삼백년 영화마저 꿈인양 스러지니 / 가신 듯 돌아오느니 계절뿐이로소이다. / 홈염히 웃던 얼굴 홍엽마냥 시드나니 재물마저 짇다랗더이다. / 하루는 다시 억겁이 되리니 나라를 꺾은 죄 마저 잊으소서, 님이여. / 대업마저 충의마저 한 잔 술과 같도소이다.”

이 하나의 절창을 읽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클릭하고 잘 읽었다는 댓글 하나 다는 그 수고에 값을 하고 남는다. 아쉽다면 “이런 절창을 좀 더.........” 하는 욕심과 바람뿐이다. 예전에 읽었던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이 새퉁스레 떠오른다.

한 10년 전 이야기 같다. 어떤 언론사가 느닷없이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을 갈라 싸움을 붙였다. 그 때 정 아무개 교수가 대중문학을 향해 “40도 고열로 독자를 유혹”한다고 말했던가. 대중문학에서도 하위부류로 치부되는 장르문학에서, 현재 크게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이 ‘매창소월’을, 그 때 그 양반이 읽어보았다면 그렇게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감히 자신할 수 있다. 단지 연재된 '미성년' 마지막 장 한 꼭지만 읽어봐도 그것을 느끼는 데는 충분하다.  매창소월은 오히려 어느 본격문학보다 그 절제의 미덕이 콘텍스트에서 숨을 쉬고 있다. 그것도 훨씬 더 싱싱하게.

------------------------------

* 신승철, “들뢰즈/가타리의 욕망론과 신체론에 대한 고찰”, 동국대 대학원.

** G. Deleuze & C. Parnet, Dialogues, Paris: Flammarion, 1977, 서동욱, “공명효과-들뢰즈의 문학론-”, 재인용.

***G. Deleuze, Différence et Répétition, Paris: PUF, 1968, 서동욱, 같은 글, 재인용


Comment ' 7

  • 작성자
    양탕
    작성일
    09.04.28 02:07
    No. 1

    들뢰즈를 통한 텍스트 읽기. 지적 쾌감과 동시에 항몽님의 공명을 맘껏 섭취하고 갑니다. 이건 부언인데, 알튀세가 독일 이데올로기를 기점으로 단칼에 포이어바흐주의자 청년 맑스를 폐기했던 것처럼 들뢰즈가 가끔 헛소리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항몽님이 "나는 반대로 n-1의 수평적 다양성이 아니라 1의 수직적 원류를 찾아가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실토한 것처럼 왠지 항몽님도 가끔씩 그러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양탕
    작성일
    09.04.28 02:16
    No. 2

    항몽님의 일갈. "협은 이름 하나로만 (소설을 통해) 살아남았다. 관과 무림은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는 괴이한 언명 하나로 모든 것을 비켜가며, 또 다른 뒤틀린 권력을 만들어낸다. 우스운 이야기다. 거기에 한국 무협은 훨씬 더 탈영토성을 보인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어떤 작품에서도 그 이행이나 과정에 대한 양해나 이해를 들어 본 적이 없다."를 해체하는 것이 진가소사라고 보여집니다. 지금은 삭제됐지만, 이전에도 그런 말을 했었지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6 박상준1
    작성일
    09.04.28 02:53
    No. 3

    양탐님!
    들뢰즈는 읽었지만 제대로 이해한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그저 눈에 들어온 만큼이지요. 다만, 들뢰즈가 나머지 생애는 맑스의 위대성을 밝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는 돌연 자살을 해버려서, 그 행간에 뭐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노마드와 1.
    그리고 제 글쓰기에는 그런 점이 없잖아 있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2 만월(滿月)
    작성일
    09.04.28 07:56
    No. 4

    매창소월이라 꼭 읽어봐야겠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8 아쿠마님
    작성일
    09.04.28 12:05
    No. 5

    글읽기가 수필집처럼 너무 매끄러워서 편하게 읽었고 그 글쓰기에 감탄하고 갑니다. 인용하신 대화체들이 마치 시처럼 운율감도 있고 언어도 감성적이네요. 꼭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벽암
    작성일
    09.04.29 01:56
    No. 6

    간만에 읽는 절절한 비평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향몽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1 은걸
    작성일
    09.04.29 19:02
    No. 7

    음~~~~~

    정말 멋진 장문의 글을 올려 주셔서
    너무 감사하네요!

    역시 '진가소사'의 항몽님 맞으시죠?!
    비평란의 품격을 채워주는 ~~~

    잘 읽었습니다.

    진가소사도 훌륭합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평란 게시판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찬/반
558 판타지 헥사곤의 문제점 +14 Lv.73 ko** 09.05.09 2,258 5 / 4
557 판타지 워크마스터 8권을 보고 +20 Lv.89 아무르 09.05.09 3,028 6 / 1
556 판타지 게임판타지의 가상현실 기술을 보자면 +37 Lv.9 캄파넬라 09.05.08 3,298 11 / 7
555 판타지 아크도 결국 책권수만 늘어 나는가..? +18 Lv.1 현석1 09.05.08 3,168 23 / 2
554 판타지 멘탈리스트 재 비평을해봤습니다. +17 Lv.1 티에스 09.05.07 2,557 16 / 6
553 판타지 멘탈리스트에 대한 단상 +31 Cloud_Nine 09.05.05 3,890 21 / 12
552 판타지 히든커넥션....... +31 Lv.6 바로스 09.05.04 3,232 7 / 7
551 판타지 너무한 하이마스터 +17 Lv.60 코끼리손 09.05.03 3,807 27 / 8
550 판타지 [게임소설]아나키스트를 비평해봤습니다. +21 Lv.1 티에스 09.04.28 4,195 31 / 2
549 판타지 대검의 암살자. 참 잘했어요 퍽퍽퍽. +14 립립 09.04.28 3,484 33 / 0
» 판타지 매창소월, 그 아름다운 공명. +7 Lv.6 박상준1 09.04.28 3,050 9 / 1
547 판타지 그녀의 기사를 읽고 +10 Lv.1 모흐 09.04.21 2,266 9 / 2
546 판타지 포란 1~2권. 호불호의 극과 극. (미리니름 약간 O) +25 립립 09.04.19 4,889 21 / 4
545 판타지 '서제' 1~2권을 읽고 Lv.1 새벽 서 09.04.19 1,716 1 / 2
544 판타지 기갑영검 아스카론1,2권 (결정적인 미리니름) +10 Lv.1 [탈퇴계정] 09.04.14 5,422 3 / 1
543 판타지 잘 짜여진 추리극같은 판타지 스포 있음- 페이크 ... +15 Lv.1 가을로 09.04.11 4,008 9 / 4
542 판타지 환상이 없는 소설은 판타지가 아닙니다. +17 Lv.3 백화어충 09.04.10 3,188 8 / 8
541 판타지 그림자군주 1-5권 스포 있음. +6 Lv.1 가을로 09.04.08 2,582 31 / 1
540 판타지 공작아들 1~3권(미리니름O). 끝맺음의 의미가 불분명. +15 립립 09.04.07 3,208 14 / 2
539 판타지 이지스 +33 Lv.42 으아악 09.04.03 3,436 24 / 5
538 판타지 이상한 설정의 소드마스터들 더 이상 안 나올 수는... +101 Lv.45 순백의사신 09.04.02 3,751 31 / 27
537 판타지 아저씨 용사 비평. +8 Lv.50 머저리 09.03.31 2,763 8 / 4
536 판타지 <열왕대전기 12권>스포 +11 Lv.29 광명로 09.03.31 1,778 5 / 23
535 판타지 송승근님의 하울링(1 - 7)감상평이어요.[미리니름] +8 에밀리앙 09.03.31 2,078 5 / 1
534 판타지 검이란 무엇인가? +9 Lv.43 幻龍 09.03.28 1,932 4 / 1
533 판타지 '라크리모사', 한국의 킹이 태동하다 +6 양탕 09.03.28 2,204 29 / 11
532 판타지 [함께하는 감상나눔] 인과 연. 끊을 수 없는 정을 ... +1 Lv.8 삭월(朔月) 09.03.24 1,164 1 / 1
531 판타지 [함께하는 감상나눔] 흐룬팅. 온새미로. 산신. +4 Lv.1 봄비내리다 09.03.23 1,364 3 / 1
530 판타지 아래 양탕님의 글과 연관해서 읽어보세요^^~~ +107 무영신마괴 09.03.23 2,447 7 / 10
529 판타지 장르물과 장르문학, 간극의 무한대 +25 양탕 09.03.23 2,213 11 / 27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