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한상운
작품명 :
출판사 : 무림사계
이런 용어가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대강 의미는 통할 것 같아서 써 본다. '미시적 쓰기'와 '거시적 쓰기'. 정립된 용어가 아닌 '내멋대로' 용어이니 응당 설명이 필요할 터이다. (문학에서 이를 칭하는 명칭이 따로 있을 듯하지만 공학계열자라 몰라서 이렇게 써 봤다)
주인공이 작은 방에 들어갔다고 생각해 보자. 이 순간 작가의 설명/묘사가 시작된다. 관객은 주인공이 그것을 인지하든 못하든 작가의 설명/묘사를 통해 방 내부의 모습을 알게 된다. 이것이 내멋대로 '거시적 쓰기'이다.
마찬가지 조건에서, 이번에는 작가가 방 내부의 모습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이 어떤 것을 인지하고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면 작가도 함께 설명/묘사를 시작한다. 즉, 관객은 작가와 더불어 마냥 전지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에 의지한, 절름발이 전지자이다. 이것이 내멋대로 '미시적 쓰기'이다.
무림사계의 초반, 독자는 주인공의 이름을 알 방법도 알지 못하고 읽기를 시작한다. 제법 긴 시간동안 그 '무지'는 계속 이어진다. 왜냐면, 무림사계라는 글이 '미시적 쓰기'로 쓰여진 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등장인물들이 주인공의 이름을 말할 일이 없으니 알 기회조차 없는 셈이다.
그러다가 작 중 '양수전(아마도)'이라는 자가 주인공의 이름을 묻고서야 독자도 함께 그 이름을 얻어 듣게 된다. 아하! 이 작자의 이름이 이것이구나!
주인공의 과거 역시 마찬가지다. 굳이 작가의 의도가 끼어들어 그것을 장막 뒤에 숨겨 놓은 것이 아니다. 다만, 등장인물들이 주인공의 과거에 대해 깊게 파고드는 일이 적었고, 주인공의 사고과정 자체도 자신의 과거를 되새기기 꺼려하니 그렇게 되었다. 숨기지 않았으나 숨겨진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독자는 괴이한 압박감을 받는다.
거시적 쓰기로 쓰여진 글이야 편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다. 주인공이 그것을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쳐도, 등장인물들이 제 입으로 말해 주지 않아도 작가가 친절하게 설명과 묘사를 곁들인다. 진정한 전능자로서 '내려다볼' 수 있다. 심지어는 '쯧쯧, 저녀석은 모르는군.' 라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시적 쓰기로 쓰여졌기에 독자는 등장인물이 바라보는 것 하나, 말하는 것 하나에 집중해야만 한다. 놓친다면 다시 읽는 수밖에 남지 않는다. 주인공이 그것을 모르고 지나쳐 버린다면 독자도 모르고 지나치게 된다. 독자가 느끼는 긴박감은 높아진다.
이 미시적 쓰기라는 말은 얼핏 1인칭 시점에 대해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3인칭 시점에서도 미시적 쓰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대표적 예가 '추리소설'들이다. 하긴, 작가가 하나하나 다 까발린다면 추리소설의 어느 구석에 긴장감이 곁들여질 수 있을까.
게다가 거시적/미시적 쓰기를 번갈아 사용하며 현을 조율하듯 당겼다가 놓는 수도 있다. 독자는 작가에게 좋은 의미의 농락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어라? 이상한 이야기를 너무 오래 했다. 무림사계를 보자.
'공학계열자 글 무지렁이'일 뿐인 내가 보기에 무림사계는 미시적 쓰기가 가능한 최대의 선까지 쓰인 글이다. 1권 반이 지나서야 주인공 이름을 처음 들었다는 것만 봐도 충분히 그런 듯하다. 대체 등장인물들의 과거가 어찌 얽혔고, 그들 배후에 누가 있는지, 등장인물들이 수상하다고 말해 주지 않으면 수상한 줄도 모른다.
그러니 가뭄에 콩 나듯 등장인물들이 던져 주는 말 한마디 행동 한 조각은 진정 가뭄의 단비가 된다. 어렴풋 알쏭달쏭 어리버리 안개 속에 나타난 등대다. "오오오! 그랬군!"
그런 패턴(?)을 깨닫게 된 독자는 몰두라는 늪으로 빠져 든다. 왜? 놓치면 안 되니까. 놓치면 기회가 없으니까. 작가는 설명해 주지 않으니까.
그래. 빠져 든다, 빠져 들어. 감이 온다. 감이 와.
이 위에 이야기가 얽혀들기 시작한다. 독자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등장인물들에 대해서도 아직 다 모르겠는데, 이야기의 한 치 앞이 짐작도 안 된다. 단편적인 과거와 조각난 현재가 얽히니 이 실이 저 고리에 꿰이는지, 저 실이 이 고리에 꿰이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 혼란 속에서 의지할 것은 등장인물들 뿐이다. (작가는 더 못 믿는다. 낄낄)
결과적으로 독자는 등장인물과 함께 작 중 세상을 헤쳐 나가게 된다. 마치 괴상한 안경을 쓴 채 3D 입체 영화를 볼 때처럼 자신이 등장인물이라도 된 듯 느낀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그해 여름'이 다 지났을 때에야 한 시름 놓게 된다. "드디어 일단락 되었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해 가을'에서 뒤통수를 맞고 만다. "이건 뭔가? 끝나지 않았잖아?" 맞추어진 줄 알았던 조각은 여전히 제각각이고, 등장인물의 과거는 더욱 호기심을 끈다.
이쯤 되면 이건 중독이다. 어찌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하겠다. 감이 온다. 감이 와.
...괴팍한 감상문이었지만, 요는 읽어 보시라는 것.
한상운 님의 '무림사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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