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희매
작품명 : 선수무적
출판사 : 마루
누명을 쓰고 죽은 아버지에 대한 슬픔으로 가족 외의 사람들을 믿지 않게 된 주인공은 토끼를 잡으려다 동굴에서 선인의 비기를 얻어 엄청난 능력을 갖게 됩니다. 선인의 유지를 받들어 초극기운을 회수하기 위해 세상에 나서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다뤘습니다.
이 소설은 미묘한 선에 걸쳐 있습니다. 더 가벼워지면 선을 크게 넘어 거슬림을 줄 테지만 어정쩡한 위치에 있기에 개인차에 따라 미세하게 갈리게 됩니다.
소설의 분위기는 밝고 유쾌한 풍입니다. 그것만이라면 문제될 게 없지만 조연급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동등이 약간 스치듯 오버하여 표현되는 경우가 있기에 일부 독자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인물의 개성표현이 지나쳐 무개념스럽다고 느껴질 부분이 있고 이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우려가 존재하지만 미미한 편이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한 주인공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이 힘을 적절히 표출하여 주인공을 잘 띄우고 있기 때문에 독자에게 큰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이정도라면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오히려 마음에만 맞는다면 꽤나 속도감있고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읽으면서 가장 의아하고 아쉬웠던 것은 따로 있습니다.
작가가 사건을 서술하는 능력을 보면 세상을 미워하는 주인공을 자신의 의도를 최대한 살려 표현해낼 수 있었을 텐대 그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문에서 주인공은 어릴적 좁고 작은 세상에서 겪은 불행으로 인해 굉장히 편협하고, 외골수적이라 표현됩니다.
그리고 첫 장부터 독백과도 같은 주인공의 다짐을 읽게 됩니다.
[세상이 내 아버지를 죽였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아버지와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어. 심지어 가족들마저도...정말 가슴이 터져버려 미칠 것만 같아. 만약.. 만약.. 내게 그럴 힘만 주어진다면 세상 모두를 지워버릴거야. 하나도 남김없이. 추악한 인간들을 단 한놈도 이 세상에 남겨두지 않을 거야.]
그러나 곧 등장하는 주인공은 위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동굴 밖으로 나오자 칠흑같은 밤이 된 것을 안 주인공 백무로는 어머님께 혼날 것을 알고 조급해집니다. 그는 금빛 곰이자 영성을 가진 동물인 흑아의 머리를 쎄게 갈깁니다.
"뭐야 인마! 너 때문에 또 늦었잖아! 밤이 되면 신호하라고 했어, 안했어, 안했어? 응!"
그리곤 "흑아 별부 잘 보고 있어. 내일 올게."라며 집으로 내려갑니다. 이후 주인공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어머님께 늦게 돌아온 것에 대해 사과하고 어머니와 할아버지를 자신의 기운을 이용해 안마해 드리고 세맥을 활성화시켜 드립니다. 이미 그들은 추궁과혈로 인해 고수 저리가라 할 정도로 건강하며 강해진 상태입니다. 이어 주인공은 할아버지 장수를 위해 산삼을 캐러 가겠다는 가벼운 농담으로 따뜻한 가족애의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느껴지는 주인공의 말투와 행동 모두 편협하거나 외골수이거나 아니면 뭔가 분노로 가득차 있다고는 전혀 느낄 수가 없습니다.
이 챕터에서 풍겨오는 분위기를 바탕으로 생각나는 대로 몇가지 형용사를 읊어 보면, "장난기어린, 치기어린, 정감있는, 부끄러운, 따뜻한, 활달한, 행복"과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이 묘한 괴리감 때문에 처음에는 아직 아버지가 죽기 전의 생활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이미 주인공의 아버지는 죽은 후였습니다.
주인공의 음울한 분위기를 예상했던 저는 매우 의아했습니다.
처음 독기어린 독백에서의 분위기와 주인공의 활달한 생활모습은 동일인물이라 판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인기피증이나 폐쇄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외부 뿐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문제를 일으킵니다.
작중 상황처럼 청소년기의 인물이 아버지가 누명을 써 죽음을 얻게 되고 이로인해 고립감과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될 경우 그러한 고통과 아픔은 일상 곳곳에서 공격적 성향으로 표출됩니다.
이것이 일반론이며 제가 처음 작가의 서문과 처음의 독백을 바탕으로 상상했던 주인공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문제점은 오로지 외부인에게만 배타적인 공격성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주인공은 선기를 품고 있었기에 올바른 심성을 가진 것이 가능하며 단지 특정한 관념을 자극할 경우에만 공격성이 생성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반인의 경우에도 '가족적인 인종차별주의자'처럼 대하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이중성을 가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위기가 문제가 됩니다. 주인공의 활달한 평소 성격 뿐만 아니라, 영물 황금 곰과 호랑이가 재롱을 피우며 소설의 분위기를 쾌활하게 유도합니다. 이처럼 가벼운 분위기로 인해 주인공의 불행은 상당히 빛을 잃었습니다. 주인공의 현 상황과 심정적 분노가 크게 맘에 와 닿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만약 중심주제대로 주인공의 변화에서 독자의 감정을 캐어내고자 한다면, 주인공의 심리적 상처가 가정에서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도록 일관화시켜서 모난 성격을 좀더 명확히 해야 했다고 봅니다. 그래야 이를 서서히 치유해나가는 과정에서의 맛이 더 살았을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주인공이 편협하고 외골수적인 성격이라는 것을 독자가 쉽게 느끼고 이에 공감할 수 있도록 사소한 버릇이라거나 편집적 행동, 비이성적 대응등 다양한 방식의 작은 요소들을 배치해 놓았다면 좀더 세심하게 독자의 감정을 흔들 수 있었을 텐대 직접적인 감정서술에만 집중한 것 같습니다.
사실 분위기 자체가 밝고 경쾌하고 가볍기 때문에 중심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에 큰 무리가 있습니다. 문체와 등장인물도 그에 맞게 변화시켜 분위기를 처음엔 약간 음울하게 살려가다가 이후 주인공의 변화에 맞춰 변동을 줬다면 큰 감동을 줄 수 있을텐대 시작부터 불행을 찾아볼 수 없이 모든 것이 돛단 듯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주제와는 약간 모순적인 분위기였다는 평입니다.
때문에 소설의 중점이 강한 무공으로 활보하는 것이 주(主)고 주인공의 변화하는 모습은 객(客)으로 느껴졌습니다.
덕분에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지만 작품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살리는 것엔 그다지 안점을 두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강함을 맘편히 즐긴다면 그 부분에서는 상당한 재미를 주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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