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뇌전의 왕
작가 : ALLA
출판사 : 문피아
저는 좋은 장르소설의 조건을 딱 하나로 통일합니다. 재미. 그런데 이 재미를 느끼는데 필수적으로 몰입감이 필요합니다. 즉 소설을 읽을 때 내가 이 소설에서 벌어지는 일에 일단 빠져 들어야 하는 겁니다. 몰입감을 느끼는데 지나친 우연적 요소는 방해가 됩니다. 뇌전의 왕의 첫번째 문제점은 이겁니다.
우연성의 반대는 개연성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제가 딱히 엄청나게 얼기설기 짜맞춰진 인과성을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만약 주인공이 대한민국 현 대통령인 소설이 있다고 칩니다. 인구 5천만인 나라에서 대통령은 딱 한명입니다. 그러니까 신적인 존재가 대한민국에서 어느 딱 한 사람을 집었는데 그사람이 하필 현 대통령일 확률은 1/5천만 입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주인공인 소설에 개연성이 없느냐? 절대 아닙니다. 애초에 신이 대통령 그 사람을 선택하려고 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주인공이 된 겁니다. 여기까지는 우연성을 해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대통령이 어느날 갑자기 로또를 삽니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굳이 제가 계산하지 않아도 극히 빈약합니다. 근데 작가가 주인공으로 삼은 이 대통령이 하필이면 로또에 당첨됩니다? 대통령이기까지 한 사람이 갑자기 로또에 당첨된다고? 여기까지도 뭐 그럴수도 있죠. 여기서부터 작가가 의도된 갈등이 시작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로또당첨된 대통령이 갑자기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하늘을 날게되는 초능력이 생깁니다. 하늘을 날다가 눈을 감고 날았는데 하필이면 그때 광활하기 짝이 없는 상공에서 지나가던 비행기와 부딪칩니다.
만약 이런 스토리로 소설이 써진다면 독자는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뇌전의 왕에서는 이와 유사하게, 우연적 경험들이 한 인물에게만 집중됨이 느껴집니다. 주인공이 벼락맞고 그 후유증에 대해서 듣도보도 못한 희한한 발작증세를 겪게 되었다-여기까지는 독자는 ‘작가’가 이 특이한 현상을 겪은 주인공을 선택했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이 벼락맞은 사건과 특이능력이 주인공이 몇년 후에 겪는 기묘한 다른 세계의 게임 시스템 체험과 필연적인 연관이 없다면, 위에서 로또복권당첨된 대통령이 갑자기 하늘을 날면서 비행기와 충돌하는 상황과 다르지 않습니다. 게임 시스템 체험이 개나소나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주인공에게만 벌어지는 희귀현상이라면, 왜 하필 주인공이어야 하느냐? 가 의문이 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향후 연재분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명쾌한 설명이 갖추어지길 바랍니다.
두번째, 18화까지 보았을 때 점점 갈수록 급속도로 재미가 반감됩니다. 주인공의 성장에 독자가 따라가서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 상실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소설의 이루는 두축, 1. 주인공이 몸이 흐릿해지면서 14일마다 겪는 모험/2.푸른 포탈이 열리며 위기에 빠진 사회, 이 두 가지가 주인공의 스피디한 활약과 함께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김치찌개에 설탕이 섞인 것처럼 부조화스럽습니다.
뇌전의 왕이 아닌 그 어떤 현대레이드물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봐도 사회의 급격한 위기와 개인의 성장이 이토록 괴리감이 느껴진 작품은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난 놀랍게 성장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사회가 위기에 빠졌네? 그럼 난 활약해야지? 하는 전개인데 주인공이 활약하는 걸 보면서 독자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함께 한다는 느낌이 아닙니다. 전개가 너무 급하고 설익어서 멀찍이 떨어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입니다.
일단은 속도가 문제입니다. 주인공이 괴물들을 처치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장이나, 개인적인 매력을 드러낼 여지가 다 잘려나간 채로 포탈셔틀만 하는 느낌입니다. 사람에게는 동기라는 게 있는데, 현 활약 때문에 무엇이 이득인지도 알 수가 없으며, 어떠한 감정적인 사명감도 없습니다. 코드나 명령을 입력한 대로 기계가 싸우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의도한 듯한 주인공의 단순함이 작품 전체를 본의아니게 지배하며 매력을 갉아먹습니다.
셋째, 작품이 그리는 큰 그림이 진부합니다.
‘세 번의 변화. 이를 시작으로 벽을 넘고 한계를 부수며 전 차원을 떨쳐 울린 뇌전의 지배자. 그의 일대기’
결과를 알고 시작한다면 더더욱 과정이 중요하지만, 그 과정이 신통치 않음은 앞서 말씀드렸고, 독자가 기대하는 결말조차 의문이 듭니다.
장르적 특성에 따르면 현대 레이드물에서는 단순한 강자 가지고는 큰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독자가 살고 있는 현대 한국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강자가 바꾸는 우리 세상, 혹은 세상 속에서 강자가 올라서는 위상, 대접 등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극명하고 정교하게 드러난 작품이 실탄 작가의 나는귀족이다입니다. 작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이런 부분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고, 작품이 발하는 고유의 빛깔이 달라집니다.
직선적인 강함에 대한 스토리 라인은 초반에는 강력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점점 한계를 드러내게 됩니다. 이 소설에서 그려나가는 그림이 과연 위와 같은 면을 충실히 담아낼 수 있을지 저는 의심스럽습니다. 제 의심이 기우이길 바랍니다.
저는 작가님의 전작 로만의 검공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작가님의 글 쓰는 스타일을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뇌전의 왕을 읽고 느낀 작은 의구심을 짧게 적어보았습니다. 작가님의 성실성과 더 좋은 글을 쓰고자 노력하는 열망에는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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