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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4 임재영
작성
08.01.16 18:54
조회
2,381

작가명 : 하지은

작품명 : 얼음나무 숲

출판사 : 노블레스 클럽, 로크미디어

첫 키스를 할 때 느꼈던 두근거림.

첫 이별에 눈물을 터트리며 몸서리를 치던 기억.

책을 다 읽고 이렇게나 공황에 빠져본 것이 언제인지, 돌이켜 생각해도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근래 국내작품들을 보면서는, 안타깝지만 실망 이상의 무언가를 느껴본 기억이 없다.

추리가 유행이라니 우후죽순 추리작품이 쏟아지고, 서정문학이 잘 팔린다니 너도나도 서정 분위기만 추구하고, 요즘은 팩션Faction이 대세라며-역사에 대한 작품을 폄하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또 팩션의 출간 비중이 높아지는 실정이다.

근래 번역소설에 매달린 것도 그 탓이리라.

적어도 번역소설은 장르의 한계성이 없다. 모든 글이 참신하다 말하긴 힘들겠지만 적어도 매번 새로움을 읽어낸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재미를 추구한다.

얼음나무 숲은 그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판타지? 환상문학? 추리? 미스터리?

대체 얼음나무 숲은 그 장르를 어디에 둬야 하는가?

그런 정체성의 혼란을 차치하더라도 얼음나무 숲은 독서의 즐거움을 오랜만에 되살려 준 멋진 작품이었다. 읽으면서 내내 떠나지 않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강렬함이 계속 귓가를 자극했다면 나는 오히려 얼음나무 숲을 폄하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 하지은은 놀랍게도 그 강렬함 뒤에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만남과 같은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내포시켰다.

셋의 만남은 그저 우연에 불과했으나, 글을 읽는 내내 그 우연은 자신의 모습을 점차 키우더니 급기야 운명으로까지 발전시킨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 우연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작가의 외침일까?

그 셋은 서로를 다독이고 또 때론 질투하며 마음과는 달리 서로에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와 너무도 흡사하다. 얼음나무 숲을 읽는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 한 이유는 바로 그 뜻 모를 슬픔이 가진 힘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서글프고도 고독한 마에스트로 바옐.

그는 우리가 꿈꾸는 슬픔을 대변한다. 강렬하게 다가와 항상 그 자리를 꿰차고 있음에도 언제나 홀로 버려진 듯한 또 다른 아픔을 말한다.

연주자로서는 평범하지만 인간으로선 훌륭한 트리스탄.

그를 보면 즐겁다. 우리네의 곁에 항상 있는 좋은 친구, 좋은 사람의 향기가 머문다. 그가 기뻐하면 우리도 기쁘고, 그가 슬퍼하면 우리도 슬퍼한다. 그의 존재는 우리가 바라는 가장 이상향적 친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소심하지만 누구보다도 격정적인 고요.

우린 그의 눈을 통해 얼음나무 숲을 보고, 그의 입을 통해 얼음나무 숲을 듣는다. 그는 우리 그 자체이다. 자신의 의견을 잘 말하지 못하는, 남을 너무 배려하기에 스스로는 한껏 비하시키고 마는 우리, 그 자체이다. 그 한 가지에 사로잡혀 한껏 광기로 빠져들고, 또 다시 그 사실을 슬퍼하는 것조차 그렇다.

여기까지라면 차라리 편했을까?

작가 하지은의 놀라운 상상력은 이것에 머물지 않는다. 변해가는 사람들의 틈바귀에서 죄책감이란 자체가 순수라는 놀라운 언변을 뿜어낸다.

그리고 저주.

에단 사람들의 그 가식에 지쳐갈 즈음, 작가 하지은은 그 고결한 저주를 통해 주위를 환기시킨다. 그때까지의 모든 달콤함은 씻은 듯 사라지고, 그저 차갑게 변한 겨울바람만이 전신을 어우른다.

대체 작가 하지은은 무얼 말하려는 것일까?

그런 것은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 작품은 첫 페이지를 넘기는 그때부터 어차피 끝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 단언컨대, 두꺼웠던 책이 점차 얇아지며 손에 들린 무게가 가벼워짐에 따라, 참을 수 없는 갈증에 허덕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얼음나무 숲, 그 잔인한 아름다움에 일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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