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감상

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김용의 <녹정기>에 대하여...

작성자
소명
작성
02.12.21 16:24
조회
2,115

무협은 꿈꾸는 식물의 자양분인가?

어린 소년이 절세의 무공을 배우며 강호의 고수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는 재미있다.

처절한 복수에 성공하는 이야기는 재미있다.

아름답고 차갑지만 재기넘치는 소녀와 뜨거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재미있다.

온갖 모험을 겪으면서 보물을 찾는 이야기는 재미있다.

보잘것 없고 약한 이가 강호의 고수가 되어 힘있는 자들의 부정을 응징하는 이야기는 재미있다.

현실에서 보기힘든 기이한 것들의 환상들도 재미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얻고, 섹시한 미녀들을 품에 안으며, 기진이보들을 손에 움켜쥐는 이야기는 재미있다.

다시 한 번.

무협은 꿈꾸는 식물의 자양분인가?

김용의 <녹정기>는 어떠한가?

어린 소년이 황제의 신임을 얻어 높은 관직에 오르고, 아름다운 미녀들을 아내로 맞으며, 엄청난 재산을 주물럭거리고, 세상의 힘있는 위선자들을 엿 먹이며, 온갖 고난을 세치 혓바닥 하나만으로 농락해 댄다. 거기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죄다 주인공이 간여하게 함으로써 남모르는 사건들의 비밀을 즐기게 하고, 혹은 그러한 일들을 주관하게도 한다.

한 마디로 주인공은 어린 소년에서 이제는 세상에서 제일로 중요한 인물이 되었으면서도 현세의 고통과 번뇌에서 자유롭다.

  녹정기에서 어린 소년 위소보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현실의 모습이다.

권력을 둘러싼 황궁, 민족의 독립, 강호의 은원, 사랑, 사이비 종교, 신의와 배신, 남편들을 모두 잃어버린 시대의 여성, 해탈을 찾는 인간, 헤어나지 못하는 천박한 삶, 변태, 원하지 않는 주변사건들에 끌려다니는 나약한 인간, 탐욕...

작게는 개인에서부터 크게는 나라, 민족의 이야기들까지.

위소보는 이런 모든 현실과 관계하지만 그것은 마치 꿈처럼 몽롱하다.

사람들은 위소보에게 말을 걸고, 위소보는 그들과 대화하지만 한 화면에서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녹정기>는 재미있다. 너무도 재미있다.

그렇다면 녹정기는 꿈꾸는 식물의 자양분인가?

녹정기는 "농담"이다.

찌든 현실 속 챗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힘없고 굽실대는 약한 아버지가 집에 오는 길, 포장마차에 들러 쇠주 한 잔 마실 때, 떨리는 손을 따라 불현듯 소리없이 눈물이 흐르면, 뜬금없이 들려오는 걸쭉한 음담패설이 섞인 그런 농담.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숨을 헐떡거리도록 웃게 만드는 ...

주변에는 똑똑한 놈들 천지라서 겉으로는 매너있는 채 미소짓고 다니지만,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고 생각하며 항상 긴장을 유지하고, 배신도 당해보고, 살아남아 위로 올라서기 위해 친하게 지내던 사람을 외면해 보기도 한 삼 사십대, 감설고토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아는 나이,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고 문득 거울을 보면 쓸쓸하고 차가운 눈, 그리고 입에 걸린 냉소. 그런 이들에게 녹정기란 것은 처음엔 씁쓸한 미소 한 모금을 베어 물게 하지만, 곧 가슴 속 어딘가에 숨어있던 가식없는 웃음을 찾아 주고,  부족한 여유를 채워준다.

녹정기는 귀찮다고 하는 친구의 손을 잡아끌어 자랑스레 보여주는 곱고 환하며 아름다운 전신 미인도이다.

술이다. 부족하지 않을 만큼 많은 양에 가끔은 취하도록 마시고 싶은..

녹정기는 친구에게 보내준 선물이다.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간직하게 만드는 그런 선물 말이다.


Comment ' 10

  • 작성자
    Lv.20 흑저사랑
    작성일
    02.12.21 18:59
    No. 1

    녹정기는 농담이다란 말이 가슴에 딱 하고 오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유리
    작성일
    02.12.21 20:51
    No. 2

    녹정기 정말 한편의 꿈과 같은 이야기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용호(龍胡)
    작성일
    02.12.23 09:16
    No. 3

    저는 개인적으로 김용님의 소설중 녹정기를 가장좋아합니다.
    그의 모든 소설중 가장 흡입력이 높더군요.
    또한 현실과 가상인물의 경계가 가장 허물어진....그야말로 신필이란 칭호를 부여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글이라는 생각입니다.

    무협지는 활극만의 재미는 아니다.
    녹정기는 한편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듯 했습니다.
    사실 녹정기는 개인 격투씬이나 전투씬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고, 주인공의 무공이 워낙 시원치않아서 대리만족등도 얻기가 힘든 작품이지요.
    그러나 주인공의 독특하고 살아있는 개성을 창조하는데 성공한 작가는 독자가 마치 옆에서 즐기며 지켜보듯하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무협지의 큰 재미중 하나인 대리만족적인 성향을 과감히 던진듯이
    보입니다.
    그래서인가..... 더 재미있는것 같더군요.
    원래가 \'불구경하고 싸움구경이 제일 재밌다.\'는 말이 있지요.
    구경하는 재미도 장난이 아니란 겁니다....^^

    또한가지의 쾌거는 주인공은 끝까지 악인이라는 겁니다.
    위소보는 절대로 선인일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의 몇가지 장점은 있지요. 의리라든가 재물에 남보다 집착이
    덜하다든가 하는거죠.
    그러나 그런 장점이 지극히 주관적인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객관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발휘되죠....그는 ....악당입니다...ㅡㅡ;
    살인,방화(?),납치,강간,사기,절도 등등 모든 악한짓을 하지요...

    각설하고, 그 만큼 녹정기는 무협역사소설의 영역을 확대시킨 무가
    지보적인 작품입니다.
    처음 녹정기를 접한 독자나 평론가는 \'이건 김용의 소설이아니다.\'라는 말까지 했다더군요.

    다른분들의 녹정기에 대한 감상을 듣고싶군요.
    저의 미천한 녹정기의 감상이었습니다....꾸벅!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술퍼교교주
    작성일
    02.12.23 12:48
    No. 4

    진정으로 무협지에 빠져들게한것이 녹정기입니다..
    정말 재미있게 본 것인데..
    넘 오래전 본거라..기억이 가물가물....
    다시볼려해두 없더라구요....ㅡ,.ㅡ;;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용호(龍胡)
    작성일
    02.12.23 17:05
    No. 5

    허허....술퍼맨님....아쉽겟네요...

    다행히 저는...전질을 집에 보관해두고 있답니다....

    1.2편이 뒤에 출판사하구 조금 다른 거지만....내용상에

    문제는 없지요.....

    요즘도 가끔 봅니다.....

    기분이 꿀꿀할때는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동의서생
    작성일
    02.12.25 13:07
    No. 6

    빨리 녹정기 2권을 사야 할텐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비상
    작성일
    02.12.25 22:34
    No. 7

    녹정기를 한 다섯번쯤 본것 같은데...

    처음 녹정기를 보고 너무나 재미있어서, 무협을 전혀 모르는 고딩친구에게 줄거리를 며칠에 걸쳐서 얘기해주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친구 어찌됐던 꽤 열심히 들어주는(척) 했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달리는마왕
    작성일
    02.12.27 04:11
    No. 8

    중3때 녹정기를 보느라고 어찌어찌하다

    학교를 한달간 빠진 기억이 나는군요..

    너무 눈물나도록 잼있었던 추억 입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유다정
    작성일
    02.12.27 17:10
    No. 9

    녹정기를 읽기전에
    \'무협\'은 그저 경박한 3류 소설이었죠
    그러나
    녹정기를 읽고 부터
    \'무협\'은 내게 3류 소설에서 \'문학작품\'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용선생의 열열한 팬이 되었구요
    김용선생의 14작품중
    \'연성결\'을 제외한 전작품을 읽었습니다.
    왜 연성결을 안읽었냐구요?
    ㅠㅠ 책구하기가 정말 힘들더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용수
    작성일
    03.01.01 01:35
    No. 10

    아쉽네요......
    제가 김용님의 책중에서 좋아하는 몇손가락 안에 드는게 연성결인데.....
    무협으로서 단편일 수 있는 겨우(?) 두권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그안에 김용의 모든 것이 들어 있더군요.
    사실 저도 10여년 전에 봤는데 그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아직두 생각이 나네요.

    하지만 저도 다시 보고 싶어도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감상란 게시판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331 기타장르 [추천]류진의 무한투 +5 Lv.8 hyolgiri.. 03.01.02 3,237 0
330 기타장르 [추천]강호패왕록..... +3 ♡을 기다리는 ♀ 03.01.02 1,552 0
329 기타장르 [추천] 조진행의 <천사지인> +7 ♡.을 전하는 전서구. 03.01.01 2,338 0
328 기타장르 [추천] 묘왕동주 +4 Lv.29 남채화 03.01.01 1,556 0
327 기타장르 [감상]무상검 5권까지 읽고... +4 Personacon 검우(劒友) 02.12.31 1,871 0
326 기타장르 [비평] 사신과 추혈객.. 그리고 설봉님에 ... +5 Lv.19 R군 02.12.31 1,910 0
325 기타장르 [감상] 빙하탄^_^; +2 황성호 02.12.30 1,456 0
324 기타장르 [감상] 이재일 - 쟁선계, 그 표지에 관하여. +7 거웃 02.12.30 1,996 0
323 기타장르 [감상]사신&포영매 같이 보기..작가 설봉에... +10 래강조 02.12.28 2,772 1
322 기타장르 [감상/추천]만화로 보는 "대사형" +19 Lv.1 화옹 02.12.28 2,339 2
321 기타장르 [감상/추천] 칠정검칠살도. +2 Lv.1 소우(昭雨) 02.12.28 1,860 0
320 기타장르 [감상]촌검무인 +3 황성호 02.12.28 1,396 0
319 기타장르 [감상]성라대연5~ ~ +7 Lv.1 거루 02.12.27 1,943 1
318 기타장르 [감상]사신12(완)을 읽고.....조..종리추가... +9 Lv.5 이화에월백 02.12.27 4,642 0
317 기타장르 [추천]용대운님의 군림천하를 읽고.... +2 김근하 02.12.26 1,781 1
316 기타장르 [감상] 초일 1-7 +1 Lv.1 열혈 02.12.26 1,902 2
315 기타장르 [감상] 박준서 <화산군도> 4권을 보... +2 Personacon 금강 02.12.25 1,806 2
314 기타장르 [추천][감상] 쟁선계 +2 Lv.1 운영(蕓影) 02.12.25 1,705 2
313 기타장르 [비평] \"모인\" 추락하는 피리님을 위하여 +6 Personacon 유리 02.12.24 1,448 2
312 기타장르 [비평] 피리 - 모인을 읽고 그리고 밑의 피... +2 Lv.20 흑저사랑 02.12.23 1,078 1
311 기타장르 <비평/ 감상> 기록님의 철혈전기 +2 화산검파 02.12.23 1,162 1
310 기타장르 [감상] 장경 - 황금인형 연재분을 읽고.. ... Lv.20 흑저사랑 02.12.23 1,863 1
309 기타장르 [추천]구완공....보셨나요? +1 Lv.4 I무림 02.12.23 2,029 4
308 기타장르 [추천]담천님의 \'광기\'..... +1 Lv.94 미련한未練 02.12.23 1,725 3
307 기타장르 [감상] 장경님의 성라대연.. +3 Lv.1 Heaven 02.12.22 1,685 1
306 기타장르 [추천] 칠정검 칠살도 +10 Lv.1 Dinguri 02.12.21 4,334 2
» 기타장르 김용의 <녹정기>에 대하여... +10 소명 02.12.21 2,115 3
304 기타장르 [?]그대로 바라보기. +12 Lv.1 무존자 02.12.20 1,416 11
303 기타장르 [추천]건곤불이기 +1 래강조 02.12.20 2,410 2
302 기타장르 [감상]뇌려타곤을 다 읽고... +10 Lv.1 술퍼교교주 02.12.20 3,445 0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