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운곡
작품명 : 검단하
출판사 : 청어람
검단하. 이미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못 보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비평란에서 전 이 소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을 읽어 보았습니다. 평이 약간씩 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모든 이야기의 이면엔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이란 전제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이 소설을 안 보신 분들은 지금쯤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재밌다는 건가 재미없다는 건가? 이 소설은 어떤 소설인가? 빌릴까 말까? 약간 수고해서라도 근처 책방에 없다면 멀리까지 가더라도 빌릴만한 책인가 아닌가?
다분히 제 취향에 맞추어 이 소설이 제게 어떠한 느낌을 주었는가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이 취향이라는 것은 저의 절대무기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옳다 틀리다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취향은 이 소설에서 저와 다른 것을 느낀 사람의 취향과 다릅니다.
그런 제 취향에 의거하여 이 검단하란 소설이 저에게 어떠한 감상을 주었는지 철저히 주관적인 ‘감상’으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공 진완은 산골마을에서 도끼질하며 벌어먹는 나이어린 소년입니다. 하지만 사내다운 거친 면이 강합니다. 입이 걸고 돌려 말하질 않으며 직선적입니다. 꺾이지 않습니다.
이 녀석은 열 네 살의 어린 나이에 사랑에 빠집니다. 그 거칠고 순진한 동심의 사랑은 성인이 막 되었을 때까지 계속되지만 그녀가 다른 이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야밤도주를 하기 위해 약속을 잡습니다. 하지만 한 무림고수가 무심련의 련주 후보인 백팔룡 중 하나로 만들기 위해 그 야밤에 그를 납치해 가게 되고 그들은 만나지 못합니다.
이 후 진완은 회유되어 일시적으로 무심련에서 백팔룡인 척 하겠으나 곧 빠져나와 그녀와 결혼할 것을 약속받고 무심련에서 훈련받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1. 무게
이 소설을 읽다보면 다들 약간 무겁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실제 평가를 보더라도 잔잔하다, 정이 느껴진다, 분위기 있다, 십대주인공의 무개념 먼치킨과 달리 주류에 벗어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 또한 그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무겁다? 아닙니다. 이 소설은 가볍습니다. 장중함과 무거움, 경쾌함과 가벼움 사이를 헤매다 가벼움에 안착해 버렸습니다. 가벼운 동시에 무거운 것이 아니라 앞은 무겁고 뒤는 가볍기 때문에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소설의 무게를 결정하는 것에는 묘사가 주는 무게가 있습니다. 소설의 배경과 세계관 그리고 벌어지는 사건을 보여주는 시점이 묘사에 의해 독자의 상상 속에 어떻게 실체화 되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무게감도 달라집니다.
이 소설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인물들의 외형적 묘사는 진중한 편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무게감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가볍습니다. 그것은 바로 등장인물들의 대화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는 검단하에서의 대화가 단순히 사건 묘사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고 항상 상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차지하기 때문이지요.
다른 소설에서는 흔히 주인공이 행동을 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관련 대화가 나오지만, 검단하에서는 주인공이 그 세상에서 비상식적이고 돌발적인 말을 하여 다른 사람들을 격동 시키고 그 결과로 반응과 행동이 이루어지고 상황이 움직이며 크게는 사건이 결론납니다.
이것은 주인공 캐릭터의 개성이 워낙 소설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데 문제는 이 가벼운 풍의 대화가 소설에 일으키는 파장이 워낙 크다는 것입니다. 대화가 가벼우니 파장도 가벼운 분위기를 띄게 되고 결국 소설은 가벼워집니다.
하지만 소설의 풍을 읽기가 혼란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강호의 냉정함과 비정함 그리고 진중함을 이야기 하는 듯한 무거운 앞부분, 그리고 현실성의 모를 둥글둥글하게 깎아내며 흘러가는 듯한 가벼운 뒷부분이 묘하게 상충되기 때문입니다.
묘사의 진중함과 대화의 가벼움 사이의 묘한 불일치가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무공교두 셋을 표현하는 부분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어떤 잔혹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것이 바로 강호라며 옹호할 만큼 비정하게 백팔룡들을 가르치는 인물들입니다. 백팔룡들에게 주어지는 과제들은 이들에 의해서 감독되고 시행되는데 이 과제들을 수행하지 못하면 난폭하고 가차없는 벌을 받게 됩니다. 이들은 처음에 더없이 엄숙하고 잔혹하고 진중하게 표현되며 강호의 축소판이자 공간의 조정자로서 냉정한 현실의 묘사에 가장 큰 임무를 부여받은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호광과 다른 두 교두의 대화와 생각은 짧고 가볍습니다. 현실의 비정함과 고난을 상징하는 고정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며 이들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선 밖으로 나가는 것을 통제하지 못하며 이들 또한 주인공에게 당하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소설의 풍이 가장 크게 변한 전환점은 바로 그 부분에서부터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근래 추세를 그대로 반영한 듯 보입니다. 검단하는 근래 추세에 역행하는 소설이 아닙니다. 쓰고 싶은 주제로 소설을 썼지만 근래 추세를 반영하려 애를 썼습니다.
때문에 위와 같이 가벼움을 일부러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검단하는 가볍습니다. 주인공이 가진 마교에 대한 동정적 인식을 증거로 선과 악의 단순구조를 표현하지 않았다며 그것이 검단하가 가볍지 않은 이유라 말할 순 없습니다. 근래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그 정도의 인식은 대부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검단하는 시원하고 호쾌합니다. 검단하의 주인공은 꺾이지 않습니다. 무공이 없을 때도 꺾이지 않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꼭 했고 자기가 하고 싶은 행동은 꼭 했으며 또한 그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당한 피해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그는 일단 행동했으며 그를 가로막는 무력적인 강제성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공이 활용해 헤쳐나갈 부분이 없었던 만큼 무공의 수위는 그다지 중요치 않은 부분이었습니다.
주인공 진완은 답답하고 고루하게 느껴지는 것들은 거친 말 빨로 부정하고 깨부셨습니다. 게다가 능력도 됩니다. 그의 돌팔매질은 임시로 편성된 적을 저지하거나 반항할 수단이 되었고 금강불괴에 이르게 되는 몸은 그가 어떠한 행동도 거리낌없이 일단 하고 볼만한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또한 그의 뛰어난 직관력은 상황의 해결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때문에 세인의 생각과 다소 차이가 있는 진완의 행동은 스스로가 주류가 되어 자연스럽게 웃음을 낳고 작가의 위트는 소설 전체에 함께하게 됩니다.
2. 감정
다수의 독자를 위해 가벼움을 충족시킨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감정의 부여와 해소에 소홀했습니다. 검단하를 읽으며 가장 아쉬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검단하의 주제의식은 주인공의 성격을 부각시켜 이러한 주인공이 변화시키는 강호를 표현하려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이 소설은 저의 감정을 그다지 흔들어 놓지 못했습니다.
전 이 소설의 시작부터 강호의 냉정함과 냉혹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사랑하기에 도피를 약속했던 사랑이 외부 인물의 지극히 자기중심 적인 방해로 인해 시작조차 못하게 된 것에 가슴 아파했으며 주인공이 백팔룡이 아니었다는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이에 참여한 수하의 목숨을 끊으려는 주인의 모습에서부터 비정 강호를 읽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념이 마치 동화와도 같은 주변인물들의 어리숙함이라거나 조연들의 행동을 결정짓는 철학의 모호함등과 만나게 되면서 묘한 부조화가 시작됩니다.
폐쇄적이고 규율에 어긋남을 심하게 벌한다는 련에서 주인공의 버릇없는 말에 딱히 제재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 소설 속에서 설명을 하고는 있으나 납득은 해도 그만큼 현실감은 소모되고 있었습니다. 주변인들이 주인공에게 냉혹하고 잔인한 행동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주인공은 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은 너무 무릅니다. 더위가 있어야 바람의 시원함을 느끼듯 아픔과 분노가 있어야 적을 때렸을 때 통쾌함이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살인멸구의 대상으로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인 마을사람들이나 주인공의 여자가 지정되지 않기에 그들은 무사합니다. 대상으로 지정된 수하도 무사합니다. 한번 정한 의견은 꺾지 않는다던 주인은 주인공에 의해 맘을 바꿔 수하를 죽이지 않습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도피는 협상을 통해 안전한 곳으로 여자를 옮겨놓기로 결정되고 결국 사랑을 이어나갈 여지를 듬뿍 남깁니다.
소설을 읽으며 독자에게 주어지는 여러 감정들은 소설에 몰입하는 강한 지속제가 되는데 이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복수와 분노의 감정입니다. 하지만 그 감정이 방향을 잃고 산화하게 되면서 거친 감정의 파도를 잠잠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분노란 감정은 주인공의 목적성을 보다 뚜렷하게 드러내기 마련이지만 이 분노가 사그라들면서 점차 옅어지기 시작합니다. 무심련을 벗어나 자신의 여자를 만나야겠다는 처음의 간절한 목적성은 무심련에서의 에피소드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점차 희석되어 갑니다.
소설 처음엔 그렇게 강렬히 독자를 사로잡던 강렬한 사랑이야기였는데 이제는 독자도 '그 여잔 생각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라고 판단할 정도로 목적성이 미약해 졌습니다.
게다가 그 이후의 에피소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독자들은 갈등과 해소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데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산적은 시비 걸고 주인공은 때려잡고, 객잔에서 주인공은 무시당하지만 곧 무위를 보여 누르는 과정을 들 수 있습니다.
부조리가 일어나고 이에 독자는 분노하거나 비웃습니다. ‘감히! 괘씸하군.’ 이러한 독자를 대신해 주인공이 움직여 독자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고 이러한 감정을 해소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검단하에선 다릅니다. 뭔가 일어나기도 전에 선빵입니다. 먼저 시비 걸고 남의 것을 빼앗고 규율을 무시합니다. 뭐든지 당하기 전에 먼저 해버립니다.
전진. “어어.. 저녀석이 전진하네! 이걸 그냥 둬야 해? 말아야 해?”
전진. “어어..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전진. "어쩔 수 없는 꼴통이군. 내가 참아야지!"
일단 뭔가 하면 주인공의 논리에 맞춰 사건이 진행됩니다. 갈등이 없고 해소만 있습니다. 스프링을 눌러야 반발력이 있어 튀어나가는 법인데 벽을 부수며 거침없이 전진입니다.
파괴는 카타르시스를 안기지만 그 벽에 감응한 정도에 따라 그 즐거움의 크기는 천차만별입니다.
예를 들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모든 것을 져버리고 충성심과 복종심을 강요해 키운 노예 염혼의 가치관을 주인공이 깨버리고 정을 가르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랑을 염혼에게 가르치는 부분에서 독자는 즐거움을 느끼지만 이것은 버려진 염혼이 주인공에게 복속되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한 듯 쉽게 벌어진 일입니다. 만약 그 감정의 벽이 높아 더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되었다면 그 과정의 길이만큼 더 큰 만족감을 느꼈겠지요.
가벼움이 좋지만 감정을 쌓는 부분에서까지 가벼움을 추구한 것은 저의 취향에 상당히 어긋났습니다. 분노란 감정이 명치에서 뜨거운 압력으로 내리누르는 것으로 볼 때 그것을 시발한 부조리의 크기만큼 소설에 무게감을 실어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겁니다.
만화 베르세르크를 보며 우리가 느꼈던 압박감도 감히 저항할 수 없을 것 같은 존재나 단체에 일개의 인간이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주인공의 움직임에 큰 의미를 부여하여 무게를 싣고 필사적인 위기 탈출 과정은 독자를 초조하게 하여 큰 위기감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검단하는 다릅니다. 복수의 대상이 없으며 따라서 적도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적이 될 수도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중립적인 시선입니다. 또한 명리에 무감각하기에 딱히 잃을 것도 없습니다. 주인공은 무심련을 나가버리면 그만입니다. 당하기 전에 먼저 때리기에 거침없이 순항하지만 고난 설정이 약하기에 독자의 가벼운 웃음은 부를 수 있어도 독자가 주인공의 편에 서게 하진 못한 것 같습니다. 함께 울고 웃고 응원하는 그런 기분 말입니다. 이녀석은 은근히 유아독존입니다.
독자의 감정을 더 많이 움직여 소설에 빠져들게 하려면 둑을 쌓고 최대한 물을 축적시킨 후 한 번에 터뜨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독자가 가진 더 많은 감정의 농지가 침수되지요. 그래야 깊이 빠져들게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진행되는 에피소드를 찬찬히 살펴보면 검단하에는 부조리는 있으되 분노를 축적하는 과정이 많이 빠져있는 만큼 가볍지 말아야 할 곳까지 가벼웠던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해봅니다.
3. 사건
감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을 말하자면 그게 곧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됩니다.
진행되는 사건들은 먼저 대화가 가볍고, 그에 반응하는 주변 인물들의 행동이 어리숙하고, 때문에 결과가 가볍습니다. 주인공이 난폭하게 움직여도 주변에선 물러서기 급급합니다. 그래서 마치 현실이 아닌 이상적 세상을 거니는 듯한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어떤 실수와 월권을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향해 움직일 법한 묘한 안도감.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무심련이란 태풍의 눈에 위치한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에피소드는 이 때문에 격동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것을 포기한 대신 독자는 잔잔한 감동을 얻습니다.
독자에게 쥐어진 좋은 결과는 그것이 이상적 행동에서 따르는 만큼 따뜻함과 교훈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철학을 낳고 그것이 쌓여 소설이 주는 무게를 결정하지만 자칫 두 마리 토끼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거기에 유머를 섞으려는 시도에서 교훈에 대한 묘한 부정이 끼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멋대로 임에도 결국 모범적으로 평가되는 주인공의 행동에 교훈적인 목적은 어느 정도를 차지하는가?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는 모습에는 분명 유머가 존재하지만 그 우연성만큼 교훈과 철학의 실체감 또한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주어지는 사건에 대처하는 주인공의 행동은 마치 직선적이고 사심이 없어 보였지만 그것은 사실 지름길과 다름없었고 어떻게 보면 편법이었습니다.
이것은 표현하기에 따라 ‘어렵게 얻어내지 않은 것은 갖는 의미도 적다’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쉽게 얻어지는 것에는 그만큼 감정 부여도 적어지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주인공이 의지가 주도하는 사건만이 아니라 주인공이 일방적으로 겪게 되는 사건에서도 벌어집니다.
주인공은 무공을 모릅니다. 하지만 무공이라 말할 수 있는 재능이 있습니다. 돌의 이빨을 읽고 의지를 담아 던지는 돌팔매질. 이것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그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금강불괴를 이룩하는 강력한 내공을 얻지만 이것은 그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가 아니라 그를 콕 집어 나타나는 기연 덕분이었습니다. 그가 할 일은 단지 그 과정에서 고통을 참는 일 뿐이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실험체가 되어 노폐물을 뱉어내고, 우연히 엉덩이에 지네에 물린 자국이 있어 아들이라 오인 받아 내공을 받고, 그 덕에 천하제일인의 내공을 받고, 또 그 둘 덕에 또 다른 이의 내공을 받습니다. 금강불괴가 되는 주인공.
속성도 물론 좋습니다. 과정이 생략되는 만큼 스토리는 빠르게 진행되고 스케일을 키울 수 있지만 앞서와 마찬가지로 잃어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노력이 피워내는 과실의 단맛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치 세상이 주인공을 보호하는 듯한 묘한 안도를 줍니다.
이것은 독자가 느껴야 할 숨 가쁜 위기감이 사라지게 만듭니다.
모든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인식적인’ 대명제가 그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기에 소설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겐 떠나지 않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잃을 것이 많은 주인공일수록 독자가 느껴야 할 불안감은 더더욱 커집니다.
해리포터를 읽으며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어린이들과 성인 모두가 읽을 수 있는 동화를 표방하면서도 미스테리한 사건에 주어지는 실마리들은 막연한 두려움을 점차 증폭시키며 결국 큰 변고를 예고하고 그에 따라 참혹한 결말을 냅니다. 또한 해리포터의 행동 하나 실수 하나에 따라 그가 잃어버리게 되는 권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검단하는 주인공이 잃을 것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여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독자가 느끼기엔 안전하지요. 그래서 거침없고 속 시원한 행보가 이어지지만 그것은 하나를 포기하고 다른 하나를 얻은 것입니다.
과연 포기한 재미만큼 다른 선택에서 그 이상을 얻었을지는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4. 결론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주제가 현재 장르시장을 주도하는 독자들에게 무거울 수 있을 것을 고려하여 분명 가벼움을 충분히 넣었으며 주인공의 막무가내식 행보로 통쾌함과 경쾌함을 잘 가미시켰습니다. 또한 많은 에피소드에서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웃기기 위해 억지를 부린 부분이 없고 에피소드 전체에 위트가 가득하다는 것도 큰 장점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제 취향에 어긋났던 점은 그 과정에서 갈등을 충분히 촉진시켜 분노를 최대한 발효시키지 않고 단지 해소에만 주력했다는 것과 주인공이 강해지는 것은 분명 재미있지만 노력이나 주인공만의 해법을 통해 얻어진 이득이 아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능력과도 같았기 때문에 무공이 강해지는 와중의 재미가 충분히 와 닿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책임져야할 것도 잃을 것도 적게 표현되어 위기감이 작았던 것도 아쉽고, 진중한 듯 무게를 두어 현실성을 가미하려 하다가도 이상적인 것에 중점을 두면서 가벼움을 안긴 것도 약간의 혼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검단하를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것은 몰입하듯 빠져드는 재미는 아니었습니다. 항시 약간씩 안착하지 못하고 붕 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감성적인 부분에서 가장 큰 재미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불만도 대부분 감성적인 부분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감상문에서는 ‘감정’과 ‘사건’을 중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왜냐면 비평이 아니라 감상이기 때문입니다.
검단하는 제 취향엔 어긋났지만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제가 원하는 부분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것을 선택하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그 시도는 주인공이 당할 땐 현실적으로 벌을 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도전하여 결국 깨부순 다거나, 일단은 당하지만 곧바로 보복하는 방향으로 복수의 미학을 부여했다면 감정적으로 더욱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 글은 검단하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없었고 그 때문에 제 취향과 달랐다는 것을 이야기 하려 적은 글입니다. 그런 고로 주인공이 본신의 능력을 감추지 못하고 너무 많은 부분이 드러나 있던 게 너무 아쉬웠다는 더욱 개인적인 취향도 거론하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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