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온다 리쿠
작품명 : 황혼녘 백합의 뼈
출판사 : 북폴리오
온다 리쿠라는 일본 작가가 있다.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직접 소설을 읽어볼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는 꽤 말초신경적 인간이라
간질간질한 이야기,
그럴듯하게 포장한 당연한 이야기,
쓰잘데기 없이 심각한 현실의 일면을 보여주는 이야기,
다시 말해서 일반문학 내지
그 근처 언저리 것들을 싫어하니까.
즉 자극적인 걸 좋아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다가 우연히
온다 리쿠의 소설을 접할 계기가 생겼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손에 쥐고 몇장 읽자,
점점 빠져들어 가게 되었다.
내가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온다 리쿠 소설은 밋밋하지 않았고,
오히려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내가 읽은 소설, '황혼녘 백합의 뼈'는
일견 조용하고 침잠되어 있는 분위기를 풍긴다.
마녀의 집이라 불리는 곳에 사는
미모의 여성들, 소녀와 소년들....
그저 유산 다툼 약간 나오고,
사랑과 청춘의 고민이 약간 나오고,
뭐 그런 분위기인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게 다가 아니다.
특히 한 소녀가 존재함으로 인해서....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내가 푹 빠져버린,
일본판 팜므파탈 같은 소녀 '미즈노 리세'다.
리세는 굉장히 독특한 여자아이다.
그녀는 16살, 영국에서 유학 중 돌아온 소녀다.
무척 차분해 보인다.
조용조용히 말한다.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화려하진 않지만 단아하다.
몸이 약한 한 소년은 그녀 주변만이
시원한 호수같다고 생각한다.
그는 항상 미열에 시달리지만,
리세에게선 청량함을 느낀다.
사랑을 잘 모르는 한 소년은
왠지 그녀를 빼앗기기 싫어한다.
전혀 답지 않게 말을 걸고,
그 목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말에 따를 수 밖에 없게 된다.
어둠 속에서 사는 한 청년은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소녀라 한다.
밝은 세상에서 밝은 것만 보는 한 청년에겐
그녀가 영원한 첫사랑이다.
그러나 리세는 '어두운 쪽'의 소녀이기도 하다.
그녀는 '악'이야 말로 지고한 것이라 여기고 있고,
선함 따위 악 위에 떠 있는
물방울 하나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 아이다.
그녀의 정혼자는 장래에
유럽의 어둠을 지배하는 존재가 될 자이며,
그녀 역시 그의 파트너로써 예비되어 있다.
스스로도 역시 어둠의 지배자 중 하나인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다.
리세는 굉장히 복잡한 존재다.
아직 미숙한 소녀지만,
또한 성숙한 여인이기도 하다.
첫사랑의 그녀이면서도
어느 순간 마녀가 되어 이용하고 휘두른다.
다른 소녀들과 너무나 다름을 느끼지만,
사실 스스로도 아직은 자기 역시 소녀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매력 또한 충분히 알고 있고,
알게 모르게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여자'이기도 하다.
거칠어 보이지만 사실 상냥하고 올곧은 소년에게도,
항상 열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병약한 소년에게도,
리세는 동경하는 그녀다.
그러나 어린 시절, 너무나 좋아했던 와타루..
그 소녀시절과 작별을 고하기 위해
자기를 사랑한다 말하는 그와 침실로 향하는 리세는
정말 마성의 소녀, 바로 그것이다.
이 '황혼녘 백합의 뼈'라는
소설은 그 자체로 엄청 재밌다.
중간중간 깔린 복선은
나중에 큰 즐거움이 되어주고,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스토리 전개도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리세라는 소녀가 없었다면
이처럼 독특한 울림을 가진
이야기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누구나 가끔은 이런 존재를 바라지 않을까?
그저 그렇게 생긴 세상에서
그저 그렇게 사람들과 부대끼며
그저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리세같은 존재를 바라지 않을까?
마음을 빼앗아갈 누군가를.
내 영혼을 흔들어줄 누군가를.
오늘은 미즈노 리세의 날이다.
http://blog.naver.com/serpent/11002006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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