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뇌전의 왕
작가 : alla
출판사 : none
0. 들어가기 전에
alla님의 아래 글은 pascal님의 비평요청 다음으로 제게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 요청글이었습니다. 사실 누구 다른 분께서 간단한 비평 댓글 하나 정도만 달아줬어도 그냥 지나가고 싶을만큼 껄끄럽기도 했죠. 이 글의 비평을 쓰는게 제 인생에 절대 도움이 안 될 것은 뻔하고.
하지만 저 또한 200만자의 낙서를 완성시킨 사람이고 자기 글에 대한 관심을 작가들이 얼마나 원하는지 무척 잘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때마침 몇 가지 불운 덕분에 최근 시간이 남아돌게 되었고, 제가 한 번 부딪혀 보기로 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제 실랄한 표현들은 몇 가지 효과를 위해 기획된 것이며 딱히 alla님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결코 없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또한 제 이득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뻘짓은 제게 대단한 손해를 초래하는 일입니다.
전 바보가 아녜요. 성공은 아가리 닥치고 체계에 순응할 때 주어지는 겁니다. 모두가 yes를 말할 때 no를 말하라고? 그런 놈들 0.01%는 잘나가며 자기계발서 따윌 써내죠. 하지만 99.9%는 실패해서 망하게 되어 있답니다.
그러니 alla님도 전업작가로 명성을 쭉 이어나가고 싶으시면 비평란 같은 곳엔 기웃거리지 말고 오로지 자기 작품에만 충실하시라고 충고드립니다.
1. 그나저나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소릴 듣고 싶은 걸까?
하지만 어쨌든 버스는 출발했고, 비평은 시작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뇌전의 왕>은 제 겁니다. 제가 마음대로 할 것입니다. 히히.
alla님께서 아래 글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글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원한다고 하시더군요. 아니 그런데 객관적인 시선요? 허...... alla님의 주인공들인 시안과 수호가 자주 하는 대사처럼 '허...'라는 말 외에 무슨 말을 해드릴 수 있을지.
아시다시피, 지금은 21세기 한국이며 고전주의 시대가 아닙니다. 프로이센이야 말로 세상의 궁극적 진화 형태라고 굳게 믿었던 헤겔이 살던 시대가 아니란 뜻입니다. 우린 어떤 상황을 파악하는데 있어, 더 이상 가치중립적인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걸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치 중립적인 비평이라... 혹시 빠악! 케르륵! 우드득! 톡 파지지지직 켕! (참고로 저것들은 alla님 소설에 등장한 의성어이며 세상에 얼마 안 되는 가치 중립적인 표현입니다.) 이런 거 말고 뭘 할 수 있죠?
아니, 잠깐 잠깐만! 근데 alla 이 사람 어디서 많이 봤어. 아 그래 금상 탄 유명 작가잖아?
알고 보니, 이번 공모전에 금상도 타고 이미 유료 결재로 돈 좀 만지고 있는 프로 작가였어요. 대충 작품을 검색해봅니다. 와우 1만 명이나 이 작가 글을 선작했어! 문피아 인기도 1~3등 안에 드는 <로만의 검공> 작가였네요. 비평이고 뭐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이 비좁은 장르판에서 그 정도면 그냥 끝난 거잖아?(요)
어쨌든, 궁금증이 이는군요. 그래서 포탈을 타고 넘어가 보았죠. 역시나 예상대로 이미 댓글로 충분히 많은 극찬을 받고 계십니다.
"꿀잼이네요." (소설 읽는 것이 꿀빠는 것만큼 달달하게 재미있다는 뜻입니다.)
"졸잼이네요." (극도로 재미있다는 뜻입니다.)
"짧다ㅠㅠ" (내용이 짧아 너무 안타까워 울고 싶다는 표현이겠죠?)
"연참 안되나요"(어서 다음 내용이 보고 싶다는 뜻입니다.)
"믿고보는 alla님 글!!!"(뭘 써도 믿고 봐주실 겁니다.)
칭찬들이 넘쳐나더군요. 한 회 올릴 때마다 거의 스무명 이상의 애독자분들께서 꾸준히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추천은 회당 거의 150개 이상. 선작도 3천. 리메이크 때문에 주춤하긴 했지만 연독률도 어마어마함! 게다가 alla 작가님의 진행에 적극적으로 쉴드를 쳐주는 분들까지. 문피아의 최근 서버 문제점이 아니었다면 진즉 상품으로서 충분히 인기를 누렸을지도 모르지요. 아니 이미 상품화 가능성이 충분하군요.
그래서 드는 생각은 '왜 어째서?'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인기 작가님'이 뭘 더 바래서 여기다가 비평 요청을 한 걸까요? 아니 비평 요청 누구나 할 수 있지 그럼 왜 그걸 가지고 난리냐고요?
생각해봐요. 솔직히 말해 여기 비평란 대부분 요청글들의 화두는 "왜 난 인기가 없을까?"입니다. 제가 문피아를 오래 이용한 건 아니지만 거의 2년간 비평요청들을 보면 대게 그랬어요. 작가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건 인기, 인기, 인기입니다. 즉 돈, 돈 돈이란 말이죠. 이 사이트의 비평 게시판에서 문학이 해낼 수 있는 다른 요소들에 대한 관심은 거의 멸종된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래 몇 가지 글만 읽어봐도 누구나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alla님 같은 인기 작가의 비평 요청은 터프한 예외란거죠. 허... 먼치킨이 인간계에 내려와 양학을 저지르려는 것일까요? 왜 가끔 롤의 마스터, 첼린저 티어의 고수들도 골드, 실버의 부계정을 판 다음 킬딸을 즐기곤 하잖아요? 현대판타지에서 흔히 나오는 에피소드가 딱 그렇구요. 그렇게 생각하면 대단히 아니꼬운 짓이 됩니다. 그래서 자기 입장을 잘 아는 유명 베스트 작가들은 여기 잘 안 내려오죠.
혹시, 설마 더 많은 돈과 인기를 얻고 싶다는 뜻일까요? 하지만 <뇌전의 왕>으로 세계 무대에 진출하여 <반지의 제왕>이나 <헤리포터>만큼 벌고 싶은 야망을 가지신 건 아니실 텐데? 허. 혹시 그런 야심을 품었다고요?(사실 저도 보르헤스 짝퉁 비슷한 쓰레기 자작소설로 그런 꿈을 꾸었던 적이 한 160분 정도 있었습니다. 에이, 난 길진 않았다구요. 게다가 1999년의 일입니다! 정말 오래 전 일이죠.)
뭐, 그것도 아니겠죠. 그렇다면 답은 나오는군요.
흐흐.
바로 alla님께 돈과 인기가 문제가 아니란 뜻이겠죠?
혹시!
이 사람은!
장르 문학가로서!
단순한 흥미와 재미를 넘어!
인문학적 상상력을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 간단한 작품 소개
그래서 먼저 ‘소제목’ 한번에 쭉 읽어보았죠.
변화와 이변, 진화. 우와... 90년대를 강타한 진화심리학적 내용이 잔뜩 나올 거란 생각이 팍팍 듭니다. 비록 진화에 대한 사회인문학적 논의들은 한국에 수입되어서 변태적으로 현지화되어 신자유주의의 기치를 펄럭이는데 큰 공헌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인간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들을 열어젖힐 수 있는 훌륭한 소재가 되어 주거든요.
그러니 설랬습니다. Runcibles님의 황혼의 장식띠를 처음 볼 때처럼 말이죠! 그 소설은 개인적으로 문피아에서 본 가장 흥미로운 소설이었고 솔직히 개인취향이겠지만 르 귄이나 러브크레프트의 소설들 따위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여기 불지옥 식 상품피아에도 그런 기적 같은게 가끔 올라온단 말입니다. (물론 그런 것들은 거의 비주류인데다가 선작 30~50이하이긴 하지만... 뇌전의 왕은 선작이 좀 많아서 불안하긴 했어요. 무려 3천개라니. 으으.)
게다가 두 글자의 심플한 소제목이라니! 변화! 이변! 진화! 우오오오오! 읽기도 전부터 두근거렸죠. 전 이런 깔끔한 제목 정말 좋아합니다. 여운이 넓지만 확실히 소재를 잡아두는 맛깔스러움이랄까?
는 개뿔.
옆길로 많이 새었군요
.......
이제부터 전형적인 불지옥 반도식 문학 작품의 스토리를 설명드리죠.
주인공 수호는 운 좋게 벼락을 맞고 강해집니다. 그리고 남들보다 먼저 이세계로 끌려가 친절한 튜토리얼을 경험하며 차근차근 강해집니다. 계속 강해집니다. 레벨업을 하고 끊임없이 강해집니다. 몸짱이 되고 더욱 강해집니다. 강해집니다. 강해집니다. 강해집니다.
강해집니다. 지구가 위기에 처하고, 주인공 수호는 사람들을 구하고 모두에게 선망을 받습니다. 강해집니다. 계속 강해집니다. 기존 세상은 멍청하고 무기력해서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선우에게 매달려야만 하죠. 그 와중에도 수호는 레벨업을 하고 끊임없이 강해집니다. 강해집니다. 수호에게 위기가 닥칠 때면 아니, 시련은 없습니다. 어쨌든 더욱 강해지고 또 강해질 예정입니다. 강해집니다.
강해집니다. 제 18의 강해가 집니다. 강에 해가 집니다. 강해집니다. 강해집 삽니다. 강해의 집입니다. 강해집니다. 강이 하예집니다. 강해집니다. 제 26의 강해가 집니다. 강해집니다. 강해집니다. 현기증도 강해진다는 건 착각입니다. 강해가 짖습니다.
허... 이게 무슨 스토리 소개냐?
미안해요.
스토리는 진짜 저게 다예요. 그냥 한 사람이 벼락(로또) 맞고 허.... 하며 강해지는 그런 얘기입니다.
이제 그만. 여튼 주인공이 강해지는 성장물입니다. 아직 초반 부분이니까 그렇지만 아마 조만간 '적들'이 등장할 테고 그걸 때려부수는 내용도 등장할 예정이겠죠. 아직은 안 나오지만 나중엔 여자를 취할 지도 모르죠.
우리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심도있는 통찰이나 미쳐 자각하지 못 했던 어떤 인지적 영역에 대한 탐구라던지, 사회인문학 지식에 기반한 사고 실험 혹은 통찰력 있는 미래학적 비젼 등은 찾아볼 수가 없었죠. 심지어 헐리웃 액션 오락 영화들조차 한 두개쯤 가지고 있는 기초적인 사회비판 메세지도 발견해내지 못 했습니다. 심지어 국가, 민족 등의 보수주의적 이데올로기조차 멸종했습니다.
굳이 눈 씻고 억지로 찾아내자면 힘센 게 짱 좋은 거다. 지극히 원시적이고 극단적이라 부끄러울 정도로 원색적인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 그거 하나뿐이지요.(힘이 없으면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라. 뭐 이 정도? 더 못 찾아내는 건 비평하는 사람의 안목이 낮아서입니다.)
물론 소설에 사상이나 깨달음 같은 것들이 꼭 포함되어 있어야한다는 건 아닙니다. 소설이란 건 한 번 보고 즐기고 욕망을 불태우고 쓰레기처럼 버리면 될 일이죠.
네, 뭐 그냥 그렇다구요.
3. 멘탈 붕괴
<뇌전의 왕>은 그냥 흔한 땔감입니다. 쓰레기입니다. 제 아이가 자라나서 이런 걸 보면서 한국 문학의 일부라고 말한다면 아마 제 자신이 끔찍하게 느껴질 거 같습니다. 한국이란 나라를 혐오하게 될 거 같아요.
이런 걸 가지고 타인의 객관적인 시선이 궁금하다고 할 수 있는 뻔뻔한 낯짝과 만용이 두려워질 지경이예요. 8만 자의 글을 읽으며 전 부끄러워서 차마 눈을 어디 둬야할지 모르겠더군요. 부모님이나 여자친구에게 이런 글을 보여주며 나 이 거 쓰고 있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요? 독자들은? 이걸 지하철에서 읽는데 얼굴이 다 화끈거리더군요.
허... 아, 선작수 1만 개의 힘인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지지해주고 있으니까 두려울 것 따위 없겠네? 하지만 너 평생 이런 거나 쓰면서 살래?
라고 alla님이 제 친구라면 이렇게 얘기했을 겁니다. 물론 친구이고 술자리에서 얼굴을 직접 대면했을 때 말이죠. 게다가 3년 전이란 조건도 덧붙여야 합니다. 지금의 저는 그렇게 생각도 안 할 뿐더러 그런 말도 안 해요. 너무 걱정마요. 안 잡아먹어요.
(화내지 마시고 잘 읽어보세요. 전 alla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시선들을 임의로 생성하여 차례대로 보여주고 있고 또 그럴 겁니다. 그게 객관에 가장 근접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습니다.)
4. 인기의 비결?
아니 뭐. 사실 선작 1만개면 인기도 아니죠. 책으로 팔았다면 끽 해봐야 3천부? 베스트셀러, 인기작가라 할 거면 적어도 30만부는 팔아야 어디 이름을 들먹이죠. 사실 문피아 작가님들도 곤란할 겁니다. 누군간 인기작가라 불러주는데 현실은 시궁창이고.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인정이라도 해줍니까?
어쨌든, 이런 류의 성장 이능력 초인물에 대해선 더 말하기도 귀찮을 정돕니다. 지난 번 비평때 누군가 한 문장으로 잘 간추려 주시더군요.
<홍보, 초반 자극, 성장-먼치킨-대리만족> + 뻔하다 못해 토나올만큼 식상한 클리셰의 전개
그 부분에 대해 조언해줄 것은 잘하는 걸 더 잘 닦아보란 말밖에 없답니다. 이미 잘 하시는 걸요 뭘. 뭘 닦느냐고요? 말할 것도 없죠. 욕망의 배설물 말입니다. 한국형 판타지 전업 작가요? 어휴. 사람들 똥 닦고 꾸깃꾸깃한 돈 받는 그런 기술입니다. 제가 한국의 모든 판타지 작가들을 모욕한다고요? 감히 너 따위가? 네, 할 땐 해야죠.
이런 모욕을 받고 너무나도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고 생각하신다면, 8장에서 더 자세히 얘기해보도록 하죠. 잠시만 기다리시라.
5. 몰입도 쩌네요?
사람들은 '몰입'하길 원합니다. 문피아의 대다수 독자들은 게임도 함께 하지요. PC게임, 폰 게임을 하거나, 웹소설을 읽거나 웹툰을 보거나. 그 중 하나죠. 요즘 애들은 잠시라도 무엇인가에 몰입하지 않으면 못 견뎌합니다. 괜히 한국 남자들이 예비군 가기 싫어하는 줄 압니까. 대기 대기 대기... (사람들이 원하는 걸 알고 싶다면, 한국 예비군 중대가 하는 작업의 정확한 정반대를 하면 됩니다.)
자, 몰입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 겁니다. 혹시 PC방 안 가보신 분? 없으시죠? 가보면 표정들이 참, 가관입니다. 아, 물론 저도 마찬가지예요. Wow를 할 때 그랬던 거 같아요. 공장 하는 건 이해하는데 당신 마이크 소리 너무 크다고 PC방 사장님께 혼날 정도였으니까요. 젋었던 날들이죠.
그런데 젋든 나발이든, 공대에 54살 아저씨도 있었고 15살짜리 아기도 있었어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우린 완전 미쳐 있었죠. 그런데, 우리는 왜 컴퓨터 게임 따위에 그렇게 몰입했을까요?
우린 스스로 이성적이라고 착각하는 원숭이죠. 물론 조금 똑똑하긴 하지만 여전히 화학물질에 압도적인 지배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장소 중 하나가 바로 대뇌의 복측 선조체입니다. 여기선 여러가지 호르몬들이 결합하여 수용체에 수용되는데, 그 중 우리가 알아볼 것은 바로 쾌감과 상당히 관련이 깊은 도파민이죠.
탄소11을 혈관에 흘려보내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PET을 하게 되면 도파민이 있는 영역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탄소 11은 도파민과 결합한 수용체 뉴런과 결합이 불가능하므로 방사선 동위 원소가 발견되지 않는 영역을 감지해내면 역으로 도파민의 영역을 알 수 있거든요.
이를 응용해서 1997년 영국 해머스미스 병원에선 컴퓨터 게임과 두뇌의 화학적 변화를 실험하였습니다. 그들은 피험자들에게 탱크 전쟁 게임을 시키면서 실시간으로 신경 화학적 수준에서의 두뇌 변화를 지켜보았죠. 피험자들은 상대의 탱크를 박살내면서,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리탈린 주사나 암페타민 주사만큼이나 엄청난 양이었다고 합니다. 잘게 부셔 혈관에 주사할 경우 코카인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약물들이죠. 그러니까 마약의 효과와 비슷하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을 때, 방해를 해보세요. 게임하는 아이 입장에선 ‘밥 먹으란’ 소리만큼 짜증나는 일도 없습니다. (당신이 지혜롭다면, 정확한 밥시간을 아이에게 미리 공지해줄 겁니다. 더 지혜롭다면 같이 게임을 하고 밥을 먹겠죠. 물론 더욱 지혜롭다면 함께 나가 다른 걸 하고 놀겠지만요.)
우리가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게 우리 두뇌의 보상 체계를 단숨에 장악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과도해지면 밥 먹고, 싸고, 사랑하는 행위조차 뒤로 미룰 정도로 몰입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우리 생존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착각해버리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끊겨버리면... 쌍심지가 돌아가고 지극히 흥분하여 어쩔 줄 모르는 상태가 될 겁니다. 그게 당연한 화학적 반응이란 거죠.
* 물론 그 모든 죄를 게임에게만 뒤집어 씌우는 건 바보짓입니다. 게임 중독이란 개념을 만들 거면 더 심각한 학습 중독, 운동 중독, 일 중독도 만들어야만 하거든요.(개인적으로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일 중독입니다.)
6. 필력 개쩐당...
자, 이 모든 게 소설 비평이랑 무슨 상관이냐고요? 당연히 상관있죠. 우리 장르 문학 작가님들은 다름 아닌 이런 데 익숙해진 아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야만 하니까요. (장사가 아니라고요? 그저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고요? 진짜요? 에이...... 그럼 무료로 쓰셔야지. 인정할 건 인정합시다.)
작가들은 장사를 해야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문피아 작가님들로선 독자들을 이런 '몰입' 상태로 몰아넣어야한다는 겁니다. 그 말은 판타지 소설 읽는 것이 밥먹고 공부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이웃과 사회를 생각하고 인류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설득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악당 같아 보이지만 뭐 별 거 없습니다. 아편전쟁 당시 신사의 나라 영국이 중국인들을 상대로 했던 일들이며 21세기엔 일상적으로 상품 생산가들이 늘 해내는 일들이니까요. (아, 악당 맞나요?)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당신 혼자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수많은 동료 장르 문학 소설가들이 함께 전우로서 옆자릴 지켜줄 겁니다! 그게 자본주의가 원하는 욕망입니다. 개체는 그저 눈을 감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자, 그럼 어떻게 하면 훌륭한 악당이 될 수 있나요? 먼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부터 개념을 빌려 옵시다.
사실 가장 대중적인 중독의 형태는 학습 중독입니다. 게임 중독 또한 교육과 똑같은 형태로 일어납니다. 열심히 공부를 해서 수학 점수를 올리는 일 말입니다.
게임과 교육 학습의 흔한 구성요소를 뜯어볼까요?
1) 목표 의식과 보상(순위표, 렝크)
한국 교육 시스템이 정말 잘 하는 짓들이죠.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존경스런 선생님들께선 전교 1등에서 400등까지 주르르 줄을 세우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전 늘 앞줄 근처에 섰고 자랑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죠. 게임도 마찬가지죠? 렝크 없는 게임이 어디 흔하던가요? 렝킹 시스템이 잘 돌아갈수록 그 게임이 잘 나갈 가능성이 큽니다. 대표적으로 LoL이 있죠.
도파민은 쾌감 자체로 인한 보상이 아니라, 쾌감에 대한 기대감을 조절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즉, 동물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을 때 도파민을 측정하면 상당량이 검출되지만 찾던 것을 발견하고 소비해버리면 도파민 분비는 멈춰버린다는 거죠. 도파민은 목표 달성보다는 그 과정에 깊이 관여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장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그런 걸 뒷받침해줄 수 있는 체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거죠. 9서클! 5클레스! 그랜드마스터 소드마스터, 소드 익스퍼트! 레벨 27, STR 500 등등... 괜히 요즘 소설들에게서 게임의 스텟창이 나오겠습니까?
2) 업적, 수집(템 파밍)
사실 우리땐, 모범생들 중에 문제집 많이 풀어서 쌓아놓는 것을 마치 헌팅 트로피 쌓듯 뿌듯해 하는 변태 녀석이 있었죠. 사전을 찢어 씹어먹는다던지 하는 놈들도 있었고. 게임도 다르지 않아요. 대표적으로 Wow가 그렇죠. 펫, 업적, 으으... 그놈의 업적. 게다가 2년마다 초기화되는 템 파밍의 즐거움! 30분마다 초기화되는 롤의 템 파밍 즐거움도 그다지 다르지 않답니다. LoL하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팀의 승리보다 자기 템 빌딩이 더 중요한 정글러들이 참 많죠?
오늘날 한국 아이들이 학교 교육보다 게임에 빠지는 건 그저 게임 쪽이 더욱 더 빨리 도파민을 더 많이 분비시켜주기 때문일 뿐이란 게 제 생각입니다. 실제로 게임이 없던 시절엔 공부 중독자들이 많았어요. (요즘 분들은 안 믿으시겠지만.) 하루 4시간 자며 공부했다는 말 진짜 거짓말이 아니라니까요? 공부 그거 꽤나 중독성 있답니다.
그러니까, 학부모들이 게임이 아니라 공부를 시킬 때, 마약과 같은 효과에 중독된 아이들 입장에선 그들이 아주 비효율적인 일을 시키고 있는 셈이죠. 똑똑한 아이들은 당연히 도파민 분비가 더 효율적인 게임을 선택하려 하는데 부모가 트롤링(삽질, 바보짓)을 시키니까 반발을 하는 거죠. 행복이란 건 결국 도파민 분비량에 비례하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라고요? (제가 이런 글 쓰면서 셀프 고통받고 있는 거 보니 아닌 거 같긴 한데......)
어쨌든,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구조는 인간을 환장하게 만듭니다. 우리 안에 숨겨진 원시 시대의 수렵/채집 욕구와 짝찟기 경쟁 시의 순위 우열 경쟁 욕구 등이 우리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렬한 동인이죠.
당연히 위의 요소를 잘 활용해서 독자들에게 가장 빠르게 도파민을 분비시켜주는 것이 좋겠죠. 그런 작품들이 인기를 끌고 돈을 끌어다모을 겁니다.
이제 원칙을 사례에 적용시켜 봅시다.
<뇌전의 왕>은 어떻던가요?
1) 평범하게 번개를 맞고 잘 살아가던 주인공이 갑자기 이세계로 끌려갑니다. 섬뜩한 눈동자가 나타나 너 싸우지 않으면 죽여버린다고 말하죠. 주인공에겐 살아남아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의식이 생겼습니다. 어이쿠, 이기고 나니 보상도 주네요? 한 번 끌려가 그 층을 클리어하면 황금 알을 주거나 변태짓을 하던가 할 수 있어요.(이상한 거 말구요! transform!) 어쨌든 강해진다는 겁니다.
2) 게다가 친절하게 레벨까지 표시해줘요. 처음에 소설은 말하죠.
"넌 아직 약해빠졌다."
레벨은 10렙. 튜토리얼 추천. 사실, 게임 좀 하는 사람들은 튜토리얼 따위 안 합니다. 하지만 연약한? 수호는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폭풍처럼 강해지죠. 강하다는 것도 약한 시절이 있어야 더욱 돋보이는 법입니다. 명심하시길. 강한놈이 더 강해지는 것보다 평범(약한) 놈이 강해지는 걸 우린 손에 땀을 쥐고 바라봅니다.
3) 반면 파밍은?
<뇌전의 왕>은 이쪽 부분은 빈약합니다. 요즘 잘 나가는 소설들은 대부분 템 파밍, 여자 파밍, 돈 파밍, 명성 파밍 등 뭔가를 수집하고 업적을 이루는 일들을 절대 빼놓지 않습니다. 영지물들이 한때 흥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수집욕구들을 자극했던 것이겠죠. 미인들을 영지에 끌어다모으고 미남?...이라기보단 능력자들을 내 집의 번견으로 쓰는 그런 도착적인 쾌락이랄까. 포켓몬이 흥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7. 소설적 중독성?
원래 소설은 리얼리티로 승부를 봐 왔었죠. 그래서 과중한 개연성이 요구되었고 소설은 현실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나 같은 꼰대들이나 주장하던 얘기고. 세상은 변했습니다.
소설은 오늘날 총을 쏴대고 화려한 검무를 펼치는 액션 게임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 등에 비하면 정말 허접하기 짝이 없는 매체입니다. 도무지 경쟁이 안 되죠. 게임은 얼마나 빠르던가요? LoL을 시작하면 픽 단계에서부터 벌써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합니다. 좋은 라인을 차지하기 위해 동료들과 다투어야만 하거든요. 온갖 중상모략으로 미드를 따내면 깊은 만족감이 함께합니다. 닷지를 두고 치킨 게임까지도 벌리는 걸요? (일종의 미니 게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기존 소설의 매력은 헐벗고 사라진 지 오랩니다. 이제 아무도 타인의 깊숙한 내면 따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스마트 폰이 나타났고 사람들은 소셜 커뮤니티로 이어졌으며 카톡을 보내면 1초 이내에 상대방에게 내 의사가 전달되죠. 게다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수준 높은 작품들도 널려 있어요. 그야말로 지식이 넘쳐 흐르며 저마다 자신의 진정성을 외치는 시대가 되었죠. 30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다룬 가르침이나 스승을 구하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엔 U-Tube에 가면 지천으로 널려 있죠.
허나, 그럼에도 아직 소설은 쓸만합니다. 대단한 상품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나름의 고유한 매력이 있습니다. 사실, 만화책 좋아하시는 분들 이런 얘기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야! 나 만화책 한 권 읽는데 5분이면 된다!"
처음 전 그 소릴 듣고 엄청 충격받았어요. 전 만화방만 가면 엄청 손해보는 스타일이거든요. 열혈강호였나? 하여튼 그런 비슷한 무협류 만화책을 보는데 거의 30분은 넘게 걸리더군요.
전 조금 집요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녀석을 연구하기로 했죠. 아니 도대체 이 많은 그림과 텍스트들을 고작 5분만에 다 소화해낸다고? 그런데 녀석을 보니, 그림은 아예 안 보더군요? 허... 소설은 안 보고 만화책만 고집하는 녀석인데, 정작 만화책을 보면서 그림은 안 보고 스토리 텍스트만 봤었던 거죠.
그런데 이 녀석, 책은 죽어도 안 읽겠다더니 얼마 안 가더니 판타지/무협 광팬이 되었답니다. 당연한 수순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판타지/무협을 읽어도 한 권에 10분~길어야 30분으로 해결해버리긴 하지만 어쨌든 '소설'이란 형식에도 분명히 대단한 상품성이 잠재되어 있다는 겁니다. 오히려 애니메이션 만화책보다 스토리 전개가 더 빠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녀석들, 인문사회학 서적이나 유명한 세계 명작들은 죽어라고 안 읽으려고 해요. 이른바 오늘 날의 언어로 말하자면 "노잼"이란 거죠.
반면 전 어릴 때부터 인문학 서적들을 짝사랑해왔고 그쪽이 재미있더군요. 허나 제가 아무리 수천권의 독서를 해봐도 아무리 흥미로운 소재를 접해도 폴 콜리어나 자크 르 고프 같은 사람들의 글들을 1시간만에 읽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더군요. 판타지 책의 글자 수가 짧아서 그렇다? 수전 손택의 에세이나 노암 촘스키의 쉽고 짧은 대화집들을 봐도 판타지 책 읽는 친구만한 스피드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었죠. 심할 땐 제가 두어권 읽을 때 이 녀석들은 10권에 이르는 전집을 끝장내버립니다.
그러니까 이쯤에서 우린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한번 폼나게 시도해볼만도 합니다.
- 재미 있어서 30분만에 읽히는 것이 아니라 30분만에 읽히기 때문에 재미있다. -
스탈당, 레마르크, 하퍼 리, 르귄 같은 사람들의 소설과 문피아 소설들의 형식적 차이는 자명하죠.
1) 내용 진행에 쓸모 없는 것은 절대 설명하지 않는다. 심리적 분위기를 만드는 묘사를 최대한 절제함.
2) 상황 전개가 다소 말이 되지 않아도 과감히 생략/외면함.
3) 스토리의 통제권을 과감히 포기한다. 댓글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어떤 의구점이 나오면 즉시 몇 화 이내에서 대답해준다. 하지만 작가가 모든 걸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만은 절대로 유지해야만 한다.
저 3가지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저기서 벗어나 ‘문학 작품’ 같은 게 되려고 하는 순간 씹노잼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8. 그런데, 중독 시켜 돈은 벌겠지만 내가 책임은 지진 않을 거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쓰레기' 같다니 뭐라니 욕을 할 수 있어도 분명 한국 판타지 장르 문학계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방향성은 인간의 깊은 내면이나 인류의 미래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인 도파민의 분비라는 새로운 목적성을 가지고 있지만요.
이건 굳이 장르 소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계도 마찬가지고 게임도 마찬가지죠. 그게 진짜 대세죠. 레이드물이 대세가 아니라...
대세에 역행하는 것? 그건 바로 컨텐츠란 것에 무엇인가 대단한 메세지를 넣고 사람들을 일깨우며 현실의 지평을 넓혀준다, 뭐 이런 행동들 입니다. 시도는 좋죠. 하지만 그런 걸 시도하는 즉시 alla님은 따라잡혀버리고 말 겁니다. 유행은 작가를 기다려주지 않고 소비자들은 약한 마약을 도태시킵니다. 사람들은 커피보단 담배, 담배보단 코카인에 더 잘 중독되잖아요?
생각해봐요. 애들이 공부를 좋아하던가요? 아니면 게임을 좋아하던가요? 둘다 구조는 비슷합니다. 그저 컴퓨터 오락이 더 효율적인 마약일 뿐이죠. 예전, 책이 귀하던 시절엔 학교를 가고 공부를 하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던 아이들이 정말 많았답니다. 그저 월등히 효과가 좋은 대체제가 나타났을 뿐이란 거죠.
물론 그러다 보니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드래곤 라자 이후로 수많은 한국 양판 작가들이 탄생했고, 그들은 자기 글의 유행이 끝나자, 실업자가 되어 버립니다. 어차피 작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장르와 유행이 중요한 거니까요. 그렇게 그들은 게임 시나리오 작가/기획자가 되었죠.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만든 한국 게임들을 보면 대충 답이 나옵니다.
물론, 그들은 이런 원리들을 제대로 연구하고 쓴 것도 아니라 그저 흉내내기에 급급했습니다. 그 덕분에 극심한 노잼을 자랑하며 컨텐츠 부족으로 자멸해가고 있죠.
뭐, 그래도 도박의 매력 그거 하나는 건졌던가요? 그들은 도박에 집착하여 오늘도 수많은 한국 청년들을 낚아냈죠. 이제 한국 청년, 청소년들은 주사위를 굴리며 게임이란 이름의 온라인 아바타 도박을 '즐겁게' 플레이하죠. 끔찍하지만 돈만 벌면 장땡 아니던가요?
이득을 보는 사람은 사회적 이득을 배제하고 철저히 자기 개인의 이득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겠죠. 자본주의 사회잖아요.
그건 소설만 해도 그래요. 자기 글에 거기 뭔가 '메세지'를 넣으려고 하는 순간 플롯은 복잡해지고 작가가 공부해야할 분량이 많아지며 독자들이 인내해야할 구간도 길어지죠. 이 부분이 왜 나와야하지? 내 주인공의 강해지는 모습도 아닌데...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막히게 되고 물 흐르듯한 전개는 물 건너 흘러 가버립니다. 비효율이 발생하고 말죠. 뭔가 메세지를 넣으려다간 ‘형식적’인 측면에서부터 벌써 씹노잼의 조건을 충족시켜버리기 쉽상입니다.
게다가 그 메세지가 이 세상에 유일한거며 대단한 거냐? 딱히 그렇지도 않아요. 이미 그런 좋은 말들은 도서관/U-Tube에 넘쳐나죠. 그러니 땔감들이 넘쳐날 수밖에. 그리고 땔감들에 선량한 이데올로기의 마스크를 씌워 칭찬해준다? 입이 찢어진다면 몰라도 맨입으론 그렇게 말 못 하겠군요.(전 폭력에 약한 소시민입니다.)
9. 그럼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alla님 소설의 <뇌전의 왕>의 화두는 분명합니다. 바로 ‘강함과 멋짐’이죠. 이 소설은 일관되게 평범함에서 벗어난 영웅됨을 묘사하려 애씁니다.
어느 남자가 영웅을 꿈꾸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민족은 환호와 찬미로 영웅을 치켜세웠고 실용적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권력의 압박에도 물러서지 않으며 굴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강인한 남자에 대해 우리 모두는 경탄합니다. 영웅의 모습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죠. 읽어보진 않았지만, <로만의 검공>도 비슷할 거 같더군요. 그걸 완결하신 alla님이라면 그걸 무척 잘 아실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벌써부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독자들은 쓴소리로 무려 "왜 주인공이 약자들을 돕고 다니냐고" 묻습니다. "영웅병"이란 댓글도 있더군요. 순간 어안이 벙벙하더군요.
이 사람들(독자들) 글의 내용을 제대로 안 본 건가? 괴물들에 의해 사람들이 찢어지고 있다는데? 사상자가 얼마나 나와있는지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었다잖아.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한다고?
제가 꼰대이긴 한가 봅니다. 전 타인이 눈 앞에서 죽어갈 때 제게 힘이 있는데 안 도와주고 버틸 자신 없거든요. 사람이 상처입고 고통받아하는 광경은 차마 두고 볼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거기서 냉정하게 자기 이득을 따질 수 있다는 거, 그거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어려운 일 아니던가요?
하지만 이 사람들이 왜 그렇게 느낄까요? 정말로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인걸까요? 아니면 그 말들이 가져다주는 이미지가 멋져 보여서 뭣도 모르고 무작정 그런 걸 좋아하는 걸까요?
허나 아무리 사이코패스를 외치는 어린 애들일지라도 당장 눈앞에 현실의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으면 같이 마음 아파할 게 분명할 겁니다. 요새 애들 사악하고 이기적이라 안 그렇다고요? 하지만 전 적어도 제가 본 아이들 중에 진짜 사이코패스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정에 굶주렸을 뿐이며 아무도 자기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데 왜 내가 남을 이해해줘야하냐는 부당성에 분개할 뿐이었죠.
그래서 조금 고민을 해봤죠.
그 주위 부분 읽다가 알게 되었는데, '묘사'가 없더군요? 어... 이게 뭐죠? <뇌전의 왕>에선 사람이 괴물들의 난입에 의해 죽어나가고 있는 현실은 '사상자가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 없다.' 그 몇 마디로 끝날 뿐입니다.
아 물론, 판타지가 현실 그 자체가 되어야 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몰입에 방해되는 장면들, 특히 어린 아이들이 살해당하고 여자들이 찢겨나가는 장면들은 나올 필요가 없죠. 괜히 눈쌀만 찌푸리니까. 특히 영웅의 일대기를 다룰 땐 그런 건 나오면 재미를 푹 망치는 요소가 됩니다. 독자의 관심은 오로지 영웅의 행보와 그의 위대함으로 정렬되어야 덜 피곤할 테니까요. 개연성도 그 정도만 지켜주면 된다 합니다.
허나 재미, 재미, 돈, 돈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변별된 새로운 가상 세계는 과연 누가 책임질 건가요? 독자들은 분명히 소설을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해나갑니다. 아무리 '풉 판타진데?', '재미를 위해 볼 뿐이야'라고 말해도 텍스트는 절대적으로 사람들의 세계 인식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전 독자들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잊어버린다고 걱정하는 게 아닙니다. 21세기엔 객관적 현실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죠. 우린 우리가 살면서 봐왔던 수많은 텍스트들을의 세계 속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형성해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거기 alla님이 수많은 독자들의 세계에 새로운 한 층위를 덧붙이신 거구요.
하지만 우린 알 건 알아야 합니다. 영웅들의 뒷면엔 또 다른 현실도 있거든요. 2차 세계 대전 중 소지한 무기를 사용한 병사는 고작 15%에 불과했죠. 수많은 이름없는 병사들은 그저 죽어갑니다.
‘당신은 다를 거 같나요?’
일단, 싸움터에 나간 남자는 대부분 비참하고 잔혹하고 아무도 봐주지 않는 쓸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심지어 20세기에 이를 때까지 대부분의 군인은 적의 무기가 아니라 점염병과 기아과 굶주림으로 죽었죠. 운 좋게 전투를 치른다해도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습니다. 훌쩍거리며 두려움에 떨고 운명을 원망하며 아이처럼 비명을 지르고 하느님을 찾고 머리통이 박살나죠. 창자가 쏟아져 나오며 화상이나 상처 감염으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합니다. 고통에 몸을 뒤틀는 동안 위생병은 큰 칼로 팔다리를 절단하죠.
<하일스베르크 전투(1807년)가 끝난 후, 러시아 병사 두 명이 발견되었다. 한 명은 팔이 없고 한 명은 다리가 없었는데 두 사람은 서로 도와 가며 죽은 말의 뱃살을 잘라 연명하고 있었다. 그들 옆에는 물통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둘은 거기 코를 박고 동물처럼 물을 마셔 댔다. 두 사람을 불쌍히 여긴 한 농부가 두고 간 물통이었다.> 나폴레옹, 1823, 5 Band, S. 402 , 볼프 슈나이더 p418에서 재인용
독자들이 ‘영웅병’ 같은 걸 언급하는 이유는 몰입을 위한 과도한 표현 삭제가 불러일으키는 색다른 현상 아닐까요? 독자들도 현실감각을 점차 상실해가는 거죠.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언젠가 <뇌전의 왕> 같은 류만 읽은 사람들 중에 정치인이나 장성이 되어 빨간 단추 앞에 앉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말이죠.
아, 그 빨간 단추가 무슨 단추냐고요? 현대전은 단추의 시대죠. 미군은 벌써부터 드론을 활용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이제 군인들은 기지에 편히 앉은 파일럿들이 테러리스트로 지명된 이들을 폭격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전 그분들이 '단추의 무거움'을 모른 채, 함부로 누르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굳이 군인이 아니라 민생을 결정하는 정치인, 혹은 판사가 된다 해도 마찬가지겠죠.
사실, 댓글을 달아준 독자분의 말처럼 이 모든 게 <몰입방해>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적어도 왜 타인을 막 도와주냐고 묻는 독자의 질문에 (인기가 저해될까) 전전긍긍하며 다음 화에 재빨리 주인공을 통해 자문을 구해보는 것보단... 왜 독자들이 그런 물음을 던지는지, 한번쯤은 멈춰서서 근본적인 것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작가라면 아무리 '재미'와 '돈'을 위해서 글을 쓴다고 할지라도 먼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믿습니다.
물론 그게 alla님 개인에겐 불이익이 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겁니다. 그게 소설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내는 이들의 최소한의 의무이자 도덕이라고 믿고 있고요. alla님이 그 시작이 되어 한국의 장르판을 바꿔나갈 힘이 되어 주십사 하는 건 한 명의 독자로서 한 명의 작가에게 너무나도 큰 것을 바라는 것일까요?
* alla님이 본인의 글로 무엇을 의도했건 아니건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alla님 당신은 객관적인 시선에서 글을 봐주길 원하셨고 전 그에 대해 '다양한 시선'으로 응답해드린 것 뿐이니까.
Comment '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