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동휘
작품명 : 절대기협
출판사 : 청어람
막나가는 제자와 철없는 사부는 이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엔 지루하고 개성없습니다. 그래서 절대기협을 보지 않으려 했으나 주변의 추천에 힘을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소재는 근래 많이 사용되어 모 아니면 도의 퀄리티를 보여왔습니다. 독자들은 멋모르고 입에 물었다가 혀를 데인 기억 때문에 많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왜냐면 등장인물의 대화와 생각 그리고 행동의 수준에 따라 천박하고 유치하단 생각이 들기 쉽기 때문에 어지간한 센스가 없다면 티끌처럼 꺼끌거리는 녀석들이 눈시울에 습기를 채워 가벼워진 돈주머니를 원망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센스가 있다면 그런 것들은 해결됩니다. 이 센스는 마치 작가의 이마에 경고등이라도 달은 듯 위험 수위를 절대로 넘어가지 않게 만듭니다. 센스는 타고나야 하고 이 센스를 우린 느낍니다. '이 작가가 쓴 소설은 그 작가가 발로 썼다고 할 지라도 재밌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가들이 있는데 이런 리스트에 오른 작가들은 독자의 감성을 적절히 충족시켜주는 나름의 스토리적 센스라던가 적절한 유머감각 혹은 독자가 재밌어할 코드를 꼭 포함시키는 센스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센스가 있다 판명되면 의심없이 차기작이나 전작을 뽑아들게 만드는 신뢰가 생성됩니다.
절대기협의 작가 이동휘도 이러한 센스를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취향이 다르거나 소재와 풀어나가는 이야기 자체에 별다른 매력을 못 느낀다면 애초에 미각이 꺼지고 켜진 곳이 다르니 재미없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그러한 내용 중 어떤 것에 알레르기가 생겨있다면 마찬가지로 거부하겠지만 사실 그러한 것들은 지상 전체의 어떤 소설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고 개인적인 호불호일 뿐이지요.
그런 분들이 아닌 이상 꽤 큰 재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강호주유기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노인 위세척은 우연히 영약과 영물을 발견하지만 능력이 안되어 눈 뜨고 바라만 보다가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그 근처 동굴에 매몰되어있던 이세민은 우연한 계기로 무의식 속에서 의도치 않게 위세척을 돕게 되고 동시에 영단을 자신도 모르게 삼키게 됩니다. 그 와중에 기억을 잃을만한 상처를 입습니다.
위세척은 이세민이 기억을 못한다는 것을 이용해 자신이 은혜를 입힌 것처럼 꾸미고 스승으로 행세하려 하고 이세민은 제자가 되지만 그다지 고마워하지 않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기 힘든 뻔뻔한 제자입니다. 그것도 내력이 엄청나게 강한 제자이지요.
나름의 중대한 목적을 위해 스승 위세척은 열심히 움직이고 그것을 돕기 위해 스승의 말에 따라 본신의 능력을 감추며 이 제자녀석이 돕게 되면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희극과 에피소드를 멋들어지게 꾸려낸 작품입니다.
절대기협은 최초 가졌던 의심이나 걱정스러움과 달리 천박한 대화나 비현실적 상황전개가 없이 이러한 먼치킨적 소재를 상당히 고급스럽게 진행하고 있었기에 기본요건을 충족시키며 편안히 재미를 감상할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것이 만족의 첫째 이유입니다.
주인공의 강함을 감춘다는 것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요. 저 같은 경우엔 강한 주인공이 흘러들어가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는 류의 소설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어릴적 붉은매를 좋아한 것도 그렇고 그래서 보표무적이나 사나운새벽 그리고 잠룡전설과 같이 많은 것을 감춘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잠룡전설 같은 경우엔 주인공에 대한 것이 늦게 드러날 수록 좋았기 때문에 정말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만 역시 사람들 성격이란 과연 다 다르더군요. 혹자들은 언제쯤 주인공 실력을 드러내냐며 조급해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전 참을성이 좋은 것인지 아마 주인공이 10권까지 계속 능력을 감췄을지라도 만족했을 겁니다. 이런게 취향이란 것이지요.
이런 제 취향을 절대기협은 적절히 충족시켜줬습니다. 주인공의 실력은 2권 끝마무리까지 충분히 감춰집니다. 적절한 상황에서 남들의 시선을 피해 적정한 무공을 사용하며 실력을 감춰나가는 주인공. 그것이 두번째로 만족하게 만든 점입니다. 제 취향에 일치한 관계로 기본조건에서 벗어나 점수를 따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는 유머러스함입니다. 단발성 대화로 웃기는 게 1서클 마법이라면 행동으로 웃기는 건 2서클 마법이고 장기적 대화로 녹여내 웃기는 건 3서클, 장기적 행동으로 웃기는 건 4서클, 스토리로 웃기는 건 5서클 마법입니다.
우리 독자마법사들은 1서클 마법이 성공하면 웃지만 실패할 경우 서클이 낮은 마법이었던 만큼 그 실패에 더더욱 냉혹함을 보입니다. 하지만 절대기협에 그러한 점은 원천봉쇄되었습니다. 절대기협 전체를 감싼 것은 유머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1서클의 유머는 거의 없습니다. 있더라도 100% 성공률을 가진 것만 적재적소에 조금씩 존재합니다.
최소 2서클에 4서클 마법을 구사합니다. 모습으로 웃기지 말로 웃기려 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캐스팅 행태도 어디에서 멈춰야 할지 어리버리하다 두리뭉실 중얼거리며 괜한 지방살을 붙이지 않습니다. 딱딱 근육질의 몸체만 남기고 큰 칼로 뚝뚝 썰어내듯 깔끔하게 웃깁니다. 유머의 결정적인 결과가 드러날 때 챕터도 함께 끝납니다. 그래서 유머가 딱 끝나고 나면 여운이 생깁니다. 그래서 더더욱 깔끔하단 거지요. 이것이 이 소설이 재밌었던 세번째 이유입니다. 이 유머감각이야말로 센스지요.
뭐 위에 말했던 세가지 이유가 절 만족시켰기 때문에 절대기협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어떤 맛있는 음식이라도 알레르기가 있으면 못 먹듯이 이러한 소재나 이야기 진행에 거부감이 있는 분이 아니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해리스표도의 도망자.
신승을 다시보는 듯 유쾌하고 기발한 재미가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임진광 작가는 주인공만을 곤란한 상황에 빠뜨려 놀렸던 정구작가를 넘어 주인공만 아니라 주인공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 또한 그 구렁텅이에 빠뜨립니다. 이 희극적인 일련의 진행은 점점 더 큰 세를 낳고 그것은 그대로 이 소설의 틀과 분위기를 갖추며 독자를 강한 웃음으로 몰고갑니다.
마찬가지로 저~ 위의 내용과 같은 맥락에서 4서클 유머 마법을 잘 구사하는 작가입니다. 군상들의 긴 행동들을 감상시키며 웃깁니다.
유일한 단점은 이 소설이 재미의 근원으로 삼고있는 자체에서 비롯됩니다. 소설 자체가 독특한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다른 소설과 차별화가 뚜렷한 점은 대단히 멋집니다.
대신 주인공이 성장하는 모습을 즐긴다거나 능력을 감추는 것을 즐기는 사람에겐 당연하다싶은 그런 즐거움이 그다지 주어지지 않습니다.
야구에서 공은 주인공이나 다름 없지요. 지 혼자 다 해먹으니까요. 방망이에 치여 이리치이고 저리 치이고 점수 내고... 야구의 모든 진행은 이 공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야구경기를 시청하며 사람들이 공에 애착을 느끼던가요? 팀간의 격돌이나 우세 그리고 역전극등 극 자체에 재미를 느끼지요.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서도 공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움직이는 해리스표도보다는 공을 치는 타격감이라거나 공이 통통 튀며 잔디밭을 흐트러트리는 모습이나 그 공을 향해 필사적으로 뛰어가는 캐쳐의 모습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공 자체에 대한 독자의 애정도나 몰입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이 소설의 문제점이 아닙니다. 이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다른 점이 아쉬운 것또한 사실입니다.
정구작가가 신승 이래로 최근작 박빙에서 다시 이러한 분위기의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신승의 재미는 주인공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착실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이 강해지는 모습을 보며 주인공과 싱크로가 점점 맞아 떨어져 감정적으로 빠져들게 되었었습니다. 남들 몰래 실력을 감추고 이득을 착실히 보는 모습도 큰 재미를 주었지요.
하지만 박빙은 좀더 본격적으로 주인공을 굴리고 희극적 상황을 연출하는데 집중하고 이외의 것들은 뺐지요. 그래서 박빙은 제 취향에 맞지 않았고 결국 포기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해리수표도의 도망자는 일단 시시때때로 터지는 웃기는 상황이 정말 많았고 창의력과 순발력과 기발함이 대단했습니다만 그 독특함이 독특함으로 치닫는 만큼 제가 장르소설을 읽으며 항상 입맛을 다시게 했던 제가 가장 좋아하는 류의 조미료들이 빠진만큼 열광할 순 없었습니다.
마치 다른 나라에 가면 그나라 음식이 입에 맞지 않듯 말입니다. 절대 그 음식들이 맛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너무 달라 그러한 음식을 즐기지 않던 다른 나라 사람 입에는 맞지 않는 것처럼...
뭐 그런 고로 도망자는 대단히 발칙한 재미로 그 뛰어남을 드러내 보였지만 개인적 취향상 아쉬움을 안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습니다. 꼭 볼만한 작품입니다.
다분히 제 취향에 맞춘 감상이었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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