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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HK에 어서오세요! - 타키모토 타츠히코
리얼 히키코모리(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집에 틀어박혀 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고 은둔형 생활을 하는 사람. 한국 명칭은 은둔형 외톨이. 속된 말로는 방구석 폐인) 백서.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하고 둘 다 접해봤습니다만, 이 원작 소설이 가장 좋더군요. 원작 소설을 가장 나중에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작가의 필력이 아주 끝내줍니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넉두리에서는 절로 우울해지고, 주인공이 약을 하고 맛이 가 있을때는 읽는 사람도 정신이 훼까닥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우울한 이야기를 경쾌하고 유쾌하게 쓰는 데에는 도가 텄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작가 자신이 히키코모리였다가 '글쓰기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 케이스지요. 그렇기 때문에 진짜 히키코모리의 심리와 생활이 굉장히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특히 등장인물들, 타츠히로, 야마자키, 미사키의 독백과 푸념과 절규 섞인 이야기는 그야말로 가슴에 칼이 되어 팍팍 박힙니다. 누구나 생각해 봤을 것. 누구나 느껴봤을 것. 그들은 그것들이 조금 더 심했을 뿐입니다. 결코 우리와 '다른 길'을 간 인간들이 아니라, 우리 '앞에 있는 사람들'인 겁니다.
"자주 있지 않습니까, 젊고 멋진 두 배우가 청춘이나 연애 같은 것을 의논하면서 비에 젖은 공원 같은 데서 치고 박고 하는 드라마. '너는 진짜 사랑을 몰라!' '뭐야, 나는 히토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어!' '퍽!' '빡-!' 하는 느낌의... 저는 말이죠, 그런 느낌의 드라마를 마음속으로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 안에는 진실이 있으니까요. 기승전결이 있고, 감정의 폭발이 있고, 결론이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한편으로 우리들의 생활은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어렴풋하고 희미한 불안에 가득 차 있을 뿐입니다. 알기 쉬운 드라마든가, 알기 쉬운 사건이라든가, 알기 쉬운 대결이라든가, 그런 것이 하나도 없어요. ... 그건 말이죠, 조금 부조리하잖아요? 저는 스무살이고, 사토 선배는 스물둘이에요. 그런데도 정말로 사람을 좋아한다든가, 정말로 사람을 미워한다든가, 애증 끝에 치고 박고 해본다든가, 그런 경험이 전혀 없어요. 정말 비참하죠." - 본문 中 야마자키의 대사
"애초부터 하나님은 말이야, 만약 정말로 있다면, 사실은 굉장한 악당이야. 내가 통합적으로 생각한 결과, 그런 결론이 나왔어. 인간의 일생이란 괴로운 것과 즐거운 것의 비율이 분명히 9대 1 정도입니다. 저번에 확실히 노트에 적어서 계산해봤거든. 봐, 이 원그래프. 이걸 보면 일목요연하게 즐겁구나 라든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라든가 하는 그런 행복한 한때는 인생의 1할도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계산기로 계산했으니까 틀림없어. 그러니까 말이죠, 일부러 이런 괴로운 세상을 만든 하나님은 분명 굉장히 심술궂은 녀석입니다 ...그렇지? 논리적인 얘기지?"
"하지만 아까 미사키는 하나님을 믿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어?"
"응. 믿고 싶어. 있어줬으면 좋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그런 악한 하나님이 있다면, 반대로 우리는 기운차게 살아갈 수 있어. 하나님에게 불행의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면, 반대로 그만큼 우리는 완전히 안심할 수 있잖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어. 하나님은 나쁜 녀석이지만, 그래도 분명히 행복해질 수 있어. 문제는.. 나의 상상력이 빈곤해서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 봐, 성서인가 무엇인가처럼 눈앞에 멋지고 굉장한 기적 같은게 일어나주면 좋을 텐데 말이야..." - 본문 中 미사키와 타츠히로의 대화
"외로워."
"외롭지는 않아."
"거짓말."
"거짓말이 아냐."
"외롭구나."
"그래, 외롭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외로운 건 당연해! 외로운 게 싫은 것도 당연해! 그래서 나는 방구석에 처박히는 거다. 히키코모리가 된 거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것이 최고의 해결책이라는 걸 알겠지? 이봐, 알겠지? 알겠어? 내가 말하는 걸 잘 들어. 그러면 알 수 있어. 어떤 사람이라도 손에 잡은 듯이 알 수 있어. 말하자면, 즉, 우리는 외로우니까 히키코모리가 되는 거야. 이 이상,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으니까 방에 쳐박혀서 사는 거야. 이봐, 알겠지? 이것이 대답이다! 나는 누구보다는 욕심쟁이야. 어중간한 행복은 원하지 않아. 뜨뜻미지근한 온기 따위 필요 없어.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행복을 원해. 하지만 그건 무리야!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상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방해가 들어와. 소중한 것은 순식간에 부서져. ... 22년이나 살아왔어. 그 정도는 안다고. 어떤 것이라도 부서지는 거야. 그러니까 처음부터 아무것도 필요 없는 쪽이 나아." - 본문 中 타츠히로와 미사키의 대화
하지만 이 '리얼한' 글에서의 해결책은 그다지 '리얼'하지 못했다는게 아쉬울까요. 분명히 감동적인 결말이긴 했지만, 결국 '타인을 위해 살아라' 식의 결말인데, 소설에서의 미사키 같은 그 '타인'이 우선 나타나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 보이니까.
어쨌든 책을 읽는 동안 이토록 심한 '공감'을 느끼며, 책 내용에 '몰입' 해 본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슴에 직접 닿이는 글이었습니다.
2. 우부메의 여름 - 교고쿠 나츠히코
교고쿠도 시리즈 1권입니다. 작가가 출판사에 직접 들고가서 작가 데뷔가 이루어졌으며, 그 사건을 계기로 출판사에 직접 원고를 들고 오면 즉석해서 심사하고 상을 주는 '메피스토 상'이 만들어지게 되었지요.
일단 이 소설은 추리소설입니다. 3류 소설가인 화자 '세키구치'에게는 기묘한 친구가 있습니다. 신사 신주와 고서점 주인이라는 신분을 함께 가지고 있는 '추젠지 아키히코', 일명 '교고쿠도'입니다. 그는 폭 넓은 지식을 지닌 독서가이자 달변가로, 세키구치는 그와 고교 동창입니다.
세키구치는 어느 날, '20개월 이상 임신하고 있는 여인'의 관한 소문을 듣고, 그에게 의논합니다. 세키구치는 가십 잡지에 요괴나 심령현상 관련 기사를 익명으로 팔기도 했으므로, 그에 관한 깊은 조예를 가진 교고쿠도를 찾은 것이지요. 하지만 교고쿠도는 그런 행위에 대한 위험성과 경솔함을 꾸짖고, 세키구치는 이 건에 대해 손을 땝니다.
하지만 세키구치의 친구이자 탐정인 에노키즈 레이지로에게 소문의 그 여인의 남편의 실종 수사 의뢰가 들어오고, 그 여인의 남편이 마찬가지로 자신의 고교 동창인 것을 알게 되자 이 사건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됩니다.
이 우부메의 여름의 압권인 장면은, 온갖 심령현상, 요괴, 주술로 점철되어 있던 것 같은 기묘한 사건이, 교고쿠도의 달변에 의해 과학적, 민속학적, 논리적으로 정연되어 진상이 들어나는 해설 장면입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저주를 풀어주게'라는 세키구치의 애원부터 이어지는 음양사 버젼 교고쿠도의 카리스마는 그야말로 압도당할 정도입니다.
다음 권을 읽어보고 싶은 심정이 간절합니다만, 분량과 자금의 압박이 상당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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