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내
작품명 : 카디스
출판사 :
인간은 항상 영생을 꿈꾼다. 동시에 영생은 인간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 지점의 모순이 이야기를 만든다. 불멸을 찾아 떠도는 갈가메쉬이야기는 인간의 한계와 그럼에도 인간이 가지게 되는 영생의 갈망을 동시에 그리고 있다. 영생은 때로 신성, 완벽한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드라큘라이야기처럼 악마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희망을 위한 찬가에서 갈가메쉬와 근친이 같이 다루어진 것은 그것들이 모두 인간성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다른 지평으로의 도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자세한 설명은 네타라서 생략)
이야기 소재로서 영생이 가지는 재미에도 불구하고 장르소설들이 이 소재를 다루지 않는 것은 영원한 삶을 가진 주인공을 가지고 글에 긴장감을 주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죽음을 주인공의 위기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는 독자가 몰입하기 쉽지않다. 독자가 몰입하기 위해서는 다른 매력적인 요소를 만들거나 죽어서는 안될 다른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카디스는 주인공에게 동기를 줌으로서 이야기를 끌고나갈 힘을 준다. 영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주인공의 갈망이 이야기에 몰입도를 더한다. 이것 역시 전형적 레토릭의 하나지만 장르소설에서 이런 캐릭터는 악역으로 자주 시도됬을 지언정 주인공이 이랬던 경우는 드물다. 자신의 비밀을 풀고 죽음을 맞으려는 주인공과 그런 주인공을 방해하거나, 이용하려고 하는 신들의 대립은 소설에 긴장감을 더한다. 문제는 죽느냐 죽지 않느냐가 아니라, 그가 숙명을 이겨내느냐 이겨내지 못하느냐이고, 주인공의 영생은 꽉짜여진 소설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카디스는 잘 쓰여진 장르소설이다. 장르소설로서는 의외성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영생에 묶인 인간이 결국 신으로 거듭난다는 이야기는 독자가 예상가능한 범위안에 있다. 영생이라는 소재를 조금 더 의외의 방향으로 비틀었으면 더 재밌을 뻔 했다. (어디까지나 내 의견이다.)
Commen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